그 날, 제 2장
지옥철이라 불리는 2호선 퇴근길은 오늘도 변함없이 끔찍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체온과 섞이지 않는 땀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한숨 섞인 입김이 뒤엉켜 불쾌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뒤에 선 중년 남자의 축축한 서류 가방이 내 엉덩이를 계속 찔러댔고, 맞은편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에어컨 바람에 날려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평소 같았으면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즐겨라.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나는 사람들 틈에 끼인 채 속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일이면 사직서를 던질 것이고, 이 지긋지긋한 만원 지하철 대신 민석이 추천해 준 수입차 매장에 들러 시승을 해볼 생각이었다. 가죽 시트의 냄새와 부드러운 핸들링을 상상하자, 옆 사람의 겨드랑이 냄새조차 참아줄 만했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한국 시각으로 밤 10시 30분. 이제 곧 뉴욕 증시가 개장할 시간이었다. 프리장에서는 이미 붉은색 상승 기둥이 예고편처럼 솟아 있었다. 본장이 시작되고 관세 철폐 뉴스가 터지는 순간, 그 기둥은 성층권을 뚫고 올라갈 것이다.
그때였다. 폰이 짧고 강하게 진동했다. 알림 설정을 해둔 경제 뉴스 앱의 속보였다.
[속보] 미 백악관, 긴급 브리핑 예정. 관세 정책 관련 중대 발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다. 민석의 말대로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잠금 화면을 풀고 증권 앱을 켰다. 주변 사람들이 내 화면을 볼까 봐 몸을 웅크려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앱을 실행시켰다.
그런데.
"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멍청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면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솟구치던 붉은 기둥들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거대한 폭포수처럼 시퍼런 막대들이 화면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5%, -12%, -20%... 숫자가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맞나? 앱 오류인가? 아니면 내가 색약 모드를 켰나?
혼란스러운 머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단에 뜬 뉴스 헤드라인이 비수처럼 눈에 박혔다.
[충격] 미 정부, 관세 '철폐' 아닌 '200% 인상' 초강수... 무역 전쟁 선포.
순간, 달리는 지하철의 굉음이 뚝 끊기고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도, 흔들리는 손잡이도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오직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 화면 속 파란색 숫자들만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아닐거야… 민석이가... 분명히 내부 정보라고 했는데.'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건 단순한 하락이 아니었다. 나는 원금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통장과 제2금융권 대출까지 끌어와 '3배 레버리지' 상품에 태웠다. 즉, 시장이 30%만 빠져도 나는 모든 돈을 잃고 빚더미에 앉게 된다는 뜻이었다.
-25%.
화면 속 수익률이 마지노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지하철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이상한 사람을 보는 경멸 어린 눈빛들. 하지만 그들의 시선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 눈앞에는 오직 계좌 잔고가 실시간으로 증발해 버리는, 아니 내 인생이 디지털 숫자와 함께 삭제되고 있는 끔찍한 광경뿐이었다.
앱 화면 중앙에 붉은색 경고 창이 떴다.
[경고: 담보 비율 부족. 10분 내로 증거금을 입금하지 않을 시 강제 청산이 진행됩니다.]
강제 청산. 그 네 글자가 사형 선고처럼 다가왔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민석의 번호를 눌렀다. 지하철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내 인생도 방금 막, 빛 한 점 없는 긴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받아... 제발 받아라, 민석아..."
신호음은 무심하게 길게 이어졌다. 뚜우, 뚜우. 신호음 끝에는 건조한 기계음만 반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