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원짜리 우월감

그 날, 제 1장.

by MingDu


"아, 김밥천국 가격 오른거 봤어? 이제 참치김밥이 4,500원이야." "진짜? 월급 빼고 다 오르네. 이제 점심은 그냥 편의점에서 때워야 되나?"


점심시간이 끝난 나른한 오후, 탕비실 쪽에서 들려오는 박 대리와 최 사원의 투덜거림이 내 귀를 스쳤다. 그들은 500원 오른 김밥 가격에 세상이 무너진 듯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알뜰 통신사 요금제니, 카드 포인트 적립이니 하는 시시콜콜한 절약 팁들이 그들의 대화 주제였다.


나는 모니터 구석에 띄워둔 해외 증시 뉴스 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책상 위에 놓인 스타벅스 리저브 컵을 집어 들었다.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을 감쌌다. 코끝을 스치는 에티오피아 원두의 산미가 사무실의 쾌퀴한 공기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고작 500원 인상에 저렇게 일희일비하다니. 인생 참 피곤하게들도 산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내 손에 들린 이 커피 한 잔 값은 10,000원. 그들이 점심으로 고민하던 참치김밥보다 훨씬 비쌌다. 하지만 내게 이 커피는 단순한 카페인 음료가 아니었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그들은 모른다. 내가 이 비좁은 파티션 안에 갇혀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내 진짜 '일'은 이따위 엑셀 파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4,500원짜리 김밥을 씹으며 부장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동안, 나는 지구 반대편의 숫자를 읽으며 그들의 한 달 월급을 단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벌어들인다는 사실을.

노동으로 버는 돈은 덧셈이지만, 자본으로 버는 돈은 곱셈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평생을 덧셈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저들이, 가끔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김 과장, 이번 분기 보고서 아직이야? 2시까지 넘기라고 했잖아!"


최 부장의 날카로운 고함이 정적을 깼다. 파티션 너머로 붉으락푸르락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정수리가 훤히 드러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씩씩거리는 모습이, 마치 먹이를 두고 으르렁거리는 늙은 불독 같았다. 예전 같으면 심장이 철렁하고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겠지만, 지금은 그저 짖는 개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네, 지금 최종 검토 중입니다. 오타 수정해서 10분 내로 보내겠습니다."


나는 짐짓 바쁜 척하며 대답했지만, 손가락은 보고서 대신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화면 가득 붉은색 기둥들이 솟구쳐 있었다. 지난밤, 내가 풀 매수를 감행한 종목의 프리장 시세였다.


'짖어라. 맘껏 짖어. 어차피 이번 딜만 성공하면 사표 던질 거니까.'


그때, 책상 위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민석'이었다.


[민석: 오늘 밤이다. 미 연준 발표랑 관세 정책 나오면 바로 쏠 거야. 내부 분위기 확실해. 샴페인 미리 사둬라.]


메시지를 보는 순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민석. 그는 대학 동기이자, 현재 여의도에서 꽤 잘 나가는 사모펀드 매니저였다. 남들이 대리 직급 달고 쩔쩔맬 때, 그는 이미 포르쉐를 끌고 다녔다. 그가 물어오는 정보는 찌라시 수준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선택받은 소수만 공유하는 '진짜 정보'였다.


나는 그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은행 앱을 켰다. '대출 실행 완료'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끝까지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제2금융권까지 손을 댔다. 심지어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보증금까지 담보로 잡았다. 미친 짓이라고? 아니, 이건 도박이 아니라 과학이니까.


내 눈앞에는 이미 선명한 미래가 그려져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계좌의 앞자리가 바뀔 것이고, 나는 보란 듯이 사표를 낼 것이다. 그리고 민석이 끄는 포르쉐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이 지긋지긋한 빌딩 숲을 유유히 빠져나갈 것이다.


[나: 걱정 마. 이번에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더 태웠어. 이번에 진짜 졸업하자.]


답장을 보내고 나는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빽빽한 빌딩 숲이 마치 내 발아래 있는 레고 블록처럼 작게 느껴졌다. 저 수많은 창문 뒤에서 누군가는 엑셀과 씨름하고, 누군가는 상사에게 깨지고 있겠지.


남들은 4,500원짜리 김밥 가격에 울고 웃지만, 나는 오늘 밤 내 인생의 단위를 바꾼다. 그 확신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견고해서, 감히 의심할 틈조차 없었다.

내게 커피 향은 성공의 향기였다. 적어도, 그날 점심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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