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사 이명지 Jun 16. 2022

육십, 다시 소녀들의 미국 수학여행(3)

ㅡ반갑다, 아리조나!

2022.06.04.

 뉴멕시코 갤럽 숙소인 레드 루트(Red Root)에서 씨리얼과 갓구운 와플, 그리고 뜨거운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1시간여 거리의

아리조나 국립공원 패트리파이드 포레스트(Petrified Forest NP)로 향했다.

 나무가 화석이 되어 보석처럼 아름다운 곳. 자연이 만들어낸 웅장한 풍경들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우리는 입구에서부터부터 사진으로 인증샷을 남기느라 부산을 떨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가슴에 담아야 진짜

내것이 되고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육십 소녀들의 여행에서 중요한 건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보이면 무조건 간다. 다같이 간다. 마렵지 않아도 간다. 그래야 이동 중 간격이

맞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규칙에 잘 부합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컨디션 조절도 각자가 열심히 한다. 피곤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말고 무조건 쉬기로 했다. 나 하나 건사를 잘하는 게 모두를

돕는다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급체로 제일 먼저 민폐를 끼친 사람이 나이긴 했지만...

어떻게 해결했냐구요?

체한 것보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두들긴 우정의 등짝 스매싱 후유증이 더 컸답니다 ^^~


 점심 때가 되자 우리는 공원 안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사막 같은 공원인데도 곳곳에 수도가 설치돼 콸콸 물이 나왔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식탁과 햇볕을 가려주는 시설이 잘 마련돼 있었다.


 오늘 점심 당번은 우리가 '멀티아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친구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무엇을 찾으려면 종일 가방을 뒤적거리는 게 다반사인데 이

친구는 눈으로 한번 스캔한 것은 거의 기억해 단번에 찾아준다. 놀라운 능력이다. 게다가 힘도 좋아 우리가 낑낑대는 것도 앞장서서 척척

해결해주니 참 든든한 친구다. 마이크의 힘쓰는 일을 줄여주는 건 좋지만 우리에게 남자의 필요성을 잊게하니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아리송하다.


 멀티아이 친구는 부지런하고 음식 솜씨도 좋다. 오늘 점심은 이 친구가 담당이다. 아침에 숙소에서 미리 준비한 김밥(쉴까봐 정말 김에 밥만

싼)에 벨쉐프가 담근 짜릿하게 익은 김치, 각자 한국에서 한 가지씩 준비해온 밑반찬 중 무우말랭이 장아찌와 라면이 공원 테이블에 펼쳐졌다.

미국 국립 공원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이라니! 라면은 언제나 옳다!

 

 돈을 아끼려 궁상을 떠는 게 아니다. 이곳에선 정말 밥 먹을 데가 마땅치 않다. 식당을 찾아 가려면 긴 시간을 움직여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투어를 계속해야할 만큼 공원의 규모가 방대하기도 했고, 이곳을 여러 차례 다녀갔던 미국 친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센스있는 가이딩이기도 했다.


 나무가 화석이 돼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죽은 나무들의 유골 숲 같은 방대한 패트리파이드 포레스트를 종일 탐험하고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숲속 통나무집 숙소로 들어왔다. 여기서 3박4일을 보낼 예정이다.

 들어오면서 야채가게에 들러 사온 싱싱한 상추와 우리의 벨쉐프가 걷어부치고 뚝딱뚝딱 만들어 낸 돼지고기 고추장 제육볶음, 거기다 소맥 한

잔 곁들인 저녁 식사는, 캬~ 하루의 여독을 눈 녹듯 사라지게했다.

때마침 딸아이가 "식사는 잘하고 계시냐?"고 문자가 왔길래 "미국식이 그리워지려 한다"

했더니 "ㅋㅋㅋㅋ 돌아오시면 햄버거 드시러 가야겠네요" 한다.

 우리는 이렇게 즐거운 식사와 맛있는 여정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여행 중이니 한국에 있는 식구들 걱정 끼칠 일도 없다. 어디서든 나만

잘하면 된다.


내일은 고대하던 그랜드캐년으로 간다.

작가의 이전글 육십, 다시 소녀들의 미국 수학여행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