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화. 억울함에 대하여...

"왜 생각을 안 하고 말을 해?"

by 커리어포유

"엄마 바빠?"

며칠 전, 학교에 있던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니, 왜?"

"동아리 쌤이랑 일이 있었는데... 너무 슬펐어."

딸은 그날 있었던 일을 장문의 글로 쏟아냈다.

선생님과 오간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내오는데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 딸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딸은 슬펐다고 얘기했지만 그 감정은 분명 '억울함'이었다.


사람이 가장 억울한 순간은 내 의도와 다르게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고 느낄 때다.

딸도 그랬다.

몰라서 질문했고, 동아리 회장으로서 부원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선생님의 반응이었다.

"왜 생각을 안 하고 말을 해?"

"통보를 할 거면 담당 교사가 왜 있는 거냐?"

딸은 한순간에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 '선생님께 예의 없는 학생'이 되어버린 것 같아 억울했던 것이다.

그다음엔 슬프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괜히 화도 나고,

그러면서 또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은 자책감까지. 감정이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억울함... 이 감정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코칭을 하다 보면 억울함을 털어놓는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불만 같아도 그 속엔 훨씬 더 깊은 마음이 있다.


억울함이 조심스럽고 까다로운 이유는 '화났다', '서운하다' 같은 단일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뒤엉켜 있는 묵직한 덩어리 같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한 사람에게 누가 잘못했는지 따져주거나,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가볍게 넘기면 감정은 더 크게 요동친다.


억울함은 누가 대신 풀어주는 감정이 아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의 중심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일이다.

그 순간 내 마음이 어디에서 크게 흔들렸는지,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감정은 절반쯤 가라앉는다.

상대가 사과를 하거나 상황이 해결돼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내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딸은 동아리 부원들의 의견을 다시 모아 조율했고, 다음날 선생님께 자신들의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절충점을 찾았다고 한다.


사실 딸의 카톡을 보고 나는 고민했었다.

'뭐라고 조언하지? 엄마인 내가 학교에 전화라도 해야 하나?'


그런데 처음부터 딸이 원한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혼자 끌어안기엔 버거운 마음,

누군가에게 잠시 기대고 싶은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덩어리.

그냥 한바탕 투정 부리고 그 모든 걸 내려놓을 자리가 필요했던 거였다.

그리고 그 자리가 바로 '엄마'였다.


감정은 엄마에게 풀어내고,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것.

그것이 내 딸이 자라는 방식이었고

나는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엄마로서, 그리고 코치로서 또 배우는 중이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