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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생애 첫 수학여행

엄마를 향한 다정한 마음

by 커리어포유

"난 첫날 이렇게 입으려고..."

"야, 그건 좀 별로야. 검은색이 더 나아."

"그래, 그게 더 예뻐. 그걸로 입어."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는지 모르겠다.

휴대폰 너머로 아이들은 서로의 옷차림을 평가하며 까르르 웃고 있다.

그 웃음소리가 몇 시간째 문틈을 넘어 거실까지 새어 나왔다.


수학여행 전날, 딸의 모습이다.

초등학교 때는 코로나로 수학여행을 아예 가지 못했고,

중학교 때는 일일 체험형으로 부산 일대만 다녀왔다.

그래서 이번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딸 인생의 '첫' 수학여행이다.

3박 4일, 제주도.

처음으로 엄마 없이 여행을 떠나는 딸아이 방엔 설렘이 가득했다.

침대 위에 층층이 쌓이는 옷만큼이나 웃음도 쌓여 갔다.


"엄마, 수건은 안 가져가도 되겠지?"

"엄마, 혹시 제주도에 비 온대? 선생님이 우산 챙기랬는데... 아... 귀찮아서 갖고 가기 싫은데..."

"엄마, 비상약도 챙겨야겠지?"

"엄마..."

"엄마..."

작은 캐리어 하나 싸면서, 조금 보태서 엄마를 백번쯤은 부른 것 같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들떠 있는 아이.

그 얼굴에선 걱정보단 설렘이, 두려움보단 기대가 훨씬 앞서 있었다.

여섯 시까지 공항에 가야 해서 일찍 자라고 해도 짐을 몇 번이나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더니

자정이 다 돼서야 겨우 정리가 끝났다.

"일찍 못 일어나면 어쩌지..."

걱정하던 딸은 다음날 새벽 네시도 되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

역시나 또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실시간 준비과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빠진 건 없는지 함께 챙겨가며 마침내 캐리어를 닫았다.

"조심히 잘 다녀와."

그 말 한마디에 걱정과 응원을 담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남편이 데려다주긴 했지만, 공항에 잘 도착했을까 궁금해질 즈음 비행기 사진이 도착했다.

"비행기 탔어."

"설렌당"

"갔다올겡"


그리고 한 시간 후,

"제주 도착했어. 하늘이 예뻐."

라는 메시지와 함께 제주 풍경 사진이 도착했다.

[딸이 보내온 사진]

이후에도 딸은 이동할 때마다 어디를 갔는지, 뭘 했는지, 그곳 풍경이 어떤지를 나에게 꾸준히 보고하듯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많이 걸어서 힘들다면서도 사진 속 표정엔 신남이 가득했다.

사실 보내면서 마음 한구석엔 걱정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혹시 불편하진 않을까.

피곤해서 힘들진 않을까.

행여 아프진 않을까.

그런데 사진 속 밝은 얼굴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생각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둘째 날.

역시나 아침부터 "날씨가 좋아"라는 인사를 시작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뭘 먹었는지 짧은 톡과 사진이 이어졌다.

그 사진들을 보며 아이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숙소 복도 끝 공중전화 앞엔 늘 긴 줄이 있었다.

손에 동전을 꼭 쥐고 내 차례를 기다리던 그때의 나.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막상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울컥하곤 했다.

사실 난 엄마와의 짧은 전화 통화 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낯선 공간의 공기 속에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잊으려 했던 것 같다. 그 목소리 하나로 마음이 가라앉고, 엄마랑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게 어린 나에겐 위로였다.


혹시 딸도 그런 마음일까. 새로운 환경 속에서 설레면서도 낯선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건 아닐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먼저 안부를 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됐든 고마웠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여전히 엄마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이 나의 음력 생일인 걸 기억하고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딸의 목소리는 밝았고, 웃음 속엔 여행의 설렘과 함께 엄마를 향한 다정한 마음이 섞여 있었다.

덕분에 오늘 밤은, 어제보다 조금은 걱정을 덜어두고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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