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협업의 기술

혼자보다 함께가 더 어려운 이유

by 커리어포유
차라리 내가 혼자 할걸...


협업을 하다 보면 이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 때가 있다.

역할을 나눠서 일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보고자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들 때,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크게 어긋난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지쳐버리는 순간이다.


얼마 전, 모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강의를 맡았을 때다.

학교 측 교수님 한분과 나, 그리고 분반을 나눠 함께 강의를 진행할 김 모 강사.

이렇게 셋이서 사전 회의를 했다.

교수님은 학교가 원하는 강의의 방향을 PPT까지 준비해 가며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다.

학생들의 수준, 수업에서 기대하는 분위기, 특히 강조되었으면 하는 포인트들까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필요한 내용들을 메모했고, 김 강사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는 듯 보였다.

회의 분위기는 무난했다.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순간도 없었고, 서로의 말을 굳이 정정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대부분 그 자리에서 정리됐다.


며칠 뒤,

김 강사와 각자 준비한 강의 교안 초안을 공유했다.

그런데 교안을 펼쳐보니 강의의 방향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분명 함께 회의를 했고,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김 강사의 교안은 충분히 논리적이었고, 나름의 흐름도 분명했다.

다만, 내가 떠올린 강의의 그림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회의에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해서 머릿속으로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누군가가 틀린 건 아니었다.

다르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다름'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하게 느껴졌다.


결국 교안은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야 마무리됐다.

최종본을 저장하면서 이 강의가 혼자 하는 강의였다면, 교안 작업을 훨씬 빨리 끝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강의는 잘 끝났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고, 학교 측에서도 재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충분히 성공적인 협업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남았다.

일이 안 된 것도 아니고, 관계가 틀어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지쳤을까.


협업이 어려운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팀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팀이 '너무 유능해서' 위기를 맞는다.

각자의 확고한 기준과 자존심, 책임지고 싶은 방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협업은 일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기준과 통제권을 나누는 과정이다.

혼자 일할 때는 내가 정한 기준 안에서 판단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하면 된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점도 모두 내 결정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순간, 그 기준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함께 회의를 했다는 사실이 같은 기준에 합의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날의 협업이 유난히 버거웠던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를 공통으로 가져갈 것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완료'라고 판단할 것인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릴지.

이 질문들이 회의 자리에서는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각자는 성실하게 준비했지만 서로 다른 기준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아직 더 보완해야 한다"라고 느꼈다.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인데, 그 차이가 쌓이자 일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기 시작했다.


협업에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발생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건 이미 합의했다고 믿었던 시간들이다.
혼자였다면 금세 끝냈을 결정이 서로를 납득시키고 확인받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모두가 합의했다고 착각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럼 이렇게 가죠."
회의에서 자주 오가는 이 말은 생각보다 많은 여지를 남긴다.
각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실행이 시작되자마자 엇갈리는 이유다.
결국 우리는 같은 회의를 반복하며 이미 내린 결론을 다시 확인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또 하나는 완료를 바라보는 온도의 차이다.
누군가에게 완료는 '일단 내놓고 반응을 보는 상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손볼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완성도를 우선하는 사람도 있으며,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사람도 있다.

서로 틀린 게 아니라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 기준이 말로 합의되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서로를 답답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그 순간 협업은 일을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의 판단 기준을 평가하는 감정의 문제가 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책임의 경계가 흐려진 상태다.

"이건 누가 결정하나요?"라는 질문이 자주 등장하는 협업일수록 결정권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결정권이 없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조심스러워진다.
그 조심스러움이 길어지면 어느새 눈치가 규칙을 대신한다.

누구도 확답하지 않고, 누구도 명확히 반대하지 않는다.
회의실은 공손한 말들로 가득하지만 정작 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협업은 조용히 멈춰 선 상태로 남는다.


그제야 알게 됐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 사이의 친밀함이나 팀워크 구호가 아니라

'기준을 어디까지 맞췄는가'라는 점이라는 걸.

협업이 잘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건 의외로 거창한 대화가 아니다.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어떤 상태를 완료로 볼 것인지, 누가 최종 판단을 하는지.

이 세 가지만 문장으로 분명히 정리돼 있어도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는 훨씬 줄어든다.


"차라리 내가 혼자 할걸..."이라는 말은

협업을 피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의 협업에서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라는 신호였던 것 같다.


*오늘의 질문*
: 요즘 당신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협업은 무엇인가요?

회의는 반복되는데 실행이 더뎌지거나,
일은 진행되는데 마음이 먼저 지친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합의되지 않은 기준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을 점검하기 전에,
그 협업에서 무엇이 기준으로 공유되고 있는지
한 번쯤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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