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목표 없음'이 곧 '뒤처짐'은 아니다

당신만의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

by 커리어포유

입춘(立春)이다.

달력은 분명 봄의 시작을 알리는데 바깥공기는 아직 차갑다.

그런데도 '봄'이라는 한 글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몸은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는데 마음만 자꾸 앞서간다.

이제는 진짜 무언가 시작해야 할 것 같고 움직여야 할 것 같은 기분.

준비가 덜 된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날이다.


새해가 그렇고, 계절의 변화가 그렇다.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뒤처지는 듯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쉬는 것조차 괜히 죄책감이 든다.

마치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이미 경주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런 조급함은 휴대폰을 켜는 순간 더 또렷해진다.

SNS 피드에는

'#미라클모닝O일차',

'#오운완',

'#갓생살기' 같은 해시태그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누군가는 새벽잠을 이기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루틴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벌써 성과를 내고 있다.

계획과 실천의 기록이 빠르게 쌓여가는 걸 보고 있으면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나는 마치 방향을 잃고 멈춰 선 낙오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를 재촉하게 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타인의 상태를 기준 삼아 나를 판단한다.

문제는 SNS에서 이뤄지는 이 비교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타인의 '편집된 하이라이트'와 나의 '편집되지 않은 일상'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열등감과 조급함을 키운다.

그리고 이런 비교는 곧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방향이 분명하지 않아도 계획부터 세운다.

나에게 맞는 속도인지, 지금 이 시기가 적절한지는 잠시 미뤄둔 채, 일단 달리고 있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급함은 개인의 의지나 성향 문제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 더 깊이 닿아 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성과사회'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하면 안 된다"는 금지가 사람을 통제했다면, 지금은 "너라면 할 수 있다"는 말이 우리를 끊임없이 밀어붙인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언뜻 희망처럼 들리지만, 그 말 뒤에는 '못 해낸 건 결국 네 책임'이라는 조용한 압박이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쉬고 있어도 편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마저 스스로에게 변명하게 된다.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정호(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 와서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고, 주말에 늦잠 자는 제가 한심하게 느껴져요."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스스로를 다그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어느새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채 하루를 살아낸다.


하지만 커리어를 설계하는 관점에서 보면,

'목표 없음'이 곧 '뒤처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위험한 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남의 속도에 맞춰 뛰는 삶이다.


방향 없는 질주는 당장은 안심을 준다.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니까.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숨이 가빠지고, 어느 순간 이런 질문에 부딪힌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지?"


'뒤처진다'는 말은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한 줄로 서 있을 때나 유효한 단어다.

하지만 커리어는 단순한 경주가 아니다.

누군가는 돌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보고,

누군가는 아주 천천히 걷지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결국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정해야 한다.


입춘이 왔다고 해서 당장 꽃이 피지는 않는다.

지금 당신의 계절이 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땅속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며 나아갈 방향을 고르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진짜 뒤처짐은

잠시 멈추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묻지 않는 상태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그 질문을 품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당신만의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질문*
: 요즘 당신은 무엇 때문에 스스로를 재촉하고 있나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거나,
시작은 했는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아직 분명해지지 않은 방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목표를 점검하기 전에,
그 목표가 정말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인지 한 번쯤 차분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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