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제는..."이라는 말이 불편한 이유
사실 이 글은 설 연휴가 지나고 바로 올리려고 했던 글이다.
'새해 덕담'이라는 글감이 떠올라 써 내려가던 글이 끝내 제때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달력은 한 장을 훌쩍 넘겨버렸다.
명절 음식은 이미 다 소화됐고,
세뱃돈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도 어색해진 봄날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명절은 또 돌아올 테니까.
그때는
누군가의 속도를 재촉하는 말보다
그 사람의 시간을 응원하는 말을 건넬 수 있기를...
"선배, 저 결혼할 거예요."
"진짜? 좋은 사람 생겼어?"
"아뇨... 그래도 무조건 추석 전에 결혼할 거예요."
얼마 전 후배와 전화 통화를 했다.
설 연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툭 튀어나온 후배의 결혼 선언.
그런데 이상했다.
"결혼해요"가 아니라 "결혼할 거예요"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지.
후배는 명절에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났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며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였다고 했다.
그때 고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OO이 니는 결혼은 언제 할 거고?"
후배는 웃으며 대답했다고 했다.
"아직 생각 없어요."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아이고... 니 나이가 몇인데... 지금도 엄청 늦었다."
"그래... 이제는 해야지. 지금 안 하면 나중에 힘들어."
"애 낳을 생각도 해야지."
"빨리 결혼해서 엄마 아빠께 손주 안겨드리는 게 효도야."
연휴 동안 같은 이야기가 몇 번이나 반복됐다고 했다.
후배는 그때마다 웃으며
"네, 생각해 볼게요."라며 상황을 넘겼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명절 밥상에서는 대화가 빠르게 흐른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서로의 근황을 묻고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를 만큼 이야기는 여기저기 흘러가고,
누군가의 질문은 또 다른 누군가의 조언으로 쉽게 번진다.
그 속에서 오가는 말 대부분은 나쁜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나름의 애정.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덕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끔 그 덕담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무게로 들리는 순간이 있다.
웃으며 건넨 말인데 왜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한지,
왜 그 자리에선 별일 아닌 척 넘겼는데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생각나는지.
덕담이 어긋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이 '상대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걱정돼서 한 말이지만,
나는 사랑해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좋은 뜻으로 던진 말이지만.
그 '나의 마음'이 상대의 현실보다 앞서 있을 때가 있다.
말에는 종종 보이지 않는 전제가 담겨 있다.
"이 나이엔 결혼해야지."
"이 정도면 다음 단계로 가야지."
그 말은 질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미 답을 정해 놓은 말에 가깝다.
'지금의 너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지금의 너는 아직 덜 완성됐다.'
그 전제가 상대의 상황과 맞지 않을 때 말은 조용히 무게를 갖는다.
지금 자기 일을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
"그래도 이제는..."이라는 말은
응원이라기보다 삶의 방향을 수정하라는 조언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조언보다 더 불편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시간을
누군가는 함부로 '잠깐의 과정'으로 정리해 버리는 느낌.
내가 공들여 쌓아 온 하루하루를
누군가가 너무 쉽게 '그래도 결국은...'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느낌.
그런 감정은 겉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듣는 사람 마음속에는 분명히 남는다.
물론 그런 말을 건넨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그저 웃으며 건넨 가벼운 한마디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말은 의도보다 결과로 기억된다.
그래서 어떤 말은 말하는 사람에겐 덕담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자기 삶을 점검받는 순간처럼 남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너무 쉽게 다음 단계로 밀어 넣으려 한다.
"그래서 다음은?"
"이제는 해야지."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 이 시간이 충분히 소중한 순간일 수도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자기 삶의 리듬을 찾고,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간.
겉으로 보기엔 아직 무언가를 덜 이룬 것처럼 보여도, 정작 본인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시간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충만함을 보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라고 말한다.
마치 인생에도 정해진 순서와 마감 기한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삶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조금 빨리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는 조금 더 오래 망설이며,
누군가는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덕담은 쉽게 압박이 된다.
그래서 덕담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말이다.
누군가의 미래를 대신 설계해 주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시간을 인정해 주는 말일 때 비로소 따뜻하게 들린다.
"요즘 일 재미있다며, 보기 좋더라."
"네가 즐거워 보이니까 나도 좋다."
이런 말에는 기한도 없고, 정답도 없고, 은근한 비교도 없다.
오직 '지금의 너를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태도만 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이 위로받는 순간은 대개 그런 말 앞에서 찾아온다.
덕담은 상대의 삶을 재촉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걷고 있는 시간을 가만히 응원해 주는 말일지도 모른다.
말은 누군가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조용히 인정해 주는 온도일 때
더 오래, 더 따뜻하게 남는다.
다음 명절이 오면 누군가의 계획을 묻기 전에 그 사람의 표정부터 살펴보면 좋겠다.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무엇이 즐겁고 무엇이 버거운지.
그 질문 하나가 어쩌면 어설픈 덕담보다 훨씬 다정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