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속에서도 나를 일으키는 단 한순간의 기억
요즘은 시간이 똑바로 걷지 않는다.
가끔은 마음이 뛰는 속도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어떤 날은 생각이 구름처럼 느리게 흘러가며 하루를 비껴간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뒤부터 그렇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문장 하나에 마음이 붙잡히고, 낯선 이의 글 속에서 오래전 내 감정이 불쑥 살아나기도 한다.
한두 편쯤 읽고 나면, 어느새 작은 시곗바늘이 슬쩍 한두 칸쯤 앞으로 와 있다.
글을 쓸 때는 더 이상하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나를 꺼내 읽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문장을 쓰고 지우는 사이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었다.
요즘은 강의도 드물고, 시간이 넉넉한 날이 많은데도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
약속도, TV도, 가끔은 집안일도 뒤로 밀려나고 머릿속에 '브런치'라는 단어만 어른거린다.
아무도 나에게 원고를 재촉하지 않는데, 나는 매일 마감을 앞둔 것마냥 조용히 들떠 있다.
근사한 글을 써야 한다는 조급함이라 기보단, 무언가 꺼내 쓰고 싶은 마음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딱히 뭘 이뤄낸 것도 아닌데,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복판에
작은 불씨 하나가 살랑살랑 살아 있다.
그럴 때, 문득 깨닫는다.
아...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 있구나.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 하나쯤은 있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했던 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밀려오던 순간, 마치 내가 내 자리를 딱 찾아간 것처럼, 어디 하나 불편한 데 없이 ‘맞아떨어졌던’ 기억.
그런 순간에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흐른다.
누가 보상을 주지 않아도, 그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 감정은 단순히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 나답게 존재하고 있다는 깊은 울림, 그리고 그 감정은 내 안에 있는 중요한 가치를 드러낸다.
‘기여’, ‘연결’, ‘자율성’, ‘성장’, ‘창의성’…
우리는 그 순간에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조용히 깨닫게 된다.
한 번 떠올려보자.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살아 있구나’ 느꼈던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몰입했던 기억
누군가의 고마움에 마음이 울컥했던 날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그 순간
그건 아주 오래전 일일 수도 있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평범한 하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분명히 당신 안에 남아 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 묻혀 있을 뿐.
그 기억을 꺼내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회복하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그 기억이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된다.
우리는 매일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할지, 어떤 길을 갈지, 어떻게 살아갈지를.
하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기준이 없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기준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살아 있던 그 순간의 감정’에서 시작된다.
그 감정은 말해준다.
이 방향이 너에게 맞는 길이야.
이럴 때 너는 진짜 너답게 빛났어.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지금, 조용히 이렇게 적어보자.
“나는 __________할 때,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 문장이 당신의 무기력한 하루를 조용히 흔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건네줄지도 모른다.
그 감정은, 잊힌 게 아니다.
그저, 당신이 다시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필요하다면, 오늘 하루는 그 순간을 꺼내는 데 써도 좋다.
그 기억은 다시 당신을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나를 다시 꺼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