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갈증이 말해준 것들
스피치 강의를 시작한 지 올해로 어느덧 24년 차다.
처음엔 한 시간짜리 수업 하나하나에도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해, 땀에 젖은 손바닥을 숨기며 마무리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나는 특별히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강의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함은 나에게 안정감을 줬지만, 동시에 내 안의 '낯선 나'를 깨우기도 했다. 매번 비슷한 구성, 비슷한 흐름, 익숙한 반응... 잘하고는 있지만, 뭔가 빠져 있는 느낌... 성실히 달리고 있지만 어딘가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감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너무 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은 처음엔 작게 속삭이다가 점점 내 안에서 커져갔다. 결국 나는 그 물음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것은 불만이 아니라, 나를 향한 갈망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만큼,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 무언의 갈증이 결국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아주 작은 움직임부터 시작했다. 익숙한 스피치 강의에서 조금씩 주제를 확장해 보기 시작했고, 나와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분야로도 발을 들여놓았다.
이런저런 강사 양성과정에 등록하고, DISC, 에니어그램, MBTI 같은 성향 분석 도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책, 힐링 콘텐츠, 코칭, 메타버스, 생성형 AI 같은 전혀 다른 영역의 공부도 하나씩 손을 댔다.
물론 이런 공부들을 하루아침에 뚝딱 해치운 건 아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하나씩 천천히 나의 강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렇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제법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그 나름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강사가 되었다.
이 여정은 거창한 도약이 아니었다. 그저 나침반을 5도쯤 기울이는 마음으로, 내가 더 알고 싶은 쪽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긴 결과였다. 그러나 그 작은 기울임이 내 감각을 바꾸었고, 삶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았다.
얼마 전, '민원응대 코칭대화법'에 대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그동안 익숙했던 민원응대 강의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 코칭을 접목해 실질적인 대화 기술을 전하는 일이었고, 자활센터 종사자들의 감정선에 직접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수업이었다.
강의 제안을 받은 날 나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넘어서 감정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민원 현장에서 마주하는 분노, 억울함, 무력감 같은 감정의 결을 하나씩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자료를 찾으며 수많은 사례를 읽었고,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사람들의 경험을 살폈다. 강의 흐름을 짜는 데만 며칠이 걸렸고, 교안의 문장 하나하나에도 여러 번 손이 갔다. 내가 알고 있는 이론을 어떻게 실천적 언어로 바꿀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누군가 이 강의를 듣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준비한 강의를 마친 후, 수강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강의는… 좀 다르네요. 말보다 마음이 먼저 와닿았어요.
그 순간 나는, 그간 이 강의를 위해 진심을 다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족한 걸 메우기 위해 끝까지 고민했고, 수강생에게 더 다가가고자 반복해서 다듬은 노력이 떠올랐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전해졌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작고 진한 감정이, 나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날 나는 확신했다. 변화는 거대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진심으로 향하게 하는 방향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충분하다. 그 작은 기울임이 내 삶을 다시 숨 쉬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큰 변화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가?”
그 변화는 꼭 커다란 결심이나 삶을 통째로 뒤집는 선택일 필요는 없다. 익숙한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보는 것, 지금의 나에게 정직해지는 것,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하루에 단 한 가지라도 나를 위한 선택을 해보는 것. 한 줄이라도 나의 마음을 적어보는 것. 누구도 몰랐던 내 감정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 그 조용한 움직임이 쌓이면, 언젠가 분명하게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변화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외면해 온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서 작게 피어난 그 바람 하나. 그것을 삶이라는 무대에 조심스레 올려놓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