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몸을 사랑하기로 했다
열흘 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그동안 좀 많이 아팠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가 점점 커졌고
결국, 글도 일도 모두 멈춰야 했습니다.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동안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조용히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그 시간 동안 제 안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자
몸과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된 순간들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나를 돌보듯, 한 줄 한 줄 마음을 담아.
지난주 화요일,
아들의 학교에서 공개수업이 있던 날.
평소처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하면서
"잘 갔다 와."라는 인사 대신 "좀 이따 만나."라는 말을 건넸다.
시간 맞춰 학교에 도착했고
책상에 앉아 친구들과 웃고 있는 아들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날따라 창밖 햇살도 유난히 부드럽고, 아이들 목소리도 다정하게 들렸다.
선생님께서 재밌는 수업을 준비하셔서 아이들의 짧은 연극도 보고
제각각 개성 있게 발표하던 모습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던 중 갑자기 몸이 이상했다.
옷 안에서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귀가 멍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입안에는 침이 고이고, 토할 것 같은 울렁임이 몰려왔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안 돼...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버텨보려 했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남은 10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복도 끝 화장실로 달려갔고 한쪽 벽에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단 몇 초,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데 다시 눈을 떠서 시계를 봤을 땐 5분이 지나 있었다.
그 사이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교실로 돌아가자 이내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아들과 선생님께 짧은 인사를 건넨 뒤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그날 저녁엔 강의가 있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가슴이 조여 오는 듯한 통증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고,
내가 지금 어디가 아픈 건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좀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통증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져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국 강의 시작 한 시간 반을 남겨두고 교육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내 목소리에서 힘겨움이 느껴졌는지 강의는 한 주 연기하면 되니 걱정 말고 몸부터 챙기라고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몇 번이나 "죄송하다"는 인사를 반복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말을 할 힘조차 없는 내 몸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기억도, 감정도 흐릿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 한 모금 삼킬 기운도 없었고, 눈 한 번 깜빡일 힘조차 없었다.
통증 때문에 밤잠을 설쳤지만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과 위, 어깨와 목, 아니 온몸이 불편했고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병원을 가려고 해도 도무지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증상이 복합적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지?'
요즘 크게 스트레스받은 일도 없었고
딱히 일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달 전부터 목디스크 통증이 심해서 밤에 잠을 좀 설쳤고
그러다 보니 입맛이 없어 종종 끼니를 건너뛰긴 했다.
그래도 정형외과를 다니며 물리치료도 받고 심할 땐 주사도 맞고 약도 처방받아서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다.
예전부터 자주 있던 편두통이 최근 좀 더 심해져 신경과에서 처방받아 놓은 진통제를 한 번씩 꺼내 먹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마치 혀가 부어서 목구멍을 막는 것 같은 느낌에 숨 쉬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고
목소리까지 안 나와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정형외과와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합하니 한 번에 먹는 약이 15알이었다.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르겠다는 농담을 해가면서도 꼬박꼬박 약은 잘 챙겨 먹었지만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모든 사소한 징후들이 결국 한순간에 내 몸을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그냥 놔두면 또 병원은 안 가고 누워만 있을 것 같았는지 남편이 휴가를 내고 함께 병원을 찾았다.
지금까지의 증상을 하나씩 설명하자 의사 선생님은 조용히 진단을 내렸다.
그날 교실에서 겪은 증상은
'미주신경성 실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강한 통증이나 긴장, 피로 등이 자율신경을 자극해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뇌로 가는 혈류가 줄면서
실신처럼 어지럼증과 구토감이 나타나는 현상.
특별히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기온이 높은 공간, 수면 부족, 약물 복용 등이 겹쳤을 때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강도가 좀 약했을 뿐 비슷한 증상은 몇 번 경험한 것 같다.)
가슴 통증, 숨 가쁨, 속 쓰림 증상은
과도한 약물 복용으로 인한 위 점막 손상,
즉 위염이나 위궤양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위가 헐고, 위산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면
호흡 곤란, 가슴 조임, 식은땀, 구토감이 동시에 밀려올 수 있다고 했다.
흑변을 봤다는 내 말에 의사 선생님은 위 점막이 헐면서 출혈이 있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
일단 수액을 맞으며 위를 진정시키는 주사와 영양제를 투약하기로 했다.
2시간쯤 걸린다기에 수액을 맞으며 그동안 못 잤던 잠이라도 좀 자보려 했는데,
도중에 갑자기 위경련이 왔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진경제 주사를 추가로 맞고서야 조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정형외과와 이비인후과에서 받았던 모든 약을 끊고
위 보호제만 먹으며 회복을 시작했다.
숨이 막히는 증상은 조금씩 사라졌고,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도 옅어졌지만,
속 쓰림은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며칠을 조심조심 보내며
내가 겪은 이 고통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뒤늦게 실감하게 되었다.
너무 아프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고 싶었단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 순간엔 너무 아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그 생각조차 위안처럼 느껴졌던 거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분들,
오랜 시간 병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곁에서 지켜보는 분들의
고통과 외로움이 얼마나 깊을지 가슴으로 느껴졌다.
내가 겪은 이 며칠의 고통이 그분들에겐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삶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사실 나도 극강의 고통을 느껴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년 전엔 <뇌척수액 누출로 인한 두 개 내 저압증>을 진단받았던 적도 있고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진단받고 1년째 약을 먹고 있다.
그렇게 아플 때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라며 참아 넘기며 '깡'으로 버티는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이번에도 그럴 뻔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제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말을 몸이 제대로 알아버렸다.
내 몸을 아끼는 일이 결국 날 사랑하는 일이었음을...
그래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
내 몸을, 이제는 내가 좀 더 사랑해 줘야겠다고...
일단, 정말정말 좋아하는 커피를 끊었다. (아... 커피 고프다...)
좋아하는 매운 음식도 당분간 멀리하기로 했다.
짜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했던 입맛을 조금씩 덜어내는 중이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주변에서 운동 좀 하라는 얘기를 참 많이도 듣고 많이도 흘려버렸지만
이젠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보려 한다.
건강검진도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해 두었다.
밤 11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 중이고,
물도 억지로라도 자주 챙겨 마시고 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하루하루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살아내는 중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때 쉬고, 제때 먹고, 제때 자기로 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하지만 지키기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보려고 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요즘 몸이 작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나를 어떻게 돌보고 있지?"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이 부디 조금 더 건강한 오늘로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