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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Mar 18. 2018

파묘(破墓)

현대수필

파묘(破墓)

                                        김형하  




 묘 없애기 좋은 윤달이다. 조상님께 불효하러 일부러 고향 가는 놈도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조상을 위한 파 묘가 아닌 산 사람을 위한 파 묘가 맞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든지 불운이 겹칠 때는 내 탓보다는 조상을 탓한다. 아들이 한때 역술에 빠진 적이 있다. 만신에게도 물어봤다. 아들 병이 낫지 않는 것은 조상신 때문이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다음 세대가 벌초하기 싫어서, 성묘가 귀찮아서 파묘하는 것 아닌가, 그럴듯하다.

 아무튼, 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을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죽음은 마무리요. 새로움의 시작인 것이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는 죽지 않은 생명체는 없다. 죽음 그 자체가 없는 세상은 어디일까? 사체의 안식처가 바로 묘지이고 보면 사람의 시체를 매장한 시설물로 무덤, 뫼, 묘(墓), 영(塋), 총(塚), 분(墳)으로 부르며 임금이나 황제의 묘는 능(陵)이라 부른다.

 묘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시체추리물과 죽은 사람의 기념적 형상물이라는 설이다. 시체추리물의 근거는 시체가 부패하면 악취가 생기고 보기에도 흉하고 위생상 전염병 예방 차원 등 어떤 방법으로든 시체를 처리해야 했기에 묘가 생겼다는 것이다. 시체의 처리 방법도 생활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체를 바위나 나무 위에 얹어놓아 새나 짐승들에게 그 처리를 맡기는 풍장(風葬), 강변이나 해변에서 시체를 물속에 가라앉혀 물고기에 그 처리를 맡기는 수장(水葬), 열대지방에서 급속한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해 화장(火葬)을 하는 것 등이 있다.  

파묘(破墓) 

삼월 스무날, 도굴하러 고향 간다 도굴하기 좋은 날이다 전생과 이승을 구르는 기억장치 속 

소멸과 소생의 굴곡진 세월 

오소소 쏟아져 나온다 고함 들려와도 무섭지 않았던 그 물빛어느겨울날, 

할머니의 냉랭한 체온이 그립다 개구쟁이야, 그만 놀고 집에 가야지, 

춥겠다, 하시던 할머니 

지우천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킥킥킥~ 할머니는 어느 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그 후 삼 년 뒤 중풍 맞고 멀리 떠나셨다

할머니를 배웅하지 못했다 철없어서 어머니가 할머니 삼년상을 모실 때 나는 비로소 당신의 배웅을 보았다 너무 늦은 배웅에 할아버지는 돈 벌어 오겠다며 

집 나간 지 감감무소식이다 얼굴 없는 빛바랜 보험증서 몇 장뿐, 기억조차 없다

보험금 백팔십 원也 昭和 12년 11월 16일 조선총독부 체신국장 山田忠次

보험금은 타셨는지? 도굴당한 그 세월만큼 만주벌판을 방랑하다 객사하셨는지 

짐승 밥이 되셨는지 알 길이 없다

이승이 보이는 ‘장삼불’ 언덕배기에 할머니 묘를 썼다 양지바른 할머니 집에서 물이 나온다는 만신의 바람을 본다, 엉큼하긴 외진 곳에 누워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아버지 생각에수없이 흘리셨을 피눈물,

어느 날 할머니는 새집으로 이사하셨다 할머니 옆방에 할아버지까지 모셨으니, 좋다

'얼마만의 합방인가 할멈, 좋아?' 

이놈의 영감태기 이제 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영감, 너른 세상으로 훨훨 날아갑시다 여기, 너무 갑갑해요 그럽시다

고개를 수그리고 손자는 용서를 빈다 이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신지 오래되어 체백이 편하지 않으실까 염려되어 오늘 더 너른 세상으로 모시고자 하오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노하지 마시고 두려하지도 마시고 놀라지도 마시고 바라옵니다 훗날 자손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 없도록 굽어살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삼가 맑은 술과 포과를 흠향 하시옵소서

참 염치없는 불효다 도굴한 죄 궁색한 변명이다 

 씻을 수 없는 나의 업보(業報) 어찌 조상 탓으로 원망하랴 할머니 할아버지가 봄날 행차 시다 두 분 배웅하고 두 눈 감고 먼 곳, 내집을 그려봤다 도굴이 아닌 한 줌의 먼지로 사라질 저쪽 세상, 꿈처럼 아름답다 불효 중에 죽음을 봤다 내 집도 그렸다 파묘가 없는 그곳이 내 집이다. 윤삼월스무날, 도굴하고 보니 수레바퀴가 전생과 이승을 구르고 소생과 소멸을 생각하는 하루였다

 현대판 초호화 묘도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김일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죽은 후에 화장하지 않고 안전관에 안장해뒀다.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방편인지는 몰라도 사후관리에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와 반면, 중국의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죽음에 앞서 “유해를 화장해 바다에 뿌려 달라” “유골을 안치하는 영당(靈堂)을 만들지 말라” “각막을 기증하고, 유해는 의학연구를 위한 해부용으로 써 달라”는 등의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덩샤오핑의 시신은 그 유언대로 화장해서 서해에 뿌려져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작은 흙무덤 하면 세계적인 대 문호 '레프 니코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jewitsch Tolstoi)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나지 백팔십오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구촌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별난 삶을 살다가 가출하여 불행한 만년을 보냈고 ‘아스타포보’ 역의 역장 집에서 세상을 떴다. ‘야스나야 폴랴나’의 뒤쪽 숲길에 있는 톨스토이의 무덤은 그의 유언대로 풀로 덮인 작은 흙무덤에는 작은 비석 하나 없다. 지금도 톨스토이의 흙무덤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고, 그는 세계적인 대문호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이들의 검소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우리나라의 묘지문화에 많은 생각을 던져 놓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일부 정치지도자나 소위 ‘졸부’들이 호화 관혼상제를 계속하고 있어 국민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본 개념 없는 국민은 그것이 효의 본보기인 양, 벼락출세하거나 '졸부'가 되면 먼저 조상 묘 단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행 하다 보면 양지바른 산지에는 으레 묘지가 있고, 그 묘지에는 석물이 장식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일부 공원묘지는 온 산이 무덤으로 변했고 장마철이면 수분을 흡수치 못해 산사태가 발생해 무덤들이 허물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조상의 시신들이 뒤섞이고 장마가 끝나면 자기 조상 시신을 찾는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꼴을 보고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공원묘역을 찾고 있다. 

 해마다 추석을 앞둔 무렵에는 연례행사처럼 벌초 행렬로 고속도로가 막히고, 벌초하다 예취기에 다치고 심지어 벌에 쏘여 사망하는 일도 생긴다. 오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 사실 자기 부모와 조상은 다 소중하다. 그분을 위한 묘지로 쓰이는 땅은 아깝지 않을 수 있겠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솔선해서 자연과 국토보전에 대한 사고와 의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토는 묘지로 뒤덮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일찍부터 묘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좁은 땅덩어리에 너도나도 묘지에 들어간다면 우리 국토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젠 묘지 문화도 변해야 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답답하고 어두운 땅속에 묻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한줌의 재로 연소하든지, 남을 위해 쓸 만한 신체 일부를 기증하든지 봉안당도 수목장도 번거롭다. 나는 유언장을 미리 남겨 뒀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랑하는 작은 시비하나 세우고 그 주변에 나를 뿌려다오. 아침 일찍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 파묘의 당위성을 아뢰고 파묘를 지켜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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