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
김형하
춘삼월 봄이 왔다. 봄은 만물이 생동하는 환희의 내재율이다. 눈앞에 새싹이 돋아나고 싱그러운 봄 향기가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고향에도 봄이 왔다. 눈앞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피어오르고 지우천은 방긋 나근나근 흐른다. 도로가 안쪽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내 고향 효자동 마을이 눈에 선하다.
아직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고 있지만, 마음 설레는 봄이다. 마음 설레다 보면 유독 봄 타는 사람이 있다. 봄은 생명력이 스프링처럼 튄다. 그래서 봄을 Spring이라 한다. 봄[Spring]이 오면 나는 이해인 시인처럼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봄 앓이를 하고 싶다.”
주말에는 전국에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리고 강원도 일부 산간은 폭설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삼월에 눈이라니, 봄을 시샘하는 날씨의 질투이다. 3주 전부터 훌쩍훌쩍 앓아오던 코감기가 떨어졌는지 봄 냄새가 콧구멍으로 유입된다. 오늘 아침은 아내가 씀바귀 뿌리 무침에 냉이 된장국을 준비했다. 입맛을 잃지 않고 기운을 돋우는 데는 봄나물이 최고다. 대표적인 봄나물은 두릅, 냉이, 달래, 씀바귀, 참나물, 쑥과 달래, 냉이, 원추리 등이 있다. 이들 봄나물은 연한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몸의 장을 말끔히 씻어 주기도 한다. 냉이 된장국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씀바귀 뿌리 무침 한 점 입안에 넣어봤다. 쓴맛이 강렬하다. 대체로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쓴 음식은 생전 처음이다. 아내에게 요리법을 물어봤다. 씀바귀 뿌리에 각종 양념을 넣고 정성껏 만들었는데 끓는 물에 삶아서 하룻밤 정도 소금물에 담가 두어 쓴맛을 빼야 했는데 곧장 버무린 바람에 쓴맛이 소태 같았다. 쓴맛이 몸에 좋으니 많이 잡사 두란다. 밥 한 그릇 먹는 동안 강렬한 쓴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씀바귀는 열을 내리고 해독작용을 하며 위를 튼튼하게 하고 설사나 노화 억제와 면역력 향상에도 좋은 건강 나물이고 약이란다.
쓴맛 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 한 페이지가 있다. 18년 전 4월 어느 일요일, 새벽공기도 차고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고교동창 다섯 명이 가평에 있는 장재울 소재 명지산 계곡에 봄나들이를 갔다. 명지산은 진달래와 여러 가지 이름 모를 들꽃과 더덕, 두릅 등 봄의 생명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는 더덕을 캐어 ‘더덕계탕’을 만들어 맛있게 먹으며 자연을 즐겼다.
따뜻한 봄 햇살 아래 청정인 산골 개울가 바위틈에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얼음 틈새에도 봄은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산골 논두렁 밭두렁에는 봄나물로 온통 연두색이다. 민들레와 쑥을 캐기 시작했다. 이 봄나물은 나와는 어릴 적부터 친숙하다. 쑥을 일부러 뿌리째 캤다.
집에 돌아오니 컴컴한 밤이다. 피곤이 밀려온다. 배낭에서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꺼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는 뿌리까지 달린 쑥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런 쑥으로는 국을 끓일 수 없다며 내 금싸라기 같은 수고를 냉정하게 뿌리친다. 뿌리를 넣고 국을 끓이면 혼자서 다 먹겠노라며 큰소리쳤다. 아내는 마지못해 쑥을 깨끗이 씻어 국을 끓였다. 쑥국은 시꺼멓다. 보기만 해도 쓰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라는 속담을 상기하며 쑥국을 한 그릇 담아 몇 숟가락 떴다. 이건 쑥국이 아니고 사약이다. 그때의 쑥국과 오늘 아침에 먹었던 씀바귀 뿌리 무침의 쓴맛이 어쩌면 그리도 비슷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