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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Oct 29. 2018

슬픈 날의 기록물

현대수필

슬픈 날의 기록물

                                                                 김형하




 어느 정도 슬픔이 동반되어야 만이 비보(悲報)라 할 수  있나? 비보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구나 본인과 상관없는 비보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네 삶에 될 수 있으면 비보가 날아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밤에 악몽도 꾸지 않았다. 잠도 잘 잤다. 평소처럼  출근해서 e-메일을 열람했다.  미국 파트너의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 비보가 충격이라는 증거이다.


 “hello this is Jab's son. Jab is in the  hospital right now and is unable to respond to any messages, I am sorry if this  causes any problems or delays. I will update you as soon as possible.”  

  “안녕하세요, Jab의 아들입니다. Jab는 지금 병원에 있어 어떤 메시지에도 응답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지연될 경우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Jab 사장과 통화하고 카톡을 주고받았다. 며칠 사이에 일이 생겼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Jab 사장이 일어나지 못하면  안 돼! 큰일이다!  그와는 사업 동반자로서 오랜 친구로서 지금까지 근 28년간 신뢰와 친분을 쌓아왔다.  나이도 갑장이고 세월이 흘러도 일에 관해서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서로를 신뢰하며 존중하는 관계를  맺어왔다.
 지금  Jab 사장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  갑자기 흑백필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 번에  십만 불짜리 주문받으면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몇 년 전 달성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양한 금속을 다루면서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금속도 사람 이름처럼 많은 종류가 있다. 일반 금속부터  희귀금속까지 용도와 제각기 지닌 특성이 다르지만, 금속은 우리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Jab  사장은 금속 분야 전문가이다. 대학에서도 금속 관련  전공을 공부했다. 대기업에서 원자재 관련 일을 보다가 미국지사에서 근무한  계기가 되어 그곳에 정착하여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처음 정착했을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기반을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해오고  있다. 작년에 큰딸 시집보내고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려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Jab은 일과 후 운동하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그 후 보름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Jab 사장이 운명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다. 정말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난 사람, 섭섭하고  미워졌다. 장례를 치른다는 연락을 받고도 가보지는 못해  미안하다. 조의를 표하고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Jab 사장님, 이젠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영면하소서” “사모님, 사장님을 봐서라도 앞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몇  건에 대하여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 걱정 하나를 덜었다. 대부분 오퍼 업  하는 회사는 규모도 작고 인원도 한두 명인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 인력만  있으면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는 사업 특성상 많은 인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혼자 하는 회사는 불안하다.
이번 Jab 사장이 쓰러졌을 때 두  가지 걱정 때문에 고심이 많았다. 제발 Jab 사장이 벌떡 일어나 줬으면 하는 것과 현재 벌려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걱정이었다. 내년 2월까지 들어올 원자재도 걱정되고 누가 Jab  사장 일을 이어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불안했다. 마침  구세주가 나타났다. 미셀이다,  미셀은 십 년 전만 하더라도 Jab 사장을 도와 일한  여직원이었다. 미셀은 회사를 그만둔 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일 감각을 되찾아 하루  이틀 사이에 우리의 요구를 잘 처리하고 있다. Jab 사장의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A. INC’ 사는 Jab 사장의 역사와 애정이 묻어있는 회사로 Jab  아드님이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 했다. 신임 사장에게  기대감이 크다.
 나 자신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계속 금속과 함께하고 싶다. 금속과 함께한 지 어느덧  30년이 코앞에 와있다. 금속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호기심이 생긴다. 새로운  금속에 대하여 수주를 받고 Jab 사장과 함께 기뻐했던 일이며 메이커에서  열처리를 잘못해서 문제가 생겨 재생산하여 공급해주기까지의 피 말리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생산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던 메이커의 발뺌에 증거를 수집하고 의견서를 개진하여 메이커를 설득한 결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문제를 잘 해결하여 거래처를 잃지 않고 신뢰를 계속 유지했던 일  등이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눈앞에 아른거린다.
 상거래를 하다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평소처럼 정상적으로 거래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얼마만큼 신속하게 문제를 잘 해결하는가에 따라 믿음과 신뢰는  360도 달라진다.  거래처에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있다. “가능한  실수는 없게 하겠지만, 실수나 문제가 발생 시에는 신속하게 해결하고 책임질  것을 약속합니다.” 어떤 회사는 문제가 발생하면 변명하거나 도망가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만 급급해한다. 이런 회사는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지역에서 소규모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자긍심과 자부심만큼은 어느  대기업 못지않다. 돈은 별로 없지만, 신용하면 으뜸이라 자부한다.  우리가 공급하는 원자재가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산업발전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에 보람을 느낀다. Jab 사장은 멀리 떠났어도 평소 함께 일하는 것처럼 보람을 느낀다. 요 며칠은 우리의 삶에서 ‘한  치의 앞날은 모른다.’는 말을 절실하게 실감하는 삶이었다.
  
  


《한국현대문학작가-동화·수필》 한국문학작가연대(2018년 10월)


[출처]  슬픈 날의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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