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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24. 2019

나의 롤모델은 자신의 딸에게 나를 롤모델로 삼으라 했다

 나에겐 롤모델인 사촌 언니가 있다. 언니는 발이 넓은 전국구다. 위로 오빠만 넷에 막내딸인데도 호탕한 성격에 대장부 같은 기질이다. 고모는 언니를 애지중지 길렀고 자랑스러워했다. 고모가 말하길 언니가 학교 다닐 때는 YMCA 대구 경북 대표(이름만 들어봤지 어떤 조직인지 잘 몰라서 제대로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로 활동했는데 손범수 아나운서가 탐을 내며 키우려 했다는 썰이 있다. 그런데 유한양행 이사님이 언니를 잽싸게 스카웃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데려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곳에서 거의 20여 년 간 오랫동안 일을 하더니 어느 순간 투잡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다른 대구 막창'이라는 막창 가게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다른 감자탕' 짝퉁 아니냐고 거기서 걸고넘어지지 않냐고 했는데 다른 업종이라 그런지 괜찮나 보다. 어쩌면 같이 검색되고 같이 윈윈 하는 그런 것인지 그쪽 업계 상황은 잘 모르겠다.


 그러다 몇 년 후 회사를 아예 그만두고 체인사업을 한다고 했다. 언니는 스스로도 일머리가 있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일머리 있는 언니에게 이십여 년 전 처음 사회생활을 할 때 발이 되어 주었던 티코는 이제 벤츠가 되어있다.


 막창가게를 투잡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남의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언제 그렇게 체인이 늘었냐 하니 처음엔 원형탈모가 올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뭐 하나를 해도 확실히 하는 성격들은 뭐든 정말 해내긴 하나보다. 언니는 맥도날드, 롯데리아 하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막창 체인도 그렇게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집에 번듯한 사람이 없어 자기가 번듯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싹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건지 언니는 일곱 살에 대구에서 혼자 서울 외숙모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고 했다.

 "와, 미쳤다. 무섭지도 않은가, 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대답이 더 압권이었다.

 "외숙모를 내가 정말 좋아하고 따르기도 해서 맨날 찾아가려고 했던 것도 있지만, 그렇게 가다가 길이라도 잃어버렸으면 싶었지. 변변찮은 집구석 그냥 길이라도 잃어버려서 확 나와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든."

 어떻게 일곱 살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겁쟁이인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난 아직도 한밤중에 혼자 자다 깼을 때 동생이 한 지붕 아래 다른 방에서 자고 있어도 무서운데 말이다.


 고모 말로는 다섯 살 때도 보통이 아니었던 언니의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화가 있다. 오빠가 동네 애한테 맞고 울면서 들어왔는데 그걸 대신 복수해주러 그 집으로 쳐들어갔다. 하필 그 때린 애는 동네에서 별나고 못됐기로 소문난 할머니의 손자였다. 다른 사람은 찾아가지도 않을 그곳에 겁도 없이 가서 그 손자에게 불꽃 싸다구를 날렸는데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났다.  그러자 언니는 "자기 새끼 귀하면 남의 새끼 귀한 줄도 알아야지 자기 새끼만 귀하나?!"하고 같이 소리를 지르고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온 동네 연탄을 다 가지고 와 그 집 마당에 부수어 던지고는 영악하게 물을 끼얹어 자근자근 밟아 문질렀다. 몇 번을 넘어갈 듯 악을 쓰며 왔다 갔다 그러고 있는 걸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혼을 내다가 "아이고 야야, 내가 잘못했다. 누가 야 좀 말려라." 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내가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대구에 와서는 고모집에서 몇 년간 지냈는데 언니는 딸을 고모한테 맡겨놓고 일을 하러 다녔다. 어차피 언니의 집도 고모집 바로 근처였다. 코 흘리던 일곱 살의 조카는 어느덧 이십 대 숙녀가 되었다. 대학교 때 언니가 구해준 마트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고 이번에도 주말 동안 막창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좀 하라는 말에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웬만큼은 다 하잖아?"

 "그래, 넌 그게 문제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게 없어."

 언니는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딸에게 말했다.


란아, 엄마가 늘 말했지? 다 필요 없고 딱 가령이 이모를 니 인생의 롤모델로 삼으면 돼. 딱 저 반대로만 살자, 하고 살면 되는 거야!!!


 나의 롤모델은 자신의 딸에게 나를 롤모델로 삼으라고 했다. 반면교사든 뭐든 이래나 저래나 누군가의 롤모델이니 그만큼 나도 영향력 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두고 봐라. 누군가에겐 '저렇게 살아도 괜찮은 인생이구나' 하고 진정한 롤모델이 될 것이다.





 언니의 에피소드는 많다. 어쩌다 언니랑 동물 얘기를 하게 됐다.

 "나 예전에 우리 집 닭장에서 닭이 나왔는데 마루로 올라와서 내 키까지 푸드덕 날아오르는 거 보고 식겁했어, 발톱이랑 부리는 또 얼마나 무섭게 생겼게, 내 눈 파이는 줄 알았어"

 "야, 말도 마, 닭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데, 나 어릴 때 너희 집 놀러 갔다가 닭이 확 날아올라서 내 허벅지를 찍었는데 그때 청바지 입고 있었는데도 피가 흘렀어. 원래 살짝 찢어진 청바지이기도 했지만."

"대박이다, 진짜 찍혔을 줄이야. 난 소가 뛰는 거 보고도 깜짝 놀랐어."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데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나만 보면 우리 집 개는 사납게 짖어대고 소도 나를 노려보듯 뚫어지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책에서 '소의 순박한 눈망울'이란 표현을 보고 말도 안 되는 표현이라 생각할 만큼 나에게 소의 눈은 노려보는 눈이었다.


 어릴 때는 집 마당 한쪽에 소마굿간이 있어 소를 키웠는데 한 번씩 여물과 사료를 주는 심부름을 했다. 말린 짚은 쳐다도 안 보고 사료만 먹어대는, 나처럼 편식쟁이들이었다. 사료 바가지만 갖다 대면 미친 듯이 고개를 들이밀고 긴 혀를 날름거리는데 그게 내 손에 닿을까 봐 너무 무섭고 징그러웠다.


 하루는 문이 열리는 바람에 송아지가 탈출한 적이 있다. 그전까지 투우란 것을 몰랐던 나에게 늘 갇혀있던 소의 이미지는 뛸 줄 모르는 느릿느릿한 동물, 목동이 소를 타고 피리 불며 타고 가는 그런 한가로운 이미지였다. 묶어두지 않았던 송아지 한 마리가 나와 뜀박질하는 광경은 나에게 쇼킹 그 자체였다. 엄마는 나보고 한쪽을 막아서라고 했지만 나는 무서웠다.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 내서 섰는데 내쪽으로 전력질주를 해오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장면을 보면 주인공은 피하지 않고 꼭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있다. 저 시간에 피하고도 남았겠다 하고 빈정거렸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그대로 얼어붙어있었다. 다행히 송아지는 내 옆으로 쌩하니 달려갔는데 겨울이라 얼음이 얼어있던 탓에 코너를 돌면서 내 앞에서 철푸덕 넘어져 그것대로 또 크게 놀랐다.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송아지 뛰는 얘기 하니까 또 생각난다. 나 진짜 너희 집 올 때마다 변을 당했네. 나도 동물 무서워하는데 논 쪽에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송아지가 막 내쪽으로 달려오는 거야. 그걸 보고 무서워서 나도 막 뛰었지. 근데 뒤로 돌아보니 계속 달려오고 있는 거야, 지는 좋다고 뛰었겠지. 그래서 내가 계속 달리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그대로 확 멈춰버렸는데 송아지가  뒤따라오다 멈추지 못하고 나를 머리로 받아버린 거야. 내 앞에 가던 아저씨가 나를 송아지 등에 태워서 엎드린 채로 엉엉 울면서 집에 실려왔어."

 난 그 한 편의 만화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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