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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26. 2019

나는 사남매 중 둘째입니다(1)

 내가 사남매라고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내 친구들도 삼남매까지는 꽤 되지만 사남매는 잘 없다. 마는 아들을 낳기 위해 넷이나 낳았고 결국 성공했다. 키울 때 힘들었겠지만 형제가 많아 나는 좋다.

 

 나는 할머니가 두 분이다. 할아버지는 두 분 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른다. 아빠는 결혼을 하고 나서 다 큰 성인이 되었을 때 같은 마을에 살던 친척집에 대를 이어 주기 위해 양자로 갔다. 어차피 우리 마을은 집성촌이라 내가 어릴 때 큰집과 고모들이 이사 가기 전에는 다 한마을에 살았다.


 손이 귀한 집에 대를 이어주러 갔으니 줄줄이 딸만 낳은 엄마의 맘고생이 안 봐도 눈에 훤하다. 내 바로 밑에 동생이 태어나던 날, 나는 병원을 갔다. 여동생이 태어났다고 하며 엄마는 집에 전화를 해 할머니에게 알려 드려라 했다. 난 동생이 태어난 게 신기하고 신이 나 들뜬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느닷없는 욕이 날아왔다. "할매 왜 욕하는데!" 난 그때 할머니가 누구를 향해 욕을 하는지 왜 욕을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한테 가서 씩씩 거리며 말을 했지만 그때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알지 못한다. 난 갑자기 날아온 욕설에 화를 주체하지 못할 뿐이었고 그때의 엄마 마음은 어린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계속 토라져 집에 가서도 할머니 말에 대답도 안 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할머니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못된 아이였다고 엄마가 말한다. 다들 뭐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도 모두 할머니에게 설설 기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할머니 성격이 보통은 아니었나 보다. 고모(막창 가게 언니의 엄마)도 웃으면서 "옛날에 너희 할매가 두리(아명)는 닮을 데가 없어가지고 하필 쏘가지 못된 게 고모랑 똑 닮았다면서 내한테 말하더라. 하긴 나도 진짜 못된 게 맨날 나한테 뭐라 하던 할매 밭에 가지 꼭지를 뱅뱅 돌려놓고, 곯아 통통 빠져라 곯아 통통 빠져라 하고 있으면 고게 틀림없이 얼마 뒤에 다 곯아 떨어지거든. 남의 밭이라 다 망가리진 못하고 그렇게 티 안 나게 몰래 살살 돌려놨지" 하셨다. 사촌언니를 보면 그 엄마그 딸이 맞다.


 내 동생을 할매가 구박하면 가만 안 둘 거야 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지켜보았지만 다행히 할머니는 동생도 귀여워하셨다. 할머니들이 오시면 동생을 안아 들고 "하얀 박꽃 같은 게 날 닮았제." 하셨다.

 그리고 어른들 말로는 막내가 태어났을 때도 얼굴은 분명 티 나게 싱글벙글했지만 너무 티 나게 안아주고 예뻐해 주진 않으셨다고 한다. 귀한 아들 너무 극성으로 입에 물고 빨고 키우면 삼신할매가 샘나서 다시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나.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와 내 밑에 동생 간에 터울이 큰 이유는 딸이라는 이유로  명을 유산시켰다고 한다. 언니 전에도 임신을 했었는데 첫 아이는 일 하다가 유산이 됐다고 했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듣고 흥분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다. 그리고 유산이 되거나 유산을 한 건 엄마, 아빠에게도 아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쳐 다시 외쳤다.

 "와나 진짜! 순서만 잘못됐으면 내가 결국 끽 돼서 저 세상 갔을 수도 있는 거잖아! 역시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더니 따지고 보면 니가 셋째가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옛말 틀린 것도 많아. 얼굴 꼭 보고 데려가야 돼. 언니 위에 유산된 아기도 아마 딸이었을 거야. 그럼 내가 셋째가 됐겠지. 그렇다면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가도 되는 거 맞는데."

  
 대를 이어주러 온 우리 집은 제사가 일 년에 열 번은 된다. 나는 엄마가 제사상 차리는 걸 도와달라 할 때마다 우리도 그냥 제사 지내지 말고 맛있는 거나 먹자 했다. 그러면 엄마는 너 때문에 조상 덕을 못 본다고 타박을 했다. 엄마는 아직도 제사를 잘 지내야 조상이 보살펴주시고 제사 때가 되면 없던 돈도 생겨 상차릴 돈이 생긴다고 믿는 구시대적 사람이다. 그럼 믿는 엄마가 열심히 다 상을 차리면 될 것을 왜 엄한 나를 귀찮게 하냐며 난 또 전을 뒤집는다. 화난 상태로 음식을 하면 음식에도 독이 들어간다던데, 내 화가 잔뜩 들어가 이 제사 음식에도 독이 잔뜩 들어가 있을 거라면서. 


 나는 절대 장남한테는 시집을 안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세상 일이 네 마음대로 다 될 거 같냐고, 엄마도 아빠가 다섯째라고 시집왔는데 결혼하고 양자로 오는 바람에 이렇게 장남이 돼서 제사 지내고 있지 않냐고.
 "와 이거 사기결혼이네"

 나는 절대 엄마처럼은 안 살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갑자기 장남이 되어버린 아빠도, 갑자기 주정뱅이가 되어버린 아빠도, 묵묵히 참아주고 견뎌준 엄마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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