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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04. 2019

여인일까, 호랑이일까-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

잔인한 재판을 즐기는 왕이 있었다. 왕은 특별한 경기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죄인을 심판할 때 쓴다.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죄인이 직접 선택하는데 하나는 굶주린 호랑이가 나오고, 하나는 아리따운 여인이 나와 그 여인과 결혼해서 살 수 있다.
왕에게는 공주가 있었는데 신분이 낮은 한 젊은이와 사랑에 빠진 걸 알고 그 젊은이를 심판한다. 공주는 젊은이를 살리기 위해 문의 비밀을 파헤치게 되고 어디에서 호랑이가 나오는지 알아내게 된다.
그때부터 공주는 엄청난 고민에 휩싸인다. 여인은 마을의 아리따운 처녀로 가끔 젊은이와 마주칠 때면 둘이 묘한 눈길을 주고받는 것이 느껴졌고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짧게나마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적이 있다. 짧은 순간이라도 많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법이다.
공주는 젊은이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그 여인과 결혼식을 올릴 것을 생각하면 질투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호랑이를 선택하자니 잔인하게 갈가리 찢겨 피투성이 죽음을 맞이할 젊은이를 생각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심판의 날, 젊은이는 경기장에 끌려 나왔고 평소 공주의 성격을 아는지라 분명 문의 비밀을 알아냈을 거라 확신하고 눈짓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공주는 아무도 모르게 재빨리 손가락으로 한쪽 문을 가리켰다.
공주가 가리킨 문에서 나온 것은 여인일까, 호랑이일까?

이 책은 이렇게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수업을 들어가면 아이들은 원망을 한다. 책이 왜 이렇게 찝찝하게 끝나냐며, 원래 뒤에 내용이 더 있어요? 어떻게 끝나요? 하며 질문 세례를 한다.

좋은 현상이다. 책을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뜻이니까. 책은 원래 이렇게 끝이 난다.


그래서 질문!

과연 공주는 어떤 문을 선택했고, 왜 그 문을 선택했을까?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남자아이들의 비중은 '여인을 선택했을 것이다'가 월등히 높다.

젊은이에 감정 이입해서 호랑이한테 물어 뜯겨 죽는 꼴은 피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항상 반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준다.

"그렇구나, 근데 너 좋아하는 여자친구 있어? 만약에 걔랑 너랑 사귀고 있어. 그리고 너한테 아주 잘생기고 똑똑하고 인기 많은 친구가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걔들이 뭔가 이상한 거야. 왠지 서로 좋아하는 느낌이 자꾸 들어. 그럼 어떨 거 같아? 쿨하게 보내줄 수 있어? "


하지만 호랑이를 선택하는 아이들도 꽤 된다.

공주가 질투의 화신인 데다 왕의 딸이니 왕만큼 잔인할 것이라 했다. 그냥 죽여서 저승에서 만날 것이라 했다.

"죽은 뒤는 사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사후세계가 있을지 없을지, 이대로 그냥 영영 사라져서 죽으면 아예 그대로 끝나버릴지. 그리고 젊은이를 죽이고 나면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아님 일단은 살려 두고 여인이랑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빼앗아서 왕 몰래 계속 만나거나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도 있던데? 그리고 또 만나다 보면 사람 마음이 변해서 젊은이한테 싫증 날 수도 있고 그러면 여인한테 다시 보내면 되잖아.(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다)"


나도 공주가 호랑이를 택했다에 한 표를 건다. 호랑이를 택할 경우 끔찍해하는 장면보다 여인을 질투하는 장면이 훨씬 많았고, 꽁냥꽁냥 행복해할 젊은이와 여인의 미래를 그려보면 배알이 꼴렸을 것이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에 그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써보는 것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아이는

문을 열였을 때 호랑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깜짝 놀라 멈칫했지만 호랑이는 덫에 걸려 있었다. 젊은이는 다른 문을 열었다. 여인도 없었다. 공주가 잘 설득해서 돌려보낸 것이다. 덫도 공주가 미리 던져놓았다. 공주는 자신의 신분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떠난다. 젊은이는 처음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지만(왜인지 물어보니 그 여인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을 것이라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을 것이라 했다) 곧 웃으며 함께 떠났다. 왕과 여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결국 공주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고민을 해결해 나갔다. 그들이 행복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멋진 신여성이 될 것 같은 아이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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