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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l 09. 2019

귤빛 노을, 노란 호박전

 "얘들아, 지은이 좀 봐. 우리 할매처럼 손으로 전 부치고 있어."

 구의 집에서 홈파티를 하기로 해 모인 날이었다. 친구의 말에 우리는 일제히 웃음을 터트다. 정작 집주인인 친구는 "이게 왜?" 하면서 다들 자지러지는 모습에 자기도 따라 웃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해서 그런지, 친구의 요리는 수준급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동창들인데 같은 군 소재 출신에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다들 정서도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았다. 어쩌면 마음이 잘 맞아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한건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대구에 와서도 어쩌다 보니 한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많아 자주 모였다.

 "나 진짜 손으로 전 부치는 건 우리 할매 말고는 처음 봐. 우리 엄마도 저렇게는 못 해."

 "왜, 우리 엄마도 뒤집개 쓰면서 저렇게 손으로 하긴 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손맛이 꽤 좋은 편이다. 그냥 엄마가 해주는 거니까, 엄마 손맛에 길들여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친구들과 내 입맛이 비슷한 걸 보면 엄마 요리 솜씨가 꽤 괜찮은 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시골 본가에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엄마의 음식 솜씨는 검증되었다. 식당집 딸이 셋이나 되었는데 그 친구들도 인정했다.

  

 는 어릴 때 가리는 음식이 많았었는데 어쩌다 바뀌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부터 나의 입맛이 갑자기 확 바뀌면서 세상에 맛없는 게 없어졌다. 그리고 가리는 것 없이 제일 잘 먹고 잘 뛰어놀고 했던 그 3년은 매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고 살던 감기 한 번을 앓지 않고 가장 건강한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먹성으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 편식이 지독히 심했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신선한 먹거리가 지천으로 있었는데도 그때는 그게 행운인 줄 몰랐다. 아이들이 보통 좋아하지 않는 채소는 당연하거니와 고기도 잘 먹지 않았다. 후각이 예민했는지 고기 특유의 냄새가 싫었다. 고기도 안 먹으면 대체 먹고살았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난 군것질 쟁이였다. 달달한 걸 엄청 좋아했다. 래서인지 엄마가 해주는 밥은 다 맛없게 느껴지고 철저하게 공장맛을 즐겼다. 그런 와중에 엄마가 해 주는 음식 중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 것이 '늙은 호박전'이다. 달달하니 내 입맛에 딱이었다. 론 호박전은 지금도 내 손가락에 꼽는 음식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란 건 커서 알게 되었는데 어릴 땐 심심하면 호박전을 해달라고 노래를 불렀었다. 엄마는 반죽을 국자로 떠서 프라이팬 위에 올리고는 손으로도 눌렀다가 뒤집개도 썼다가 하며 부쳤다. 농사를 짓느라 투박한 엄마의 손은 도저히 뜨거움을 못 느끼는 사람 같았다. 뜨거운 그릇이나 냄비를 얼마나 척척 잘도 잡는지 볼 때마다 신기했다. 아무렇지 않게 잡고 나에게 건네주길래 그냥 잡았다가 냄비를 놓쳐 저지레를 몇 번 한 뒤로는 나도 의심이 많아져 맨손으로는 잘 잡지 않았다. 아니면 꼭 손 끝으로 툭툭 건드려보는 조심성이 생겼다.

 "왜 뜨거운 걸 그냥 줘!"

 엄마의 고생이 세월 따라 겹겹이 굳어 쌓인 손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엄마가 호박전을 해주는 날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나에게 최고의 음식이니 남한테도 최고의 음식일 거라 생각했다. 래서 어린 마음에 그걸 자랑하고 싶었다. 마을에는 몇 안 되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는데 그날도 마침 모여서 놀고 있었던 탓에 밖이 시끌벅적했다. 진작부터 나가 같이 놀고 싶었지만 호박전을 위해 꾹 참았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어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 빨리 해줘. 언니 오빠들 간다 말이야."

 그날은 내 인생에 손에 꼽는, 좀 신기하고 희한한 날이었다. 노을이 지는데 평소처럼 하늘만 물드는 그런 흔한 노을이 아니라 온 세상이 밝은 귤색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이 집안까지 비추고 있었다. 노을에 물든 내 손을 뻗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난생처음 보는 놀랍고 경이로운 광경에 '엄마, 저거 봐.' 하고 마루를 가리키며 외쳤다.

엄마는 '응'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저 광경을 보고도 이런 반응인지, 나는 같이 놀라워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방에 있던 아빠에게 뛰어갔다.

 "아빠! 밖에 좀 봐!"

 하고 문을 활짝 열었다.

 "뭘 보라고?"

 "밖이 다 노랗다고! 빨간 건가? 주황색? 아무튼 색깔 봐!"

 "그래, 노을이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너무나 덤덤하고 전혀 놀라지 않는 아빠 엄마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얼마간 있던 그 빛은 사라졌다. 사실 아빠와 엄마에겐 그리 특별한 광경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날만큼 진하고 선명한, 온 세상이 물드는 노을은 보지 못했다.


  마침내 완성된 호박전을 쟁반에 담아 들고뛰어 나갔다. 

 "아까 노을 물 드는 거 봤어?"

 집으로 돌아가려던 언니 오빠들이 내 손에 든 호박전을 보자 '나 한입만' 하고 몰려들었다. 저녁때가 되니 다들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내 물음에는 다들 관심도 없는지 대답도 해주지 않고 몇 되지 않던 호박전을 게눈 감추듯 해치워버렸다.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 사는 오빠만 남았다.

 "나 조금만 더 갖다 주라."

 "싫어! 이제 진짜 조금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이미 어제부터 먹은 상태라 얼마 남지 않은 호박으로 엄마를 졸라 오늘 마저 만든 것이었다. 밖으로 나올 때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반죽을 박박 긁는 걸 봤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나도 얼마 먹지 못했다.


 그런데 그 오빠에게 호박전을 더 주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오빠는 엄마가 없었다. 어린 나에게까지 들린 소문에는 매일 술 취해서 때리는 아빠를 피해 이미 오래전에 집을 나갔다고 한다.


 오빠에겐 그 당시 핫했던 슈퍼마리오 게임기가 있었다. 난 오빠네 집에 자주 전화를 걸었다.

 "오빠야, 우리 집에 슈퍼마리오 게임하러 오면 안 돼?"

 "안돼, 지금 아빠 또 술 취해서 방금 왔어. 못 가."

 오빠는 아저씨에게 들릴 새라 개미만 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낮이었는데도 이미 얼큰하게 취하셨나 보다. 그 아저씨는 정말 우리 아빠보다 더한 주정뱅이였다. 가끔씩 아빠와 그 아저씨가 같이 술을 마시는 걸 보면 너무 싫었다. 미운 아저씨를 매번 흘겨봤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볼 때마다 나에게 '이노무 가시나' 하면서 욕을 해댔다. 착한 오빠를 때리는 그 아저씨가 너무 미웠고 오빠는 불쌍했다. 그것보다 오빠를 나가 놀지도 못하게 해 내가 슈퍼마리오를 할 수 없는 게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나는 오빠에게 말했었다.

 "그럼 오빠야, 나 그거 좀 빌려주면 안 돼? 딱 두 시간만 하고 갖다 줄게."

 오빠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내가 조르면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게임기를 빌려주고는 했다. 


 그런데 나는 그 호박전이 아까워 오빠에게 더 주지 않았다. 예쁜 귤빛 노을, 맛있는 노란 호박전, 모든 게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오빠의 얼굴이 연달아 떠오르면 조금 슬퍼진다. 성인이 되고 오빠는 어디론가 떠났고 그 뒤로 다신 보지 못했다. 엄마처럼 멀리 도망친 모양이다. 오빠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보게 된다면 엄마에게 호박전 맛있게 만드는 법을 꼭 배워 오빠 배가 터지도록 먹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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