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차에 엄마를 억지로 태우다시피 해서 도착했다. 차로 고작 30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이 정말 오랜만이라고 엄마가 그랬다. 하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이 지났으니 엄마가 여기 올 일이 뭐가 있었겠나. 양친이 살아 있을 때도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친정집이었는데. 엄마는 이곳 고향 마을에 잔뜩 병든 몸을 하고서야 다시 왔다. 차에서 내려 잠깐 둘러보자고 했는데 엄마는 한사코 그냥 돌아가자고 한다. 본인의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지금 엄마에게 고향마을은 직접 와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상상할 때 더 좋은 장소인 걸까.
엄마가 눈물을 훔치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명절이었던 것 같다. 원래 외갓집에 갔어야 하는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천장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걸린 수건 하나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 없이 수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엄마가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였던가 “이번에도 못 가보네” 였던가 아니면 “엄마가 보고 싶어” 였을까.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얼굴을 묻고 있던 엄마는 금세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부엌으로 가서 자신의 앞에 놓인 일을 묵묵히 했다는 걸 말이다.
외할머니가 열일곱 살이고 외할아버지가 열여섯 살 일 때 둘은 결혼을 했다. 외할아버지는 결혼 후 키가 십오 센티미터나 자랐다고 한다. 열여섯은 그만큼 어린 나이다. 두 분은 아들 둘과 딸 셋을 낳았고, 나의 엄마는 그들의 첫 번째 딸이다. 자식들 중 장남인 큰외삼촌은 없는 살림인 집에서 최대한으로 베풀 수 있는 지원을 받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에 가서 취직을 했다. 큰외삼촌과 고작 두 살 차이가 나는 엄마는 초등학교를 열여섯 살까지 다녔다. 농사일이 많을 때, 동생이 학교를 다녀야 할 때,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번번이 학교를 쉬는 바람에 육 년이면 끝나는 초등학교를 십 년 가까이 다닌 셈이다. 열여섯은 그만큼 어른스러운 나이이기도 했다.
엄마가 우는 걸 두 번째로 본 건 외할머니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병원이 아닌 집에 있던 엄마는 갑자기 서럽게 울었다. 건넌방에 있던 나는 안방에서 들리는 그 울음소리가 너무 크고 낯설어서 그리고 날것의 슬픔이 담겨 있어서 겁이 났다. 한참을 흐느껴 울던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진짜 죽을 건가 봐”
엄마는 꿈을 꿨다고 했다. 흰 한복을 입고 있는 외할머니를 엄마가 업고 언덕길을 내려왔단다. 외할머니는 병원으로 실려 가고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셨다. 칠십을 채우지 못한 나이, 엄마의 기대보다 한참이나 이른 죽음이었다. 그보다 훨씬 먼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다음으로, 엄마는 외할머니를 잃었다. 엄마는 오래 힘들어했다. 한참 후까지 외할머니를 그리워했고 외할머니의 삶을 가엾어했다.
요즘 엄마는 자주 운다. ‘흑’ 같기도 하고 ‘헉’ 같기도 한 서러운 울음이다. 캐나다에 사는 둘째 언니가 아이들과 함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고개를 떨구며 흐느꼈다. 3개월 전에 언니가 왔을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조카 둘은 어릴 때 나처럼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형제자매가 모인 날, 엄마는 집에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큰외삼촌이 들어올 때 한번, 작은 외삼촌이 들어올 때 또 한 번, 큰 이모가 들어올 때 또 한 번, 유일하게 막내 이모가 들어왔을 때만 안 울었다. 만두를 빚어 먹자면서 집에서부터 챙겨 온 짐보따리를 막내 이모가 풀어대며 수선을 피웠기 때문일 거다. 이모는 집에서 챙겨 온 만두소와 반죽을 꺼내는 동시에 필요한 주방용품을 읊으며 만두를 빚기에 알맞게 자리를 이리저리 옮겼다.
이어서 큰 이모는 막내 이모를 따라 만두는 빚고, 큰외삼촌은 텔레비전을 보며 세상 걱정을 했고, 작은 외삼촌은 자리에 이 사람 저 사람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가 앓고 있는 병과 머잖아 닥칠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만 쏙 빼놓고 오랜만에 만난 사이다운 어색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나마 만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족이 모였을 때 만두를 메뉴로 선택하면 실패할 일이 없을 만큼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가족 모두 만두를 좋아하니까. 만두 맛이 어떤지, 어려서 먹을 때 맛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면서, 아니면 그냥 씹고 삼키고 후루룩 거리면서 어색한 순간을 채워 나갔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엄마는 혼자 방에 가서 누웠다. 헤어질 때 엄마의 형제자매는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는 엄마의 등을 쓸거나 손을 꼭 붙잡고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 엄마는 울지 않았다. 눈을 감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는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꼭 머리맡에 있는 것 같아.”
침대에 바로 누워 천장을 보고 있던 엄마가 불쑥 말을 뱉었다. 꿈속에서 엄마의 등에 업혀서 언덕을 내려가던 외할머니가 이제 엄마와 함께 걸어갈 순간을 기다리는 걸까. 꿈에서 본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서럽게 울던 과거의 엄마, 죽은 외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울지 않는 지금의 엄마. 여기 남겨 두어야 하는 가족을 볼 때마다 흐느끼던 엄마가 저기에 있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