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민정 Oct 30. 2022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시기와 혐오는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희곡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제3자(관객)는 알 수 있는 각 인물의 사정을 다른 등장인물들은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노년의 리어왕은 딸들과 사위에게 통치권과 영토를 나눠주려 한다. 그런데 그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효성'이다. 딸들의 성정으로 리어왕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제3자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늙고 외로운 리어왕은 이를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다.


이 작품에서 사건이 흘러가며 각 인물이 처하는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결정,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는 인물들의 인성에 기인한다. 사회적 지위와 성별 등 외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왕은 분별력을 잃고 미치고, 그를 따르는 광대는 현명하고 옳은 말을 하고, 직언을 한 죄로 추방당하는 신하는 신의를 지킨다. 결정적인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 관여하지 않으려는 자, 최대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자, 신념을 지키려는 자. 평소에는 모두 좋은 말을 하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이익이 걸린 문제에 보이는 행동은 각기 다르다. 


리어왕은 외로움을 보상해 줄 사랑과 인정을 자식들에게 바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리어왕이 원하는 만큼 만족시켜줄 수 없다. 애초에 사랑과 인정은 자식이 부모에게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어왕은 화려한 말로 사랑을 보여주는 고너릴과 리간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고 진실되게 자식된 도리에서의 사랑을 말하는 코딜리아를 내친다. 그는 믿음이 없기에 행동을 보지 못하고 말을 믿는다. 딸들의 사랑을 비교하고 확인하려는 의심 때문에 그는 증명되어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천박하고 간교한 성정을 지닌 고너릴과 리간의 배신은 예정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화를 잘 내는 기질적 측면에 건강 악화가 더해져 리어왕은 분노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다. 이렇게 분출된 즉흥적인 감정은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결말은 파멸이다. 코딜리아를 시기하는 고너릴과 리간은 서로 간에도 이용하고 의심하며 파국에 이르며, 코딜리아도 죽음을 맞는다. 


의심은 분열을 낳고, 분열은 비극을 낳는다. 의심받는 대상 뿐만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들 스스로 파멸한다. 코딜리아도 죽었기 때문에 고너릴과 리간의 시기심은 그 목적을 달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코딜리아는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증오가 그 대상을 망칠 수는 있지만, 바꾸지는 못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리어 왕. 2005. 민음사

매거진의 이전글 이원수 <고향의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