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독서단과 소설리스트

영화와 소설로 이끌어주는 매개자의 힘

by 박민진

<비밀독서단>은 책을 다루는 예능이라는 점에 우선 반갑다. 과거 책에 관한 TV 프로그램은 정통 교양으로 치부되어 밤늦게 방영되곤 했다. 즉 시청률을 포기한 프로그램이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Otvn은 책으로 쌓은 담을 허물고 입소문을 타고 있다. 과거 조용한 분위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나운서가 교수들과 함께 지루한 담론을 지속하는 방식 대신 입담이 좋은 패널들의 토론을 장을 만들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또한, 과거 MBC의 ‘느낌표’가 책을 읽자는 선동구호와는 다르게 책 선정이 워낙 형편없어 오히려 독자를 멀리하게 만들었다면, <비밀독서단>은 대중들의 선호도, 특정 계층에서 검증이 된 책을 선정해서 알려준다. 정보 범람의 시대에 결국 무엇을 읽고 들어야 하는지 가려주는 프로그램의 존재는 늘 소중하다.

bnW_pc_header_01.jpg 비밀독서단은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최근엔 팟캐스트의 등장과 함께 책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들이 열린 추세를 이어받아 생긴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다루는 책과 하는 이야기들이 새롭진 않다. 그만큼 비밀 독서단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패널에 대한 의존이 강화됐다. 이동진과 조승연은 각각 팟캐스트와 독서 관련 강의, 서적에서 자기 팬을 거느린 미디어 권력자이며, 신기주는 프리미어를 비롯한 영화 관련 매체에서 인상적인 글을 읽어본 경험이 있는 기자다. MC를 맡는 예능인들은 이 세 사람에 의존해가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독서의 취향을 그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게 사실 위험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채울 수 없는 지적 허영을 각 분야에 일가를 이룬 자들을 통해 채울 수 있다. 시즌1에서 책에 대한 부담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우스갯소리들이 반을 차지하고, 중간중간 화제성이 높은 책들을 넣어 시청의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시즌2는 오히려 그것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독자들의 거부감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눈치 체고 오히려 책에 관한 내용에 중점을 두고, 저자에 관한 이력을 살피는 등 전문성에 노력을 두고 있다.

img_20160511095951_35a9590c.png 김중혁을 좋아하는 이동징는 그를 영화 코너까지 끌어들였다.

언제나 쉽게 다가오는 이동진의 코멘트는 내게 익숙하다. 사실 그가 책에 대해 하는 말들은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들은 내용들이다. 사실 내가 놀란 점은 조승연의 박학다식함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분석들이다. 마치 수능학원의 족집게 강사를 보는 듯 정리가 일목요연하고, 에둘러 모호함을 치장하는 멘트를 피하며 단언하는 화법이 오히려 요점 정리된 공책을 보듯 깔끔하게 정리된다. 작가 조승연이 집필한 책들을 보면 그의 빤질빤질한 얼굴만큼이나 비호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목부터 보자. 그물망 공부법, 조승연의 인문학 이야기, 비즈니스 인문학, 어린이 인문학, NEW 공부기술, 조승연의 영어공부기술 등등이 그의 책 제목이다. 그는 한국의 조기교육, 영어 집착증, 알 수 없는 인문학 열풍, 수험생의 학구열을 자극하는 책들을 통해 히트 작가가 되었다. 스스로를 언어 천재라 명하고 출판사들이 군침을 흘리며 낚시를 하는 행태의 적절한 미끼가 되어 기능되어 왔다. 비밀독서단을 보며 매력을 느낀 난 실망스러운 맘을 가지게 되었다. 읽어보지 않고 하는 평가라 별 의미는 없다. 이동진과 반대 의견을 여러 번 내고 토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패널 조승연의 존재는 소중하다.

61298_20005_4557.jpg 박지선, 이지형과 함께하는 무비썸, 이제 첫 화를 시작했다.

패널인 이동진의 얘기도 추가해야겠다. 이동진은 내가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심지어 추종하는 빨간책방, 오프라인 시네마 토크의 주인이지만, 최근 그의 행보는 좀 더 정력적으로 보인다. 우선 새로 론칭한 프로그램이 둘이다. Btv의 영화당과 블라썸TV의 무비썸, 무비딥이 그것이다. 최근엔 씨네21의 영화 비평과 다음 매거진의 어바웃 시네마도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개인적인 사정으로 활동이 뜸했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사실 그의 팬인 나로선 행복하기 이를 데 없다. 최근 몇 년 영화 평론가로서 그는 자장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평론가로서의 양감은 익숙하지만(시네마 토크, 더 굿 무비, 씨네21 별점, 블로그), 비평가로서의 질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동진 닷컴, 시네마레터에서 보아왔던 비평의 영역에서 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늘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 텍스트로서는 어바웃 시네마, 말로 하는 비평으로서는 무비딥이 그런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크다.

i.jpg 소설리스트는 외야에 떨어지는 공을 보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하루키처럼 느닷없이 나타났다.

비밀독서단과 이동진의 빨간책방 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 관련 사이트로는 <소설리스트, http://sosullist.com/>가 있다. 소설리스트는 김중혁 작가와 이다혜 기자, 김연수 작가 등이 소설을 추천하고, 소개하는 사이트다. 현역 소설가와 기자가 자신들의 의견을 솔직하고 여과 없이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라 좋은 소설을 접하고픈 이들에게 이롭다. 특히 플래너리 오코너, 존 버거, 쿠라하시 유미꼬 등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숨은 거장들의 작품을 알게 된 건 소설리스트가 내게 준 선물이다. 그 외에도 인터넷 서점 yes24가 운영하는 채널24, Cine21 추천 책, 네이버 책의 명사들의 추천 책 등을 통해 책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고 있다.

PicassoStein.jpg 피카소가 사랑했던 거트루드 스타인, 일조의 스폰서이자 후원자다.

작가이자 미술 비평가이며 피카소와 마티스 등 입체파 화가의 후원자로 알려진 거트루드 스타인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는 이 말은 그녀가 시류를 읽고 대중에게 세대를 부여한 것이다. 길 잃은 대중들은 그녀가 붙여준 세대 안에서 그녀가 추천한 문학과 미술을 통해 현시대의 예술을 읽었다. 예술작품을 대중에 접하게 하는 비평가의 통찰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시되어왔다. 최근엔 프로슈머가 범람하여 스스로의 취향에 어긋나면 터부시해 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예술을 후원하고픈 자들이 있다. 그것을 통해 돈을 벌지만, 결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할 줄 아는 미디어 비평의 영역이 여전히 각종 매체에 현존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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