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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l 30. 2016

영화 서칭 포 슈가맨과 OST

기억에 봉인된 시간을 찾아서

여름이 오고 밤마다 동네 운동장을 몇 바퀴씩 조깅을 하고 있다. 겨우내 묵은 살을 덜어내는 느낌이 좋고, 잠도 잘 와서 즐겁게 하는 편이다. 조깅이란 게 하고 난 이후에는 뿌듯하지만, 그 과정이 참 지루한 운동이다. 어두운 밤 운동장을 달리는 마음에는 일과의 심란함이 고스란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깅은 나서기 전에 즐겨듣는 음악을 귀에 꽂고 나선다. 요즘 듣는 음악은<서칭 포 슈가맨>의 OST다. 영화의 감동과 노래를 부르는 인물의 사연이 어우러져 어두운 산책길에 스토리를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Sugar Man>과<I Wonder>는 특히 내 뜀박질을 경쾌하게 해주는 음악이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 기적을 말할 때 다큐멘터리는 그 효과를 배가시킨다.

<서칭 포 슈가맨>의 스토리는 남아공을 뒤흔든 정체불명의 뮤지션을 추적하는 일종의 탐정영화다. 1970년대의 디트로이트 부둣가 뒷골목에서 노래를 하던 로드리게즈라는 가수는 철저하게 무명인 탓에 평생 허름한 술집에서 노래를 불렀다. 실력이 좋았던 그는 2장의 정규음반을 내고 열심히 활동했지만, 그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제작한 음반이 우연한 계기로 남아공에 이르게 된다. 당시 남아공은 독재정권의 부활로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다다른 상태였고, 슈가맨의 음악은 그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탈출구로 여겨졌다. 미국의 시골 무명가수의 음악이 남아공 국민가요가 된 것이다. 한 장의 음반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황폐화된 나라에서 전설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노래들을 부른 정체불명의 사나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시스토 로드리게즈라는 무명가수를 재발견하고, 다시 남아공으로 불러 살려내는 기적의 순간들을 중계한다. 그의 첫 번째 앨범<콜드 팩트>(Cold Fact)의 수입업자, 제작사 그리고 당시 디트로이트 빈민가의 노인들을 인터뷰하며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과정은 사실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다. 시간이 많은 흐른 데다가, 지금 이러한 추적의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로드리게즈의 흔적들을 찾아내고, 그의 인생을 하나씩 답습하다 보면 뭉클하게 느껴지는 삶의 기척이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제는 시들어버린 육체와 가난이라는 삶이 빼앗아버린 뮤지션의 삶 그리고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예술가의 정신들을 고스란히 고수하고 사는 한 남자의 인생이 감동적이다. 가공된 이야기로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현실의 서글픔과 시절의 아늑함은 되돌릴 수 없는 수레바퀴에서 돌고 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등장하는 음악들이 모두 가슴이 설렐 정도로 좋다는 것도 슈가맨의 사연들을 어루만지게 한다.

시스토 로드리게스는 그가 살아남은 방식과 사실을 접할 때의 덤덤함으로 인상을 남긴다.

사실 영화를 보러 간 날은 직장에서 당직을 서고 난 다음날이라 극장에서 대부분 졸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콜드 팩트>안에 수록된 그의 곡들이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정서적 상응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졸고 나오면 돈이 아깝다든지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의 조각 때문에 찝찝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는 아 정말 좋은 영화다 하면서도, 몸에 다가오는 절대적인 피로감은 의식의 버튼을 종료시킨다. 하지만 슈가맨의 음악은 잠든 나의 의식마저도 평온하게 바꿔줄 정도로 날 심취하게 했다. 사운드 트랙을 찾아 들었을 때, 영화에 등장한 대부분의 음악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그 정서적 감응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내게 슈가맨의 사연이야 어찌 됐든 그의 음악이 주는 그 느낌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음악 다큐의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제작한 왁자지껄한 음악과 수익성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은 음악의 완성도를 떠나서 그저 묵묵히 듣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보면서 들어야 하고, 읽으면서 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음악 자체만으로 우뚝 설 수 없는 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노래가 주는 사운드의 감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곡이 주는 콘셉트의 미천함이라니 한숨이 푹푹 쉬어진다. 서칭 포 슈가맨의 음악들이 나를 자극했던 건 아무래도 음악 다큐가 주는 음악에 대한 집중력 때문인 것 같다. 오로지 음악을 위해 기능하는 모든 이야기의 구조들이 내용보다 더 깊은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수평트레킹 장면들은 영화가 음악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처럼 보인다. 도시를 걷는 로드리게즈의 옆모습과 그의 음악이 어울릴 때 인생과 조우하는 음악의 지점들이 특별한 감정을 선물한다. 내 뜀박질에도 굵은 생명력이 따라붙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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