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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ug 13. 2016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모호한 꿈과 데이비드 랜들의 잠의 사생활

1.
퇴근을 하고 살짝 졸았는데 악몽을 꾸었다. 1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려고 누웠는데, 단 20분 만에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눈을 떴다. 꿈이라는 게 참 모호한 것이라서 ‘세상에 이런 말도 안되는!’이라고 생각되는 당혹스러운 장면들이 예고도 없이 내 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특히 악몽은 온몸을 경직되게 한다거나 주체할 수 없는 식은땀으로 표출되어 잠에서 깨고도 피곤한 상태에 축 늘어지게 된다.
어제 꿈은 어머니의 전화로 시작된다. 컴퓨터로 야구 중계를 보며 멍하니 있던 나는 유달리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를 받는다. 한동안 울먹이던 어머니는 쉽게 말을 잊지 못했고, 그럴수록 내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어렵사리 말을 꺼낸 어머니는 오열을 하며 큰일이 났다고 말했다.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조차 마음이 쓰려 계속해서 울어버렸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던 어머니의 슬픈 목소리뿐이다. 어쩌면 좋겠냐는 애타는 목소리에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슴을 날카로운 면도 칼로 아프게 찢어 놓았다. 이 느낌을 가진 체 눈을 떴는데,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꿈이었음을 인식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다. 이런 끔찍한 악몽은 실로 꽤 오랜만이다. 한때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을 겪었던 가족의 트라우마를 난도질한 잔인한 형상이었다.
2.
꿈이라는 게 참 뜬금없고 거친 기억이지만, 생각해보면 내 잠재의식 속의 불안감을 건드리는 꿈들은 대부분 악몽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실상에서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머릿속 어느 부분에서 지워지지 못하고 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온다. 악몽을 꾸고 나서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일상을 즐기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안도감을 가졌다. 한동안 엄마와 통화를 못했는데, 그 그리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젖혔다. 문득 멀리서 타지 생활하는 내 외로움이 어머니의 목소리에 응석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그 편안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나를 유년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3.
꿈에 관한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해원이라는 아가씨가 겪는 일들을 현실과 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보여준다. 그 누구보다 다사다난한 일상을 살아가는 해원이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영화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지나갈 때마다 도서관에서 엎드려 자는 해원이의 모습을 삽입하여, 지금 이 이야기가 꿈과 현실의 어디쯤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감독 홍상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해원이가 꾸는 꿈이나 현실의 일상이나 모두 그녀를 구성하는 하나의 입체적인 삶의 조각임을 말한다. 애초에 우리가 꿈을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낀다면, 그것을 ‘아 꿈이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현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애써 구분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나온 의식의 덩어리임을. 인간은 참 구분하기 좋아하여 현실과 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놓고는 쉽게 인정하고, 쉽게 잊어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꿈이란 게 대체로 서늘한 것이어서 그게 건강에 이로울지 모르겠지만, 지워지지 않는 꿈이라는 흔적을 내 뇌에서 꺼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 없다. 울적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해원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 정말 슬픈 꿈이었어.’
4.
데이비드 랜들이 저술한 <잠의 사생활>이란 책을 읽었다. 그중에서 꿈에 관한 내용들이 있어 유심히 읽어봤다. 골프선수 잭 니클라우스는 1964년 심각한 슬럼프에 빠진다. 초라한 성적으로 고통을 받던 대스타 잭은 자신의 스윙에 문제가 있음을 잠에서 깨어난 후 깨닫는다. 그는 꿈에서 자신의 스윙을 다듬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우승 기계로 돌아온 것이다. 이 밖에도 꿈에 관한 신기한 에피소드가 이 책엔 가득하다. 잠의 사생활에서 데이비드 랜들은 꿈이란 게 건강의 치유, 창조성의 발현 등 단순히 피로회복 이상의 효과가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하려 한다. 꿈이란 게 이렇게 복잡합니다 여러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고 치부했던 꿈이란 게 사실은 진정한 나를 위한 시간이라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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