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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ug 13. 2016

영화 셰임, 참을 수 없는 허기

Shame, 2011

세련된 도시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겹쳐온다. 오늘 한 행동을 후회하고, 순간 욱했던 감정의 찌꺼기를 지우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이 시대는 다시 말해 억제하는 시대라 칭한다. 소모적인 감정과 헛된 노출이 스스로를 잡아먹는 시대다. 그래서 난 밤에 산책을 하며 모두 털어내기 위해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그저 잠이 들기까지 숨기지 못한 불안이 덮쳐오는 것을 무력하게 나마 받아들일 뿐이다.
영화 셰임은 어둑한 도시의 발걸음과 그 속에 병들어가는 미니멀리즘의 희생양이 대치하는 영화다. 설치미술의 대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스티브 맥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셰임>은 뉴욕의 화려한 여피족 남성인 브랜든의 일상을 뒤쫓는다. 겉으론 화려해 보이는 브랜든이지만, 그는 섹스 중독에 관계 기피자다. 어떤 문제로 인해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그가 이 중독 증세를 스스로 치욕스러워한다는 것이며,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정서적인 핵심이다. 감정 없는 섹스 후의 브랜든의 표정은 포스터로 인쇄됐다. 그는 그리운 그녀의 품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다. 그저 스스로 삭혀야 마땅하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치욕감이 들 때면 아이팟을 귀에 꼽고, 갈등 속의 맨해튼을 달리고 또 달린다.
그는 다른 이(가족, 동료) 관계를 의탁하지 않는다. 유능한 직장인으로 경제적인 문제도 없다. 그래서 그는 싱글로서 스스로 제어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브랜든은 철저하게 자신의 결함을 도시의 세련된 외관 안에 감춰둔다. 벽장을 가득 채운 도색잡지와 노트북 하드디스크 안의 포르노는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하철 이름 모를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눈빛에 흐리멍덩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하지만 사정 후의 공허함은 어쩔 것인가. 쾌락 후의 늘어져버린 성기는 어떠한가. 그저 혼자만의 아파트에서 타인이라는 단어를 지운 체 살아간다.

유달리 병들어 보이는 살찐 캐리 멀리건.

잠잠한 브랜든의 일상에 동생이라는 변수가 등장한다. 의도적으로 그와 정반대의 인물을 배치하듯 부서질 것만 같은 애처로움을 품은 여성이다. 그녀는 항상 관계를 갈망하고, 외로움을 타며 욕정밖에 없는 브랜든을 자극한다. 밤마다 자살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동생 씨씨는 잠시 오빠 브랜든의 집에서 머물기로 한다. 브랜든은 동생을 보며 더욱 비참한 기분에 젖게 된다. 관계가 집으로 침입할 때 그는 거짓 애정이 자신을 위로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내 발기되지 않는 시들어버린 성기처럼 축 처진 얼굴로 뉴욕의 시가지를 배회할 뿐이다. 여동생은 그런 그를 애처롭게 쳐다보고, 두 사람 사이의 말 못 할 비밀은 그 분위기 속에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도식적인 풍경만이 자리할 뿐이다.

화폐가치에 의해 서열이 정리되는 도시에서 돈은 곧 개인 공간의 사유화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자신의 고층 아파트에서 나와 지하의 매음굴에서 섹스를 하는 인간들의 군상은 감독이 말하려는 도시의 욕망과 문제점의 집합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욕망을 억제하는 도시는 돈이 많으면 문제점을 감출 수 있게 펜트하우스의 코끼리가 되길 종용하고, 스스럼없는 욕망을 천박한 것으로 치부한다. 돈이 없는 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풀 개인 공간을 사유하지 못해 어두운 뒷골목에서 HIV에 쉽게 노출된다. 우리는 욕망을 장애로 여기는 시대에서 여전히 그럴듯한 척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마이클 패스벤더.

수평 트래킹으로 촬영된 브랜든의 조깅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날 장면이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이팟을 귀에 꼽고 밤거리를 부지런히 달리는 브랜든의 얼굴은 무표정이지만, 그의 뒤로 비치는 도시는 여전히 갈등 속의 신음을 들려준다. 지하철에서 브랜든은 낯선 여자를 보며 또다시 감출 수 없는 욕정을 느낀다. 그녀를 쳐다보는 브랜든의 눈에서는 묘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그 눈빛을 받아든 여자는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브랜든의 욕정을 탐닉한다. 지하철이 멈추고 그녀의 눈빛을 따라 플랫폼에 내린 브랜든은 군중들 속에서 소멸된 그녀를 찾지 못한다. 또 다른 장면. 상사와 함께 동생 씨씨가 노래를 부르는 레스토랑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브랜든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한 어떤 사건들이 녹아들어 관객에게 와 닿는 순간이다. 영화 <셰임>은 몇 마디 없이도 외로운 도시의 질감을 그려낸다. 자기 억제와 성욕의 분출을 오고 가는 마이클 파스빈더의 공허한 눈빛은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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