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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25. 2017

사랑에 버림받은 '개츠비들'

머드 Mud, 2012

서태지의 결혼

참 기묘한 시간이었다. 서태지와 삶을 나눴던 여배우가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있다. 그와의 결혼생활은 별로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며, 실은 고통이 더 컸다고 말하고는 눈물을 글썽인다. 90년대 초 명백한 내 영웅이었던 서태지의 내밀한 사생활이 공중파 전파를 통해 중계되는 순간이었다. 알다시피 인터넷은 난리가 났고, 언론은 온갖 추측이 가득한 선전지를 양산했다. 이 경험은 내게 초현실적인 시간으로 다가왔다.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도무지 내 일상에 닿지 못했다. 남의 가정사를 보고 이런 기분을 가지는 게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서태지는 곧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으니까. 그도 남자라고 이 서울 땅에 온전히 정착하고, 남들 다 하는 가정을 꾸리는 순간 내 어린 시절도 끝이 났다. 이제 몇 년이 지나 태지형은 이쁜 마누라와 애도 낳고 잘 살고 계신단다. 내가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님을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처럼 일말의 여지도 없다.

1996년 서태지가 은퇴를 할 때 난 정말 울었다. TV를 보면서 뭔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는 뭔가 한 막이 지고,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 쳇바퀴를 돌렸고, 지금 이 순간까지 지루한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내게 일어난 변화는 크지 않다. 책과 언론들은 세상이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며 겁을 줘도 내 하루는 별다를 게 없이 사라지고 있다. 평일 저녁 자몽주스나 홀짝이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 같아 영 기분이 좋지 않다. 

머드 Mud, 2012

어릴 적엔 유달리 좋아하는 대상이 많았다. 꽤 여럿이고 자주 바뀌었다. 서태지는 물론이고, 만화책에서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까지 내 우상으로 삼아 동경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의 영웅이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많은 배우와 작가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캐릭터를 사랑하려 해도 어린 시절만큼 내가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누군가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픈 일이다.


영화 <머드>(Mud, 2012)의 엘리스라는 소년은 미국 미시시피 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딱 보기에도 가난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녀석이 사는 강변의 수상가옥은 꽤 운치가 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엘리스의 근심 어린 얼굴이 영화에 비친다. 녀석은 부모의 말타둠을 몰래 지켜본다. 강가의 무료한 삶과 무관심한 남편의 태도에 지쳐버린 어머니는 이 작은 집을 팔고 도시로 떠난다고 선포한다. 경제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아버지는 그녀를 잡을 수 없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엘리스는 지금 이 상황이 괴롭다. 부모의 말다툼을 몰래 지켜보던 엘리스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친구 넥본과 외딴섬으로 놀러 간 엘리스는 그곳에서 머드(메튜 맥커너히)라는 남자를 만난다. 강 한가운데 있는 이름 모를 섬에 숨어 사는 이 부랑자는 어릴 적부터 목숨 바쳐 사랑해온 여자 주니퍼(리즈 위더스푼)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뒤 유족이 고용한 킬러들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이혼에 아무런 것도 하지 못했던 엘리스는 자신이 머드의 사랑에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명감을 갖는다. 머드의 사랑은 부모의 닳아버린 애정과 달리 뜨거운 피가 요동치고 있다. 적은 가능성에도 모드 육신을 던질 것 같은 머드의 눈빛에 소년은 완전히 매료된다. 소년에게 잊혀 가던 사랑이 머드의 가슴에는 선현히 살아있던 것이다. 결국 머드는 소년에게 사랑을 상징하는 우상이 된다.

마땅히 소년이라는 존재는 영웅이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고, 엘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삶의 지표로서 자리 잡았던 아버지가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남자임을 자각하자 소년은 새로운 영웅을 찾아야 했다. 마음을 의탁할 영웅이 없이는 지금 이 현실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 엘리스 앞의 머드는 사랑을 다시금 믿게 해주는 또 다른 지표였다. 

머드 Mud, 2012

영화의 종반 엘리스가 머드의 사랑이 결코 자신이 생각한 위대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를 밀치고 울부짖을 때, 이제야 어른의 그림자를 밟은 소년의 사자후를 보게 된다. 소년의 마지막 영웅이 죽은 것이다. 아마도 엘리스에겐 더 이상의 영웅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믿었던 우상이 하나씩 죽어갈 때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스는 세상을 알고 어른으로 성장한다. 머드의 이야기는 가만히 보면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의 모험’을 떠올리게 한다. 대자연속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는 외로운 소년의 모험담이 그렇고, 흐르는 강물과 뜻하지 않은 사건들이 녀석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이 또 그렇다. 또한 진흙으로 상징되는 머드의 공간엔 나무 위에 배, 비단뱀, 권총, 편지, 담배, 칼 등 갖가지 해석이 가능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마치 소년의 성장을 위한 작가의 배려처럼 그들의 놀이터가 되어준다. 거기에 머드를 구해주는 은인의 등장, 소년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웃자란 소녀,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괴짜 삼촌,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의 등장까지 예측할 수 없는 모험들이 계속된다.

이제 하루가 지고, 외딴섬 머드도 떠났다. 소년 엘리스는 결국 자신을 둘러싼 한심한 어른들처럼 용기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진 않을까. 노파심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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