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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26. 2017

영화와 도시를 이어주는 OST

멋진 하루 My Dear Enemy, 2008

늘 곁에 지니고 다니며 듣는 음악은 영화 <멋진 하루>(My Dear Enemy, 2008)의 OST다. 푸디토리움 김정범의 연주곡은 모두 좋지만, 멋진 하루의 경우는 서울이라는 포장지가 있어야 비로써 걸음이 편안해진다. 주말 오후 선선해질 무렵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내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 그 자체로 서울은 근사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져 빌려준 돈 300만 원을 받기 위해 전 애인을 찾아가는 희수와 지금은 돈이 없지만 오늘 하루 돈을 빌려 갚을 테니 같이 가달라고 조르는 병운의 모습이 생각나 킥킥거리게 된다. <멋진 하루>는 우리 곁에 불현듯 찾아온 판타지이며 작지만 보물창고 같은 연주곡을 선물해주었다.

멋진 하루My Dear Enemy, 2008

https://youtu.be/Sg7akYj1XPI

멋진 하루 OST, 푸디토리움(Pudditorium), 10:12 AM

거의 매일 거의 평생을 보아온 서울 풍경이지만 음악을 통해 영화를 떠올리는 재미가 있다. 음악이 흔한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정서는 비단 멋진 하루만의 것이 아니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마치 폐허처럼 변해버린 인천을 배경으로 20대 소녀들의 상처를 빚어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역시 그러하다. 십 년이 넘어선 지금까지도 그녀들을 기억하게 하는 건 독특한 기계 사운드와 도회적인 감각의 <고양이를 부탁해> OST의 힘이 아닐 수 없다. 건조하지만 따뜻하고 명랑하면서도 쓸쓸한 전자음, 당시 방황하는 소년이었던 나의 폐부를 어루만지는 소리였다. 소녀들은 전철에 실려 동인천에서 동대문까지 흘러가고,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이처럼 영화와 도시가 조우하고, 그 도시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둘러앉은 음악은 영화와 도시를 잇는 메타포가 되어준다.

고양이를 부탁해Take Care Of My Cat, 2001

https://youtu.be/04NfWbhbKDM

고양이를 부탁해 OST, 별 (Byul),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OST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공간은 아파트 단지 내의 풍경이다. 유년시절 늘 아파트 단지 내에서 놀곤 했는데, 그 구석구석을 놀이터 삼아서 친구 주호랑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그래서인지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우리 아파트가 떠오른다. 안양 평촌의 내 집 마련의 꿈에 젖은 부모님과 함께 입성했던 꿈의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한 플란다스의 개 OST를 들으면 영화의 내용과 관계없이 늘 밝고 아름다운 기분이 들게 한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행복의 시절이었기에 그 공간과 음악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플란다스의 개A Higher Animal, 2000

https://youtu.be/NXWI35kFDwI

플란다스의 개 OST, 김광민, Main Theme

여행에도 영화음악은 늘 곁에 있다. 생각해보면 난 무궁화호를 KTX보다 더 좋아한다. 대학시절엔 저렴한 가격에 어쩔 수 없이 탔지만, 요즘엔 시간만 여유 있으면 무궁화호를 탄다. 가끔 결혼식이나 지방 출장을 위해 열차를 탈 때면 괜스레 신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땐 벌써 머릿속에는 식당칸의 바깥 풍경이 내 눈에 아른거린다. 따끈한 핫바와 맥주 한 캔 그리고 귀에 꽂고 듣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OST다. 불법으로 구해서 듣긴 하지만, 이 영화의 OST는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리는 로맨틱함이 있다. 여행과 전혀 무관한 영화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나만이 만든 여행 음악 리스트에 이 OST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식당칸에서 먹는 소소한 만찬과 여행의 들뜸을 조금 눌러줄 수 있는 아늑함이 필요하기 때문일 텐데 특히 첫 트랙인 '잇 해드 투 비 유(It Had To Be You)'는 고전적인 재즈 오케스트라가 적절한 대중성과 균형을 이르면 얼마나 낭만적일 수 있는 깨닫게 해준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1989

https://youtu.be/Cmg5scf0Ilw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OST, It Had To Be You, Harry Connick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적인 OST는 아무래도 <갤럭시 오브 가디언즈>였다. 70~80년대의 주옥같은 팝 음악이 난데없이 튀어나와서 귀를 즐겁게 해준다. 우주에 납치되어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는 주인공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는 올드팝 음악들은 그 자체로 위로받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나 역시 우주 미아의 마음처럼 절실히 과거의 추억과 꿈에 접신하기 위해 이 극장을 찾았기에 생각지도 못한 추억의 선물에 감격하게 됐다.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무니지 데이드림(Moonage Daydream)',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타미 테렐(Tammi Terrell)'이 함께한 '에인트 노 마운틴 하이 인너프(Ain't No Mountain High Enough)' 등 흘러나오는 순간 마음이 녹아내리는 넘버들이 시간이 지남을 애석하게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 2014

https://youtu.be/tlU5xmKDLFI

가디언즈 오브 갤릭시 OST, Redbone , Come and Get Your Love

이어서 소개해드릴 음악은 <소셜 네트워크>의 OST다. <소셜 네트워크>의 칼날 같은 대사와 빈틈없이 연출된 화면에 삽입된 '테런스 레즈너'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데이빗 핀처를 완성하는 마침표였다. 어둑어둑한 서정과 날카로운 현대적 감각 둘 다를 취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에 팽팽한 긴장을 불어넣는 두 사람의 작업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 중엣도 소셜 네트워크는 최고의 결과물로 기억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마주 보지 않은 체 연결되기를 기다린다. 온라인 링크를 통해 연결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듯 선언하는 멘트들을 댓글에 실려 날린다. 그를 '모르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잘 아는' 기분을 냄으로 해서 텅 빈 집안에서 도무지 채울 수 없는 공허를 메워나간다. 온라인은 상처엔 차단을, 재수가 없으면 절연하면 그만이다. 기계음이 가득한 소셜 네트워크의 OST가 현대를 관통한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2010

https://youtu.be/9SBNCYkSceU?list=PL0790E36EBE29363B

소셜 네트워크 OST, Hand Covers Bruise, Trent Reznor & Atticus 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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