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은 차차 사그라든다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

by 박민진

처음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엔 선승 같은 사람을 따랐다. 눈은 음침하고 매사 오소독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정답을 내놓는 선배였다. 술자리에선 온갖 사회문제에 관해 일갈하며 주위 중생을 긍휼히 보는 상남자였다. 그의 사이다 같은 통찰을 동경했다. 종종 술자리에서 먹태를 뜯으며 그를 보노라면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이 들었다. 보기 드문 장광설에 코웃음을 치다가도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빠져들었다. 그의 말은 내 복잡한 머릿속을 가지런히 다졌고, 때론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주었다. 요즘엔 그런 사람을 멘토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난 어른이랍시고 충고하듯 내뱉는 말이 고깝다가도 어쩐지 위로를 받곤 했다. 난 매사 허둥대며 오늘 하루 수습하기 급급한데, 그는 늘 정답을 꺼내놓은 말투로 말하니 생맥주를 들이켜는 것처럼 시원하고 좋았다. 하지만 몇 해 전에 일어난 몇몇 사건이 내게로 하여금 그를 멀리하게끔 했다. 그가 내지른 말이 다른 사람을 할퀴고 확신이 오해로 바뀌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입장을 달리하며 자신을 변호했지만, 궁지에 몰리자 그는 더는 송강호가 아니었다. 그의 통찰은 일시적으로 유효했지만, 사물함에 박아둔 우유처럼 금세 쉰내가 났다.


요즘 책을 읽으며 '원칙주의자'가 더는 발붙이기 어려운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소리 높여 주장하던 호사가를 고고한 지성으로 뫼시던 시대는 사그라들었다. 이제 화려한 말재주로 어쭙잖게 세상을 규정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일쑤다. 내 생각에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지성은 회의하고 고민하다가 끝내 고쳐내는 사람인 것 같다. 줏대가 없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제 그름을 인정하고 세상 보는 잣대를 늘려나가는 이가 교양인이다. 검색어 몇 개만 쳐도 정보가 목 밑까지 차오르는 시대 아닌가. 난 내심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실까지 낱낱이 파고든 책을 사서 읽고 있다. 그런 책은 날 피곤하게 한다. 목침 같은 두께를 가진 책을 읽고 있으면, 그냥 어서 추리 소설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교양인문서'라는 레테르가 붙은 책을 붙들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줄을 긋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멋모르고 인지 편향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다. 내 주관이랍시고 얕은 지식에 기대 우기기보다는, 어제 감명 깊게 읽었던 내용마저 오늘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내겐 지성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양은 그래서 무엇 무엇 일지도 모른다는 주저함에 있다.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배제된 여성을 수치로 밝혀내는 책이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소외된 여성은 전 분야에 걸쳐 두더지 게임처럼 튀어나왔다. 읽는 내내 작가의 노고가 눈에 훤히 보였다. 뒤에 실린 참고문헌만 봐도 얼마나 방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쓴 노작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통계의 혁신인 빅 데이터 분석 기법 없이는 쓸 수 없었을 책이다. 작가의 통찰은 세상 모든 통계수치를 모으는 데서 시작됐고, 감으로 때려 맞히는 고고학적 통찰이 아니라는 점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 더더욱 난 다시금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제 그만, 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의도적인 외면과 침묵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입안자의 탓으로 돌린 이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통렬한 지적이 계속됐다. 세상 편하게 살려고 남성성의 사회를 내심 바랐던 나를 죽비처럼 내리치는 목소리였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난 까막눈으로 돌아다니는 꼴이었다.


이 책을 요약해주는 작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의 책 머리말의 말을 발췌한다. "젠더 데이터 공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여자들은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 무념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인간이라 통칭하는 것은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서유럽이 문명의 기준을 만들던 시절을 지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전 세계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을 제시한다. 남성 디폴트가 공고해지는 과정은 마치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의 모른 척이 있었다는 것이다. 변화는 귀찮은 일이니까 입안자들이 수치를 편의적으로 해석해서 적용해왔다고 말한다. 특히 'WASP' 남성 위주로 모든 정책사안을 맞춘 채 덮어두고 모른 척하는 미국 상황을 가장 강렬하게 비판한다.(아마 트럼프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젠더 문제에는 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검토해야 할 고려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남성 디폴트로 이뤄진 정책을 신중한 검토를 거쳐 여성 관점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골치가 아픈가.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을 주무르게 되는 문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쓴소리이기도 하다. 그냥 모른 척하고 싶어도 포털 뉴스만 펼쳐봐도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감수성의 촉수가 온갖 문제를 들쑤시고 있다. 그저 의구심으로만 남았던 개개인의 사정마저 네티즌은 휘황한 전등을 밝힌 오징어잡이 선단처럼 눈에 불을 켜고 줄줄이 끄집어낸다. 난 귀찮다고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손사래 치던 이들이 더는 살아남기 어려운 도시에 살고 있다. 그래서 자주 주위 눈치도 보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도 삼간다. 그러니 이제 술만 먹으면 화려한 말발로 세상을 논하던 목소리도 잦아들 참이다. 어쩔 땐 답보다 더 중요한 게 질문일 때도 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이야말로 질문하는 책의 전범과 같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잠들기 전에 두꺼운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는 기쁨보다, 내일 읽을 책에는 또 얼마나 내가 고쳐내야 할 사실이 가득할지 두렵기만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쳐 살지 않으면 더 나은 삶도 없다. 쉬운 답은 늘 거짓이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