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에 대한 기억

류시화

by 박민진

갑자기 가로등이 켜지며, 어둠이 뱉어낸 입김이 흩날렸다. 거리엔 사람이 많지만, 고개를 쳐든 건 나뿐이다. 다들 핸드폰만 보며 퇴근하기 바쁘다. 저녁을 먹은 지 삼십 분도 안 됐는데 속이 헛헛하다. 아쉬울 게 없으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어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웠다. 젖은 보도를 비추는 가로등은 날 떠밀고, 자연스레 요즘 핫하다는 동네로 발길을 돌렸다.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기길 바란 건 아니다. 딱히 누굴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조금 더 나은 상태로 침대에 눕고 싶을 뿐이었다. 뭐라도 해야 속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종일 보고서를 쳐대서 때꾼하지만, 동한 마음을 누를 순 없었다. 우선 어디라도 들어가 보자. 근처 기차역에서 나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귀에 울렸다. 배꼽티와 색색의 머리카락, 까르르 소리가 나는 웃음, 은팔찌와 입술 모양을 한 티셔츠가 어두운 거리에 찍찍이처럼 달려있다. 밤은 캄캄해진 지 오랜데 이 동네는 이제 시작이라는 투다. 모퉁이를 몇 개 돌아 조금 더 들어가니 어느 틈엔가 인기척이 사라지고, 빽빽한 빌라촌에 이르렀다. 길고양이가 유유히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는 흔한 인가였다. 나는 무의미하고 보잘것없는 걸 쓰고 싶었다. 심란해진 속을 달래고자 지루하더라도 삶을 모방한 뭔가를 제조하고팠다. 누군가가 인정해줄 만한 문장을 적으면 댓글도 좀 달리겠지. 시간이 지나면 어쩔 도리 없이 잊히겠지만, 당분간은 가뿐할 테지. 시간이 늦었으니 너무 잘 쓴다기 보단 잘 가공해서 몇 문장이라도 건져 올렸으면 싶다. 욕심부리지 말고 딱 버스 끊길 때까지만 쓰자.

골목 어귀에 작은 카페가 보인다. 버릇처럼 노트북을 펼 수 있는 자리와 광도를 살폈다. 자리를 잡고 카페를 둘러니 아담한 책장에 책 몇 권이 꽂혀있다. 나는 책장으로 누군가의 취향을 파악하는 버릇이 있다. 그게 뭐라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도 있으면 들뜨곤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는 낯선 남자의 집에서 책장에 꽂힌 문학을 보고 이름 모를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장해 말하면 책장을 보면 어느 정도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잠시 살펴보는데 내 기대와 달리 실망스럽다. 자기계발서와 명상 서적이 주를 이룬다. 흰 셔츠 깃을 세우고 커피를 내리는 훤칠한 사장님이 조금 덜 멋져 보인다. 책 중엔 류시화 시인의 잠언집이 보여 반가웠다.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친구를 인스타에서 본 듯 아련한 느낌이다. 문학계에도 유행을 심하게 타는 작가가 있는데, 류시화야말로 한때 엄청난 판매량에 비해 지금은 종적을 감춘 듯 잠잠해진 경우다.


내가 류시화를 처음 읽었던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어렸을 적에 집 변기 위에 작은 책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류시화 시인 책이 몇 권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한편씩 읽었는데, 이건 무슨 자기계발서인지 시인지 격려인지, 한낱 다짐인지 좀 헷갈렸다. 어쩌면 그런 아리송한 문장이 가진 맨송맨송함에 이 책을 별 생각 없이 끝까지 읽었던 것 같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예부터 내려온 구절은 탈무드 동화처럼 고즈넉하다. 작자 미상이라고 적힌 이 글을 쓴 양반은 이렇게 좋은 교훈을 많이 남겼는데,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함에 그냥 좀 쓸쓸했다. 그가 책상에 앉아 잘 나오지도 않는 펜촉으로 글을 적을 적엔 훗날 한 서른 중반 남자가 고작 변기에 앉아 자신의 시구를 외울 줄은 몰랐겠지. 그의 책을 다 읽었지만 별다른 인상이 없었기에, 류시화와 나와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 일 줄 알았다. 그랬다면 나는 그를 그저 이름이 여자 같았던 작가로 기억했을 거다. 근데 조금 특별한 사건이 나와 류시화를 다시 이어줬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서 처음 공들여 사귄 여자 친구는 내게 류시화 시인의 최고 히트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선물해줬다. 난 꽤 비싼 기성품을 선물했는데 돌아오는 게 고작 시집이라니, 얼마나 실망했던지. 무엇보다 생애 처음 선물 받은 시집이 류시화라는 게 이상하게 기분 나빴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 선물이니 나는 곱씹으며 읽어 내려갔다. 그의 글을 화장실에서만 읽었던 탓인지 책장만 펴면 배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난 당시에도 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류시화 작가의 몇몇 문장을 편지에 담아 그녀에게 선물했는데, 그녀는 내게 선물해놓고도 내가 인용한 게 류시화 작가라는 걸 도통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다 내가 쓴 줄 알았다.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녀와의 연애는 길게 가지 못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상태로 끝났다.

류시화는 2000년대 출판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시인이었다. 내가 서점을 찾을 때마다 락커 같은(박완규 닮았다) 그의 얼굴을 담은 띠지가 베스트셀러 매대에 보였다. 류시화는 책을 내는 족족 성공했고, 그를 구도자로 불렀던 사람들은 시보다 인간 류시화를 더 좋아했다. 그는 동인지나 계간지에서 활동하는 시인과 달리 전 세계를 방랑하다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입지가 애매한 곳에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예술가 특유의 곤조가 있었던 것 같다. 조성모 이전에 신비주의 노선을 택했고, 다수의 여행서를 쓸 만큼 부러운 인생을 살았다. 대형 카페에 가면 그의 시집이 커피잔 옆에 놓여있었다. 나 서정시 좀 읽는다고 티를 내기에 류시화의 시집은 꽤 적절했다. 류시화는 이렇게 뭔가 멋있는 걸 읽고 싶은데 시와는 거리가 먼 나 같은 이들에게 좋은 시인이었다. 문턱이 낮았고 젠체하는 바 없이 유치했다. 나는 사실 그의 책이 잘 팔린다고 좀 무시했다. 그의 예외적인 성공이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기분을 줬다. 잘 팔리는 책이라고 무조건 낮춰 보는 게 얼마나 경박한 일인지 잘 몰랐으니까. 똥폼 잡기 좋은 근사한 말로 가득했기에 줄을 많이 치며 읽었지만, 아니 이런 건 너무하다고 생각되는 허튼 글도 많았다. 요즘 알라딘 중고서점엔 류시화의 책이 무수하게 꽂혀있다. 나는 카페 책장에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뽑아 들고 좀 읽어봤다. 잠언은 교훈이 담긴 구전인데, 옛 말을 고분고분 들으니 세상에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가 주는 안도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화장실에 그의 책을 꽂아 둔 아버지의 혜안이란.


요즘 모임을 하노라고 한 달에 한 번씩 강남역을 찾는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입구로 나오면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지하에는 온갖 잡화 매장이 빼곡하고, 한편에는 밀집한 성형외과가 소란을 피운다. 유흥가인 6번 출구 근처엔 젊은 친구들이 많다. 온갖 욕망과 웃음소리, 번성과 혹독함, 고고함과 천박함이 뒤엉킨 강남은 올 때마다 달리 보인다. 뭔가 말을 꺼내도 도시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고, 화려한 패션과 화장이 뭉크의 그림처럼 기괴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독서가 그리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임 날 일찍 도착하면 골목 구석에 중고 서점에 들른다. 시집 코너에서 호흡이 짧은 세계 시인선을 즐긴다. 단정하고 압축한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 서걱거리던 기분이 가라앉는다.

요즘 시인들은 과거와 달리 시대보다는 개인에 더 가닿아 있다. 류시화는 한때 너무 사변적이라는 이유로 문단의 외면을 받았다. 그가 사회 돌아가는 꼴에 관심이 없는 반골이기도 했고, 자기 멋에 취해서 근현대 시의 기술 흐름을 무시한 이유도 있다. 요즘 시인도 그런 의미에서 류시화와 일정 부분 닮아 보인다. 평단 눈치 따위는 안 보고, 제 속에 자리한 뜨거운 감정을 날렵한 시구로 뱉어낸다. 조금 어리숙하고 서툰 느낌이 매력이다. 허세를 예술로 승화시킨 류시화식 감성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여유로운 토요일 풍경, 고개를 쳐든 연인들, 머리에 무스를 바른 머리통, 통이 큰 바지 차림으로 영화관에 가는 젊은이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시를 읽는다. 창밖 강남구는 이미 시인이 예찬한 바 있던 그 모습 그대로 휴일의 공허한 정경과 어울린다. 시인은 빈약하나마 추억을 끄집어내고, 여름철 냄새와 누구나 좋아하는 거리 풍경을 곱게 적는다. 어떤 저녁 하늘, 내게 시집을 쥐여주던 그녀의 웃음과 옷차림이 떠오른다. 나는 어서 모임을 마치고 내 방으로 가서 오늘 산 시집을 읽다 잠들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