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블루스

by 박민진

서울의 원룸 오피스텔은 이제 교회당보다 많고, 혼자 사는 가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후죽순 늘어났다. 모두 예능에 나오는 연기자처럼 잘 먹고 잘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라면 물을 올리며 세탁기의 종료 신호를 기다릴까. 과거 도시 재개발로 인해 달동네 쪽방촌 거주민이 생계의 귀퉁이에 몰리는 광경을 봤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나. 값싼 연민을 품고 쯧쯧거렸나.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안도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신림동과 노량진 뒤편 골목길을 산책하다 보면 마치 오피스텔로 이뤄진 벌집처럼 보인다. 달과 가깝긴커녕, 저지대에 자리 잡아 모든 습기를 빨아들인다. 여차하면 떠날 준비를 마친 도시의 이방인들은 단출한 살림과 혹독한 월세를 감내한다. 이 도시의 주인은 따로 있어 뿌리를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벌집을 그저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그 작은 공간도 내가 사는 방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하나뿐인 아늑한 보금자리일 테니. 자그마한 침대에 기대 책을 읽고 도마 하나 놓기 어려운 부엌에서 나만의 요리를 한다. 손수 마련한 책장에 꽂혀있을 책을 상상한다. 생활 양태를 일 인분으로 맞추고 세속적 가치에 반목하는 도시의 보헤미아가 느껴진다. 몰 취향을 혐오하고 번지르르한 놈에 콧방귀 뀌는 그런 아나키즘이야말로 지금 이 도시의 집시들이 버텨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축대일 것이다.


내 20대는 혼자인 기억이 대부분이다. 요즘엔 혼자 사는 이들이 예능 프로의 주요 포맷이라 익숙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라는 개념은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관념이었다. 고독이라는 어휘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한국에서 혼자라는 말은 훼손된 상태를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혼자를 지리멸렬하게 의식했다. 예능에 나온 셀럽은 발랄하게 혼자 즐기지만, 내겐 그의 모습이 다다이즘 화가의 작업물로 보인다. 화려한 주방에서 시간과 공들여 완성한 요리를 혼잣말하며 먹질 않나, 손님을 초대하곤 자기 침실을 소개하는 이해 못 할 짓을 벌인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혼자 사는 집이 청결하다. 그 운동장 같은 집이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하다.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현실감이 떨어진다. 난 티비를 끄고 잠자리에 든다.


난 술자리가 드물다. 사람을 만날 일이 적다 보니 오랜만에 모임 자리가 생기면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오늘은 술자리에서 새벽을 지새웠다. 지금이 속 편하다고 떠들었다. 자리가 파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애석한 마음에 자꾸 헛소리를 뱉었다. 결국 새벽 술자리는 결핍을 남긴 채 끝이 난다.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 타자마자 매캐한 숙취가 밀려온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창에 기대 한 숨 돌렸다. 그날 한 헛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후회뿐이다. 집에 도착해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난 좋은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은 책을 내고 어어어 잠이 쏟아진다. 다시 아침이 오면 패턴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늘 그랬던 것 같은 일상이 시작된다.


나는 운이 좋다. 좋아하는 언어가 일상에 빼곡하다. 든든한 직장에 몸 뉘일 곳도 있으니 다 괜찮다. 하지만 난 이별에 삽시간에 무너진다. 중요한 곡절마다 나타나 나를 뒤흔들고 증발하듯 사라져 버리는 그가 야속하다. 나를 하찮다고 무시하고, 뭐든 시간이 좀 지나면 실증을 나서 나를 마다한다. 그를 잡지 못한 애달픈 마음은 우울과 몽상, 자책과 낙담으로 몬다. 나는 근사한 도시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고즈넉한 고택과 산책길을 두고도 마음을 붙들지 못한다. 사랑에도 권력이 있는지 내가 더 좋아하면 상대는 달아나기 바쁘다. 덜 좋아한다는 이유로 맘대로 휘두른다.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걸 파악하곤 잘 상처가 아물 즈음 나타나 삶을 뒤흔든다. 다시 떠날까 두려움에 떠는 날 옥죈다. 문제는 그걸 잘 알면서도 이 패배주의적인 연애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며 구애에 목매는 지긋지긋한 연애. 하지만 이런 방식의 연애는 글쓰기엔 도움이 좀 된다. 나는 연애담을 글로 남기는 걸 좋아한다. 연애가 없는 일상은 권태가 잠식하고, 비록 찍소리도 내지 못하는 무차별한 사랑이라도 영감의 뮤즈를 떠올리며 펜대를 굴린다. 그래서인지 요즘 정신을 차리고 한 편의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시리얼을 먹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구부정한 자세로 바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고, 매일 입는 흰 티셔츠를 입는다. 짧은 머리는 대충 물에 적시고, 늘 들고 다니는 가방에 소설책 한 권을 챙긴다. 불룩해진 가방엔 연필도 몇 자루가 있고, 가끔 끄적이는 수첩도 하나 자리한다. 누가 봐도 남루한 행색을 한 난 출근하기 위해 차에 오른다. 서울 역시 이곳과 마찬가지로 아침은 출근은 지옥이다. 지갑 속엔 사진 한 장 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추억을 붙잡기 위해 넣어뒀다. 사진을 보며 그때를 떠올리고 그의 일과를 그리는 데 익숙해졌다. 오늘은 뭘 먹었는지, 괜찮은 사람과 만나고 있는지. 점심 막간에 헐렁한 티셔츠를 휘날리며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아니 도리질 치며 불행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