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낚은 형

소재 <보이스피싱>

by 박민진

살면서 긴장할 일이 잘 없다. 옛날에야 상사의 호된 질책에 잔뜩 얼어붙었지, 요즘엔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한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일정량의 모욕감을 수반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부터는 내심 편해진 기분이다. '박 과장, 보고서가 이게 뭐야. 방향이 완전히 틀리잖아. 내가 이런 것까지 얘기해줘야 하나.' 난 잔뜩 주눅 든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이런 것까지 다 듣지만, 결코 긴장하진 않는다. 질책이 길어질 때는 눈의 초점을 흐리고 주말에 본 영화를 떠올릴 때도 있다. 줄거리 요약도 하고, 인상적인 장면도 떠올리면서 묵음 처리된 그의 입매를 바라본다. 퇴근 후에는 평온할 것이다.


난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무구한 마음을 최고의 상태로 여기며 산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속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잔뜩 긴장해서 일을 망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긴장만 하면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는 나로서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이는 게 평상심을 지키는 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긴장이 될 만한 상황을 피해왔는데 간혹 아주 어처구니없게 큰일이 닥쳐온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 부닥친 때 초긴장 상태에 몰린다. 사고가 벌어지면 어쩔 줄 모르고 무너져 내린다.


최근 자기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박민진 씨 맞으십니까. 서울 동부지검 박철환 검사입니다.’ ‘네? 동부지검 누구시라고요? 검사요?’ 그는 내 말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박정민 씨가 친형이 맞냐고 물었다. 내용인즉슨 형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지금 열흘째 잠적해서 소재 파악이 되지 않으니 수사에 협조해 달라는 용건이었다. ‘그러니까 형이 전화를 안 받는다는 거죠? 제가 전화 한 번 해볼까요? 엄마는 뭐래요?’ 놀란 나는 본격적으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정수리 부근이 띵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앵무새처럼 눈을 껌뻑거리면서 그가 한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형은 소재 파악이 됐나요. 건강하다고 하나요. 그 양반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데 도망을 쳐요. 말도 안 돼.' 박철환 검사는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차고 나를 나무랐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면서, 내 주위를 환기했다. '지금 상황이 아주 심각합니다. 이러다가 기소가 되면 죽도 밥도 안됩니다. 바로 구속에 형을 살게 될 겁니다.' 난 그의 말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우선 주저앉아 우는 엄마 얼굴이 떠올랐고, 말없이 줄담배를 피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이어 강원도 어느 바닷가 여관방에서 소주에 라면을 먹으며 숨어 지내고 있을 형을 떠올렸다. 박철환 검사는 협박에 가까운 온갖 해괴한 말을 늘어놓으며 수사에 협조하라고 일렀다. 뉴스에서나 들어본 바 있는 용어들에 내 머리가 한도 초과에 이를 때쯤에 박 검사는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안내 메시지가 나오면 내 개인정보를 입력하라고 했다. 그래야 참고인으로 등록을 한대나. 그의 지시대로 주민등록번호를 순순히 누르던 차 그제야 머리에 혈액순환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 참고인 조사를 하는데 주거래 은행을 왜 물어봐. 난 불현듯 사태를 깨닫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몇 분 후에 엄마와 통화가 되면서 형의 안부를 물었다. 늦은 저녁이라 잠자리에 든 어머니는 뜬금없는 막내의 전화에 당황한 눈치였다. 형은 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 회사에서 나온 달력을 주러 들렀단다. '민진아. 형 안부는 왜 물어. 집에는 언제 오냐. 그나저나 너는 왜 형한테 연락을 안 해. 조카가 궁금하지도 않냐.' 그러면 그렇지. 난 긴장이 풀리면서 베실 베실 어이없이 흘러나오는 웃음을 주어 담았다. 이런 흔한 수법에 놀아나다니. 사기꾼 박 검사와 다시 통화할 용기는 나지 않아서 40자 문자에 내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서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바로 신고했다.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전화를 받은 이에게 하소연했다. '아 그러니까. 보이스 피싱을 당하실 뻔하신 거네요. 피해액은 없다는 거죠. 흔한 수법인데 다음에는 조심하세요. 중국 놈들이 요즘엔 말투도 서울말을 써요. 이 정도면 잘 대처하신 겁니다. 네, 걸려온 번호만 주시면 됩니다.' 난 내 허탈한 감정을 들어주지 않는 사무적인 그가 미웠지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급격히 피곤해졌다.


사기꾼의 허무맹랑한 협박에 내 몸이 얼어붙은 건 왜일까. 아마도 그건 올 것이 왔구나, 일어날 것이 일어났구나 하는 숙명적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하나뿐인 형은 내겐 늘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무엇이 날 불안케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와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그를 평생 봐왔지만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위협을 느꼈다. 사실 어려서부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며 자라왔다. 형은 늘 잘 나갔고, 늘 거칠게 날 평가하듯 굴었다. 좋아하는 것도 관심사도 모조리 달라서 길게 얘기한 적도 없었다. 형제이기에 늘 비교당했지만 단 한 번도 나와 동종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상한 열등감도 느껴왔다. 박철환 검사는 나의 어떤 자료를 보고 내게서 형을 향한 복잡한 속내를 알아냈을까. 난 왜 형 얘기만 나오면 긴장하고 말까. 난 폐부를 찔린 사람처럼 몸을 뒤척이다 잠들었다.


은희경은 <빛의 과거>라는 자신의 소설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의 "군대의 비극은 섞인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섞어야 하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70년대 여자 기숙사의 상황에 적용했다. 사실 그건 회사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말일 것이다. 크든 작든 섞인다는 것은 다름을 감내해야 한다는 소리니까. 가족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다정하게 잘 섞인 척 연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만 한다는 압력에 굴복할 때도 많다. 어디 내놓아도 부족할 것 없는 형은 내가 자랑스럽게 마주해야 하는 상대지만, 평생을 마주하고도 섞여들 수 없는 사이이기에 자꾸 슬픈 기분이 든다.


형과 연락하지 않고 산지가 꽤 되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말다툼이었는데 점점 더 연락이 뜸해지면서 서로의 삶을 전혀 모르고 산다. 고작 엄마에게 듣는 소식이 다다. 코로나를 핑계로 명절에도 보지 않았다. 좋은 구실이었다. 보지 않으니 속은 편했다. 가뜩이나 뜸했던 왕래가 사라지면서 서먹서먹한 것도 없어지고 진짜 남처럼 무관해졌다. 박철환 검사의 언급이 없었다면 그냥 피하며 살았을 것이다. 난 카톡으로 형에게 술 선물을 했다. 무심한 척 그냥 어디서 받은 술이라고 하면서 술을 배송시켰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지도 못하고, 잘 먹으라고만 했다. 형은 단답식으로 말을 받았다. 형은 요즘 형대로 새 회사를 차리고 이사도 가고 하나뿐인 조카를 키운다고 바쁜 걸 알았지만 묻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도 관심사도 세상을 대하는 관점마저 다른 4살 터울의 형제는 그렇게 밀어내지도 가까이하지도 못하며 산다.


형은 날 평가하는 사람 같고, 내게 모진 말을 할 사람 같다. 가족으로서 내게 어떤 역할을 요구한다. 난 형을 알게 모르고 의지하고 따른다. 우리 집이 갑자기 기울었을 때 가장 강했던 사람이고, 내가 군에 입대할 때 버스에서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배웅해줬던 사람이다. 형은 어느 부분에서는 우월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상종하기 어려운 바가 있다. 나의 단점을 쉬이 앞지르고, 나의 장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박철환 검사가 잡아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이지만, 어느 한 번 약해진 적 없는 유능한 사람이다. 형이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형은 복잡하다.


내가 긴장을 하지 않는 건 다름을 찾기 어려운 일상 탓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삶이 점점 더 예측 가능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다. 편한 대로 받아들이고, 내 깜냥을 인정하면서 살기에 무리하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별반 다를 것 같지가 않다. 오늘의 내가 어제를 따라 하고,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나를 'Ctrl + C'로 복사할 것이다. 같은 곳에 가서 비슷한 일을 하고, 매번 가는 카페 자리에 앉아서 별반 다르지 않은 글을 쓰는 삶이다. 비슷한 맛의 밥과 커피를 마시고 거울 속에는 같은 브랜드의 옷을 돌려 입는 내가 보인다. 지금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는 내 고개가 까닥거리는 것도 마치 버릇처럼 익숙하다. 마치 프랙털 구조처럼 비슷한 하루가 모여 생을 이루고 있다. 삶이 습관처럼 반복되니 마음 졸일 게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아마도 형과 평생 이런 관계로 살 것이다. 눈치나 보면서 어색한 웃음과 의례적인 말로 얼버무리겠지. 그래도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 참. 조카는 제발 형을 닮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