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에서부터 뒷담화를 했다.

소재 <위안>

by 박민진

어머니는 밥을 차려주면 꼭 이웃집 얘기를 했다. 난 혀를 차며 젓가락을 놀렸다. ‘진짜야. 아 그 집 이제 어떻게 하냐.’ '보기엔 멀쩡해 보였는데 뭔 일이야.'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봤을 땐 태연한 얼굴이었는데.’ 어머니는 이런 내 무성의한 추임새에도 아랑곳 않고 신이 나서 이웃집 에피소드를 들려주곤 했다.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느라 고생한 그녀에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허기를 지우는 데 최선을 다했던 나는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이것도 집어먹고 저것도 좀 떠먹으라는 잔소리를 보태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그녀는 이웃집 사정을 속속들이 다 꿰고 있었는데, 난 그게 어머니의 삶이 지닌 권태감의 발로로 보여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마땅한 티를 낼 순 없었다. 이웃이야 어쨌든 아무렴 어떤가. 밥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 정말이야.' '아 그랬구나' 따위의 숨기는 맞장구 정도였다.


내가 그녀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건 남의 집 사정을 낱낱이 까발리는 게 남사스러웠기 때문이다. 허락 없이 남의 집 옷장에 숨어들어가 몰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해준 얘기들은 너무 시시콜콜해서 굳이 뭘 저런 것까지 얘기하나 싶은 자질구레한 루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랬다더라 저랬다더라'하는 말투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보여서 듣는 내내 구차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좀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넣으면서 '거 14층에 그 아저씨 너도 본 적 있지'라고 물었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폰에 고개를 파묻고 대충 '어어' 대답했다. 머릿속으로는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그를 모르는 척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쉬지 않고 석션하듯 그릇들을 해치웠다. 예나 지금이나 내 식사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하나씩 바닥을 드러내는 그릇들을 보며 못내 조바심이 났는지 말이 빨라졌다. 그리고 약간 뜸을 들이다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놨다. 어머니는 우리 둘밖에 없는데도 목소리를 낮추고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속삭였다. 계속 들은 체 만 체하던 나도 그쯤에서는 파묻었던 고개를 들고 어머니 얘기에 집중했다.


나만 보면 동네가 떠나갈 듯 큰 소리를 내 이름을 불렀던 아저씨는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양반이었다. 어느 날 두부를 사 온 내가 터덜터덜 1층 경비실을 지나자 '민진이 뭐하냐 넌 생긴 게 만진이가 어울리는데, 어딜 만지고 다니냐.' 하며 농을 걸었다. 난 취한 인간들을 질색하는데 아저씨는 술만 먹으면 실없는 농담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일요일 낮부터 동네 치킨집에서 호프를 몇 잔씩 때렸는지 얼굴은 벌개 가지고 혼자서 킥킥거렸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얌전한 태도를 보이던 양반이 술만 먹으면 꼭 저렇게 느슨해졌다. 그는 그렇게 1층 경비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줄담배를 피웠다. 폴로셔츠를 바지 속에 넣고 갈색 가죽 벨트를 매고 다녔던 아저씨는 누가 봐도 그냥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는 당시 드물게 혼자 사는 남자였는데, 혼자 사는 남자답게 여러 소문이 있었다. 다녀왔다느니, 평생 독신이라느니, 무슨 상관인지 모르지만 목사의 아들이라서 그렇다느니. 별별 얘기가 다 있었지만 아무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는 외형부터 남달랐다. 앞머리에 흰머리가 살짝 나 있었는데, 브릿지로 염색을 한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건 머리가 다 새었는데 앞머리만 남기고 염색을 한 거란다. 나이는 쉰 전후로 추측이 되었는데, 서른 평이 넘는 아파트를 혼자 쓰면서도 별다른 직업이 없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학교를 마치고 공원을 가면 꼭 아저씨는 동네를 소요하면서 도인처럼 고개를 치켜든 채 뒷짐을 지고 산책을 했다. 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를 작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나만 보면 꼭 최불암 시리즈에 나올법한 농담을 걸었는데, 적중률은 엉망이었다. 난 그냥 삶을 농담처럼 사는 그가 좋았다. 의미의 말도 잘 모르면서 무의미한 삶을 사는 그가 좋아 보였다. 어쩌면 그는 내가 바랐던 이미지를 하고 나타난 첫 번째 어른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아저씨는 여러 어머님들의 챙김을 독차지했다. 마른 데다가 늘 매가리가 없어 보였던 외모 덕분인지 그는 든든하게 먹이는 걸 사명으로 아는 이웃집 아줌마들의 챙김의 대상이 되었다. 본인의 사는 묻지도 않고 반찬이나 과일을 밀어 넣는 것이 챙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몇 번씩 그릇을 들고 14층을 오갔던 게 생각이 난다. 내가 아저씨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고등어조림 때문이었다. 그날도 랩으로 씌운 자기 그릇에 큼직하게 토막 낸 무와 고등어가 몇 덩이나 넣어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아저씨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미소를 지었다. 술만 안 먹으면 참 조용한 인간이었다. '어머니가 드셔 보시라고 주셨어요.'라고 말해도 그는 별말 없이 그릇을 받고는 놀다 가라고 했다. 난 잠시만 앉았다 가야지 하며 그의 집을 구경했다. 보통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있고 그 맞은편에 소파가 있는 구조를 떠올렸던 내게 그의 집은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보였다. 거실에는 탁자가 떡하니 놓여있고, 거실 벽에는 온통 책밖에 없었다. 책장 중간을 살펴보니 출판사 명함이 잔뜩 있었고, 탁자 위에는 원고로 보이는 종이 뭉치가 잔뜩 있었다. 집 안에는 책과 종이 향이 가득해서 내가 가져온 고등어조림의 비릿한 냄새는 마치 오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못 얻어먹고 사는 게 아니라 별로 먹을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방에는 그릇이나 컵도 잘 없어 보였고, 고작 생수병만 잔뜩 보였던 것이다. 난 차를 대접받지도 그렇다고 다정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면서 아저씨에게 내적인 친밀감을 갖게 되었다. 술 취해 실실거리는 그의 모습은 잊히고, 경비 아저씨와 몇 시간씩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집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단정한 성품에 흠집을 내는 사건이 생겼다. 얼마나 새삼스러운 일인지 온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다. 낙인이 찍힌 아저씨는 칩거했다. 주말만 되면 기분 좋게 취해서 동네를 소요하던 아저씨의 유쾌함이 한순간에 평소에도 문제가 많던 인간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둔갑했다. 혼자 살면서 가족 누구와도 왕래가 없는 문제가 많은 인간으로 보였단다. 어머니는 뭐하고 사는지 예측할 수 없었던 그가 얼마나 의심스러웠는지 내게 열변을 토했다.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데, 왜 그전에는 한 번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오히려 무뚝뚝한 아버지를 들볶을 때 상대적으로 다정해 보였던 아저씨를 소환하지 않았나. 그럴 줄 알았기는커녕 그럴 줄 꿈에도 몰랐으면서. 꼭 일이 터지고 나면 다 알았다고 혀를 찼다. 난 밥을 먹다 말고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두부와 돼지고기가 잔뜩 들은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에 소문이 잘 퍼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파트는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같은 평수에 같은 가구와 가전제품을 사들이는 아파트 주민들은 대한민국 표준에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잘 사는 중산층의 표본으로 수도권의 서른 평 넘는 아파트가 거대한 열망이 되었다. 그러니까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는 오직 평범해지기 위해 대출금까지 갚으면서 사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유별나게 살고 싶지 않으니 사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아저씨 같은 유별나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남들과는 살짝 다르게 사는 사람이 끼어 있으니 눈에 띄고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정해진 곳에 이렇게 살 생각이 없는 불순분자가 틈입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는 적절한 무관심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친근한 이웃을 기대했겠지만, 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고 시간만 나면 모여서 왈가왈부하는 이들 곁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사는 게 뻔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루머는 오직 루머를 위한 루머로서 양산됐다. 말을 지어내지 않고는 버티기가 힘든 탓이리라. 그나마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세대의 독립성을 모토로 하지만, 내가 자랄 당시만 해도 윗집 아랫집 저 위에 14층 아주머니까지 각자의 사정을 속속들이 공유했다. 이웃에 사촌을 붙이는 한국식 문화가 아직 건재했다. '자기만 알고 있어'라고 말한 내용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귤을 담은 바구니에 담겨 우리 이웃들의 무료한 오후를 책임졌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험담은 인류 진화의 핵심이자 지상 최대의 심심풀이 아닌가. 우리 조상들도 뒷담 너머에서 얼마나 무수한 양반 놈들을 헐뜯었는지 이런 말을 따로 만들었겠나. 예쁜 자기 잔에 맥심 커피를 두 숟갈 타고 사과까지 깎아서 얘기하는데 체면치레나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도 보태고, 상황의 심각함을 알리려면 엑스트라도 추가로 깔아줘야 이야기에 맛깔이 났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편히 웃을 수 있는 익살과 재담 없이는 그 자리에 낄 수 없었다. 내가 알기로 우리 어머니는 입담이 좋은 분은 아니었지만 리액션만큼은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 606동 아파트의 소문이란 소문은 죄다 우리 어머니에게로 흘러들었고, 어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색해서 우리 이웃의 불행을 내게 전수했다.


당시 우리 이웃이 불행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때는 IMF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대규모 실직사태의 여파가 가시질 않은 때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악재가 터져 나왔다.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국가가 부도난 걸로도 모자라서, 집에 있던 금목걸이를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처지였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서 목이 마르고 마음이 황폐해졌다. 그건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머니는 아마도 우리 가족보다 더 큰 불행을 마주한 이웃집 얘기로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몹쓸 아들은 짐작해본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잠시나마 잊는다는 건 내겐 퍽 문학적으로 느껴진다. 나도 어머니가 옮기는 말을 들으면서 누군가의 불행을 통해 우리 가족의 근심이 조금이나마 사라졌으면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우린 여전히 우리 가족은 살만하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정말 큰 일이네. 미숙이네도 얼마나 힘들겠어. ' '우리 가족은 그래도 이렇게 마주 앉아서 밥도 먹고 있잖아.' 이런 말투에는 걱정을 빙자한 호기심이 묻어 있었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생각은 했다. 우리 집 사정도 틀림없이 이웃집 식탁에 반찬거리로 오르겠구나. 다들 이렇게 서로를 견주고 깎아내리며 힘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됐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모든 불행은 다 제각각이니 쉽게 질릴 리가 없었다.


누군가의 불행을 즐기는 방식은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사무실에서 박 과장의 불륜, 김 대리의 이혼, 거래처 최 씨의 파산신고를 화두로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어느 날 오후에 모니터를 보며 열심히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사람들이 테이블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걸 엿들었다. 정수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척하다가 귀를 열었고, 휴지통에 종이컵을 버리다가 슬쩍 말을 보탰다. '그럴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어쩌다 그랬대.' '그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좋은 애였잖아.' 그 와중에 경박해 보이긴 싫어서 적당히 탄식을 섞어가면서 미간을 구겼다. 이런 관심은 죄책감을 자아냈지만, 반나절이면 잊힐 감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삼삼오오는 구구십십이 되었고, 다들 혀를 차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입에 올리는 대화를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겸연쩍은 표정이 지어진다. 그러다가 꼭 어느 한 명이 어색한 침묵을 깨는 교훈을 꺼내 들면서 대화는 마무리됐다. '우리도 조심해야지. 남의 일이 아니야.' 그렇게 엄연한 남의 일을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힘을 얻었을까. 쌤통이라고 생각했을까. 반면교사로 삼아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을까. 그래서 뭐가 남았을까.


가끔 <추적 60분>이나 <시사매거진 2580>,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보면, 해당 사건의 범인이 살던 지역 주민 인터뷰를 따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모자이크에 가려진 그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다들 '그 사람은 평소에 인상이 참 좋았고, 범행을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라고 입을 모아 말을 한다. 누구도 극악무도한 용의자가 원래부터 사람 때려죽일 극악한 놈처럼 보였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만큼 사람은 누군가를 대놓고 비난하는 것을 꺼린다.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건 치졸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의눈이 무서워서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익명의 상황이 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로 청자의 폭이 좁아지면 네이버 댓글 창 못지않은 위악적인 평가가 곁들여진다. 관상은 과학이라느니, 그럴 줄 모르기는 난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느니. 걔는 어디 출신이니까. 걔는 평소에 그런 말을 하고 다녔으니까. 이런 편향된 말이 술술 나오는 것이 익명의 위력이다. 다수 앞에서는 위선을 무기로 삼더니, 알만한 사람이 앞에 서면 위선은 자취를 감추고 위악을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는 '14층 아저씨 사건'을 내게 들려줬고, 난 곤경에 처한 아저씨를 떠올리며 쇠젓가락을 쪽쪽 빨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내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아저씨에 관해 난 뭐라고 인터뷰를 했을까. '인상 좋고 얼마나 선한 분이셨는데요. 그런 일을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똑같은 사랑 타령만 늘어놓는 발라드는 끊이지 않고 나온다. 매번 똑같아도 들을 때마다 새롭고 재밌으니 똑같은 게 더 잘 팔린다. 다들 혀를 차면서도 소를 모는 목소리에 심취해서 노래방에서 목동이 된다. 치정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도 어쩌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통속의 힘에 휘둘리고 싶기 때문이다. 막장 드르마가 더 재밌는 것도 우리가 패턴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까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도 없지만, 완전히 닮아 빠진 이야기도 없는 것이다. 같지만 같지 않은 이야기는 고심 끝에 밥상 앞까지 기어 나오고, 어느 호사가에 의해 카톡에 옮겨지며 다시 누군가의 블로그를 경유해서 어느 작가의 원고에 묶이는 게 세상 원리 아닐까. 세상은 그렇게 뻔한 이야기를 그럴싸한 문학으로 유통해왔다. 표지도 근사하게 하고, 띠지에는 어디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레테르를 달아서 통속성에 리본을 달았다. 끝 모를 비천함에 만 사천팔백 원짜리 바코드를 붙여서 매대를 장식했다. 사람들이 문학을 많이 읽으면서 소문을 해석하는 솜씨가 더욱 풍부해졌기에 소문이 소문으로 그치지 않았다. 밥상을 치우고 과일을 깎고 차를 마실 때까지 가공에 가공을 거쳐 더 나은 이야기로 발전해갔다. 입과 입을 거치면서 더 설득력이 얻었고, 들어줄만하고 극적인 드라마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당시 우리 집도 속 시끄러운 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쉬쉬하면서 남의 집 얘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미역국을 끓여서 평온한 아침으로 위장했다. 밤만 되면 목청이 높아져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아도, 해가 뜨면 아무런 티도 안 냈던 안쓰러운 우리 엄마. 갈등을 피해 달아나기 바빴던 관조의 달인 우리 아버지. 다 나 몰라라 하고 밖으로 돌았던 우리 형. 아마도 다 누군가의 걱정거리에 수록되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와 함께 사라진 단란함. 화목했던 전성기가 저물었고, 꼭 미안해서 같이 사는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유예된 채 이어지고 있다. 뻔한 스토리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한창 싸울 때 내 낙은 아이폰이 아닌 이어폰이었다. 좁은 집에서 넷이 살면서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부모님 싸우는 소리가 버거울 때마다 시디플레이어를 켰다. 이어폰을 귀에다 박고 지옥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꼴이었다. 그때 난 돈 오백만 모으면 바로 이 나라를 뜰 거로 생각했다. 딸라 값이 오르면 지방에 자그마한 방을 구해서 칩거라도 해야지 생각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기막힌 소설 한 편을 떡하니 써서 귀향하는 상상을 했다. 내 생각에 가장 밑천이 안 들고 누구에게나 떳떳한 독립 방식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돌은 잘난 얼굴로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당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간택당할 일이 없기에 오직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일류 작가를 우러렀다. 그땐 뭘 몰라서 그런지 상상의 문턱도 꽤 낮았던 것 같다. 이것도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새 스무고개를 넘어가면서 나도 밥상머리에 오르내릴 통속의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다. 연애가 초미의 관심사요 중대한 사업이 되면서 내 속은 편할 날이 없었다.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연애라는 형식에 목을 매니 누군가의 연애를 흉내 내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연애소설을 좀 많이 읽었어야지. 집에 가면 보는 게 <노팅힐> 같은 로맨틱 코미디다 보니 현실과 유리된 연애를 바라보다가 차이기 일쑤였다. 분명히 소설에서 읽은 대로 멘트를 치고, 영화에서 본 대로 와락 끌어안았는데 다들 진절머리를 냈다. 연애를 못 하면 무능한 듯 여겨지는 분위기여서 연애를 하는 내가 좋아 누군가를 만났으니 별 수 없었다. 창의적이지 못한 서툴고 어지러운 연애를 반복하면서 나도 통속극을 여러 번 찍은 베테랑 연기자가 되었다. 연애해야 한다는 강박도 어느새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향한 갈망으로 변해갔다. 여자를 못 잊어서 술만 취하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나 붙들고 늦도록 신세타령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연애 안에 거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뻔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연애에 성장이라는 말을 붙이면 꼴이 우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연애사에 성숙이라는 고루한 수식어를 붙이는 걸 즐긴다. 그건 이야기의 성숙이기 때문이다. 나와 헤어지고 사인 가족을 이룬 그를 보고 노래방에 가서 '니가 사는 그 집'을 부르던 내가 이제는 행복하게 사는 그의 앞날을 축복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날 밤마다 괴롭혔던 그녀의 치정도 시간이 지나 추억하면 눈물겹기보다는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쌍팔년도 발라드는 외형만 살짝 바꾸고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내 식탁에는 어머니가 없지만, 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회한을 잔뜩 품고 글을 쓴다. 그러니까 돌고 돈다는 말은 패션에만 쓰는 게 아니다. 우린 팀버랜드에 힙합바지를 입던 애들이 다 늙어서 등산복을 입고 출근하고,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은 루즈핏이니 박스핏이니 하는 말로 힙합바지를 달리 부르는 순환 구조를 목격하고 있다. 배꼽티를 크롭탑으로 불러봤자 배꼽이 차면 배탈 나는 건 다 똑같은데도 말이다. 같은 내용도 달리 부르고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남다른 글이 나오더라. 같은 실수와 비슷한 불행을 반복하면서 살지만, 그래도 글 속에는 어머니의 뒷말처럼 비릿한 날 것의 즐거움이 묻어나서 좋았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라는 진부한 표현도 처음 들었을 땐 얼마나 신선하게 느껴졌을까. 뻔하다고 다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위안을 받는 건 패턴이다. 고유한 게 없는 일상은 출근 도장이나 찍어대는 로봇과 다를 게 없을 테지만, 익숙함 속에 살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패턴에는 매혹이 없지만, 지루해지지 않으려면 패턴에 점이라도 찍어야 한다. 캠벨 수프 캔도 액자에 넣어 미술관에 걸어놓으면 상투성을 변주한 예술이 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늘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는 모임 자리에서도 상대를 향한 선입관에 억지로라도 제동을 걸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먼지가 잔뜩 묻은 말을 고이 털어내서 단어의 쓰임대로 받아들이면 문장에서도 페브리즈 냄새가 난다. 패턴의 세계에서도 티끌만큼의 차이를 발견해내야 패턴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현실 타협이야말로 내가 타인과 구분 지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위엄이 아닐까. 난 상대 얼굴을 보며 주문을 왼다. 당신을 내 테두리 안에 가두지 않겠습니다. 내 잣대로 당신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내가 패턴 안에서 숨통을 틔며 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