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짜장면>
내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화기애애한 교실에 엄마가 왔고 큰어머니가 왔다. 내 기억에 두 분이 분명히 뒤에 서서 계셨는데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두분 역시 내가 졸업장을 받을 때도 무표정했다. 난 끝까지 고개를 숙이고 어서 이 의례적인 행사가 끝나길 바랐다.
내가 중학교 졸업을 두 달쯤 앞두고 있었을 때 집이 이사했다. 교실에서 나만 더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 애가 아니었다. 나만 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놀던 애들이랑도 더는 어울릴 수 없었다. 진짜 혼자가 되어버렸다. 혼자인 것은 괜찮았는데 내가 혼자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걸 누가 보는 건 싫었다. 뭐가 그렇게 수치스러운지 숨어 다녔다. 그렇게 숨어 다니다 말이 줄었다. 아마 이때쯤부터 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는게 뭐가 그렇게 구질구질한지 어서 집구석을 벗어나고 싶었다. 고작 돈 몇푼에 휘둘리고 호들갑을 떨어야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큰어머니는 짙은 갈색 코트에 늘 끼고 다니시던 금테 안경 뒤로 희미하게 웃고 계셨다. 엄마는 그 옆에서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이 중학교 졸업 때는 63 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뷔페 음식을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높은 빌딩에서 다들 낙관하고 있었다. 고작 몇년 사이에 집안 꼴이 이상해졌다. 교실 창밖으로 흰 눈이 쌓여있었지만, 온도는 많이 올라갔다. 난 폭설이 와서 졸업식이 취소되기를 바랐다. 바람대로 될리 없었다. 내 손에는 두툼한 졸업 사진첩이 들렸지만, 한 번 넘겨보지도 않았다. 사진 하나 찍지 않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엄마도 나도 뭔가를 기념할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 세 사람은 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학교 밖으로 나섰다.
가세가 기우니 좁은 집으로 몰렸고, 부모님은 완전히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집이 좁아지면 가구를 버리게 된다. 손때 뭍은 물건들이 버려지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반지하에 살면 몸이 춥고 늘 목이 마르고 텁텁해진다. 가난의 행태는 내가 알기론 다들 비슷한 것 같다. 비슷한 실수를 해서 전형적인 방법으로 가난해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부모님이 어쩔 줄 모르는 게 눈에 다 보였다. 그들이 평생을 바쳐 마련한 아파트 허공에 흩어졌다. 대체로 평탄하게 살았던 내 부모는 충격에 휘청였다. 덩달아 나도 침울해졌다. 그렇게 귀하게 자란 것도 아닌데 나도 덩달아 아팠다. 열이 많이 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 방이 사라지고, 학교가 멀어지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우울함은 잔병치레로 이어졌다.
나는 당시에 바람에 덜컹거리는 문소리에도 바짝 쫄아있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경찰이 문을 두드렸고, 난 밥을 먹다 말고 나가서 나도 모르는 아버지 행방을 추궁당했다. 어느 날에는 양복은 입은 무리가 찾아와서 가구에 빨간딱지가 하나 붙이고 갔다. 영화처럼 가구마다 붙인 건 아니었다. 장롱 옆에 안 보이는 곳에 압류 리스트만 적어뒀다. 어쩌면 추심 담당 공무원이 혼자 집을 지키는 날 보고 배려한 걸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을 기억한다. 그 쓸쓸한 눈빛. 멸시나 괄시가 아니라 연민과 동정에 가까웠다. 멸시하면 발끈하며 버텨낼 수 있지만, 연민에 몰리면 저항할 수 없이 초라해진다.
난 내 데스크톱 컴퓨터 모니터에 딱지를 붙이지 않은 게 무척 고마웠다. 내 컴퓨터는 더는 내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속 게임은 할 수 있었다. 난 좁아터진 방에서 일본 추리소설을 읽었다. 당시 부모님은 매일 싸웠다. 싸우고 또 싸우고 소리 지르고 또 던지고 깨뜨렸다. 서로를 탓하는 말이 적나라하게 쏟아졌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두 마리의 맹수였다. 그때마다 난 이어폰을 끼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좇았다. 무슨 소리가 나든 신경도 안 썼다. 내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니까. 그리고 밤늦게까지 안 들어오면 그만이니까. 그땐 코르크 마개처럼 귀를 틀어막으면 나를 위한 작은 아지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가수 휘성의 1집이었다. 거의 곡소리에 가까운 울부짖는 발라드가 내 속내와 딱 맞았다. 반다나 모자를 쓰고 헤어 스타일은 레게머리에 과하게 큰 흰 티셔츠를 입은 휘성은 그 시절의 은인이다.
졸업식을 축하하는 요란한 현수막을 뒤로하고 학교를 빠져나와서 가장 가까운 중국집에 들어갔다. 큰어머니는 내게 묻지도 않고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켰다. 아파트 단지에 배달을 위주로 하는 곳이라 테이블은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사무용 책상으로 썼는지 영수증과 광고지가 잔뜩 쌓여있어서 어수선하고 비좁았다. 벽면에는 온갖 약초로 담근 술이 진열되어 있었다. 계산대 옆에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혼자 둥근 의자에 앉아서 온라인 맞고를 치고 있었다. 요리가 나오자 난 허겁지겁 탕수육을 집어 먹었다. 머리를 들지 않고 면발까지 흡수했다.
큰어머니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제 계획이 있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감이 와?" 묵묵무답. "아무튼 자네가 혼자 버텨내느라 고생이네. 우선 채무자들을 불러서 안심시키는 게 좋겠어." 묵묵무답. "파산 신고하는 건 생각해봤어?" 나에게도 귀와 눈이 있다는 걸 잊었는지 두 사람은 속 터지는 얘기를 이어 나갔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짜장면을 한 그릇 더 시켜달라고 했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대충은 알았지만 난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졸업식에 축하는커녕 훼방이나 놓으려고 온 큰어머니에게 화가 났다. 사고 치고 집을 나간 아버지는 ‘노력하는 한, 인간은 잘못을 범한다’라는 괴테의 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하는 것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점점 더 나쁜 상황에 몰려 연락도 뚝 끊겼다. 난 신기하게도 아버지와 닮았다.
짜장면을 다 먹어 치우고 탕수육까지 바닥을 드러내자 큰어머니는 백을 들고 값을 치렀다. 난 큰어머니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밖을 나섰다. 이제 고작 오후 한 시였다. 밖은 여전히 희고 쓸쓸했다. 목이 칼칼하고 열이 좀 있었다. 길 건너 학교 근처에서 아직도 애들이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삼 년간 최선을 다해 버텨냈던 곳이었다. 자주 내 뺨을 때렸던 3학년 담임은 오늘 내게 전에 없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했던 연지랑 학원가에서 떡꼬치를 먹고 근처 공원에서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던 기억. 학교생활 막바지에 말도 없이 아파트 단지를 떠난 내게 실망했던 보중이의 얼굴. 애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버티다가 학교 밖을 나설 때 보이던 노을 지는 운동장. 그렇게 한 시절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