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도벽>
어릴 적에 도벽이 있었다. 거의 매일 습관적으로 동네 상가에 들러서 슬쩍하고 뭔가 하나씩 가져왔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인가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발도 빠르고 손도 보이지 않고 눈치까지 재빨랐던 시절이었다. 주로 문방구와 동네 슈퍼가 주 타깃이었다. 늘 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애들보다 부족한 것도 아니었으니 뭔가 궁해서 한 짓은 아니다. 스릴을 즐겼을까. 사실 잘 모른다. 당시 나와 같이 도적질 했던 고환 친구 주호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미친놈처럼 보였다고 한다. 겁도 없이 이 가게 저 가게 섭렵하는 걸 보면서 내가 대도 조세형을 뒤를 잇는 도적이 될 거라고 믿었단다.
도둑의 첫걸음은 17층에 살던 동현이의 대범한 손놀림에서 비롯되었다. 동현이는 동네에서 부동산을 하는 아버지를 둔 탓에 늘 번지르르한 옷을 입고 다니던 아이였다. 그 시절에 빈폴이면 우리 동네에서는 먹어줬다. 특히 벨트까지 빈폴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녀석의 차림새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먹기도 잘 먹었는지 군살 없이 키가 크고 쾌활했다. 이 부족한 거 없는 아이의 취미가 도둑질이었다. 녀석은 겁도 없이 자기 아버지가 입점한 상가 안의 대형슈퍼와 제과점, 문구점에서 화려한 실적을 자랑했다. 녀석은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빼어난 연기력으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은 후에 방심한 틈을 타서 물건을 쓱 쓱 가방에 집어넣고 나왔다. 가방이 불룩해져서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너스레를 떨며 적재적소에 빠져나갔다. 태연하고 당당했다. 눈치를 살피다가 산통을 깨는 그런 배포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서 녀석의 별명은 트리플 엑스 라지였다.
'너 걸리면 너희 아버지한테 엄청나게 혼날 것 같은데. 동네 망신이라고 용돈 다 끊어버리는 거 아니냐." 녀석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어. 누구도 내가 훔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할 때 쓸어 담을 때 쾌감이 더 크다니까." 난 이 또라이 같은 놈 하면서 그새 녀석의 범행 수법을 배웠다. 그리고 간덩이가 작았던 나는 옆 아파트에 살았던 올백머리 범생이 주호를 공범으로 꼬드겼다. 나보다 사이즈가 작고 소심했던 주호는 처음에는 겁을 먹는 척하다가 내가 하는 걸 몇 번 보더니 도적질의 쾌감에 빠져들었다. 누가 그랬던가. 모름지기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몇 달 전 호프집에서 오백 하나 시키고 한참을 이 일로 티격태격했다. 나는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건씩 해야만 집에 갔다고 한다. '내가 그랬다고?' 주호는 이 얘기만 나오면 지도 공범이면서 자꾸만 거리를 두려고 한다. 자기는 사주를 받아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최순실이고 네가 박근혜라 이거지. 그럼 누가 더 바보인 거냐. 비겁한 새끼. 탄핵당할 놈. 녀석은 다리를 꼬고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자기는 엄연한 피해자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제 애 아빠라고 소싯적을 잊고 살다니. 하긴 당시를 떠올려보면 주호가 망을 보고 내가 학원 가방에 집어넣는 역할이었으니 내가 주동자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우린 보통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빵이나 초콜릿을 훔쳤다. 어떨 때는 분식집에서 먹튀도 했다. 문방구에 가면 샤프나 장난감을 가져왔다. 오락실에서는 수북이 쌓인 동전을 뽀렸다. 수법은 늘 같았다. 주호가 아저씨에게 말을 걸면 내가 쓱 하는 식이었다. 장물은 공평하게 나눴지만, 그때도 녀석은 자기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늘 초를 쳤다. '야 이러다가 걸리는 거 아냐. 한 군데를 너무 자주 가지 말고 옆 단지 럭키아파트 상가로 가자.' 이게 걱정하는 건지 더 도둑질을 부추기는 건지 헷갈릴 때쯤 녀석은 잊지 않고 우려와 조언을 섞은 말투로 작전계획을 수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을 해 먹었다.
친구도 없고, 말도 적고 숫기도 없던 나는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댔을까. 정신분석학으로 들어가면 리비도 운운하면서 내 결여에 관해 주야장천 떠들 수 있겠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냥 그게 너무 재밌었다. 훔친 물건을 까먹을 때가 아니라 챙겨서 유유히 빠져나가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질 때 쾌감이 엄청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천천히 걷다가 상가를 벗어나면 아파트 단지 구석 놀이터까지 부리나케 뛰었다. 미끄럼틀 근처에서 동시에 웃어젖히는 기분이 최고였다. 동현이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 동현이가 일장 연설할 때 대단해 보였던 건 당시에 우리 정도 나이면 걸려도 조금 혼나고 풀려나리라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촉법소년 제도를 그때부터 알다니 대단한 놈이었다. 맹랑하다고 해야 하나.
그땐 상가 내의 만화방에 살다시피 했다. 당시 유행하던 만화가 GTO 같은 일본 불량 학원물이었으니 영향이 좀 있었으려나. 만화책 속의 오니즈카(영길)는 다짜고짜 어른을 패고, 오토바이를 타면서 사고도 많이 치는데 늘 멀쩡히 학교에 다녔다. 우리가 슈퍼에서 군것질거리 따위 훔치는 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제멋대로였다. 일본 학생들은 다 양아치네. 근데 사실 만화책 탓으로 돌리기에는 내가 읽던 책은 만화책이 보다는 그 옆에 칸에 꽂힌 이문열의 삼국지였다. 삼국지의 세계 안에서는 도둑질 따위는 없다. 대륙의 사나이들은 명예에 죽고 사는데 문방구에서 지우개나 훔쳐서 되겠나. 그러니까 난 그냥 말 그대로 꽉 막힌 하루하루에 질식할 것만 같았기에 가장 재밌는 취미를 찾은 것이었다. 과장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냥 바보짓이었다. 이제 막 만들어진 신도시 키즈에게 도둑질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었다. 학교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학원 가면 덜 떨어진 들러리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나. 장 발장의 교훈을 느끼기에는 어느 한 번 사고도 쳐 본 적이 없는 그저 그런 학생에게 도둑질의 일탈은 꽤 짜릿했다. 나 못지않게 기도 한 번 못 펴고 빌빌대던 주호도 비슷한 심정이었겠지. 우린 신출귀몰한 도적 배역을 받고 감지덕지라고 자화자찬하며 열심히 연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위치는 역시나 우리 집 아파트 상가 초원 슈퍼였다. 상가 내에 위치한 이 작은 슈퍼는 인자한 미소를 지닌 아저씨가 늘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곳이었다. 주호는 아저씨와 어느새 친해졌고, 난 거기서 새콤달콤과 가나 초콜릿을 하나씩 훔쳐서 나오는 버릇을 들였다. 다른 데에서 훔친 것에 비하면 소소한 실적이었지만 너무 쉬우니, 잦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아저씨 대신 아주머니가 나와 계셨는데 그날 딱 걸려버렸다. 눈매가 날카로웠단 아주머니는 CCTV를 보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우린 깜짝 놀라서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고 빌었다. 아주머니는 우릴 벽으로 밀쳐 세웠고, 그간 없어진 것까지 변상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심지어 경찰까지 불러야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내 인생 첫 위기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우리 고개를 푹 숙이고 바짝 쫄아서는 머리를 얻어맞았다. 부모님을 불러야 한다면서 번호를 적어갔고 겁에 질린 주호와 나는 호통에 깜짝 놀라서는 아파트 주소까지 다 적어 바쳤다. 밤새 석고대죄하라고 했어도 군소리 없이 다 했을 거다. 그러던 중 아저씨 사장님이 나타나셨다. 면목이 없었지만 그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불쌍한 눈빛을 막 발사하면서 아저씨의 아량에 기댔다. 평소 우릴 유난히 예뻐하시던 분이었으니까. 기대대로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진정시키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두 분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저씨는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우리 나이에는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몰아세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난 계속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지옥에서 빼 달라고 천지신명과 하느님께 빌었다. 옆에 주호를 보니 하도 울어서 콧물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음 날 이 시간에 아저씨에게 다시 오라고 하셨다. 그러곤 사람들 밖으로 우릴 풀어주셨다. 죽다 살아난 주호와 나는 작전회의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도망쳤다. 그래서 다음 날 찾아갔냐고? 당연히 안 갔지. 거길 어떻게 다시 가겠나. 엄마가 콩나물을 사 오라고 할 때도 상가에 들어가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기어서 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백 원어치...라고 말끝을 흐렸는데. 청과물 가게 아저씨는 그저 웃으면서 콩나물을 가득 담아 주셨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로 다시 갈 용기는 우리에게 없었다. 그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을 뿐. 그때까지만 해도 난 기도를 참 잘하는 아이였다. 눈을 꼭 감고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실 그분을 향해 이 위기를 탈출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기도 덕택인지 한 달 가까이 걱정에 휩싸여 살던 주호와 나는 무사히 위기를 넘겼음을 알고 기뻐했다. 물론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며 상가를 숨어 다니긴 했지만, 평소처럼 문방구 앞에서 오락도 하고 슈퍼도 들락거렸다. 요즘 같아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도량과 관용이 있던 시대였다. 난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도적질을 끊었냐고. 그렇다. 사이즈가 요만했던 주호와 나는 생라면이나 부숴 먹으며 우리의 전성기를 추억하곤 했다. 그것도 서른이 훌쩍 넘은 최근까지도 그 추억을 팔면서 우린 킬킬거린다. 몇 달 전에 봤을 때 주호는 늘 망을 보는 역할만 맡은 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나 없을 때 문방구에 가서 당시에 유행하던 제도 5천을 훔쳐 나온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나랑 같이 다닐 때 말을 못 한 건 그러면 망보는 역할을 빼앗길까 봐 겁이 났다고 한다. 역시 비겁한 새끼가 맞다.
주호와 나는 현재 딱 평균치의 인생을 산다. 지금은 도둑질도 못 하니 적당히 딴 데 한눈팔면서 무료함을 달랜다. 한때 주호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문경까지 갈 정도로 끈끈한 사이였으나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보면 다행일 정도로 서로 바쁘게 산다. 녀석은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서 작은 아파트를 구해서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산다. 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낯선 일을 하며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며칠 전 대뜸 전화를 건 녀석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래서 난 되물었다. 넌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고 그런 얘기 하는 거냐? 그냥 너는 도둑질할 때처럼 재밌게 살고 있을 것 같아. 야 이 새끼야 너도 훔쳤잖아. 어디서 뒤집어씌워. 됐고. 난 지금 도둑질은커녕 몰래 술 한 잔도 못 하니까 불평 좀 그만해. 역시 반성을 모르는 놈이다.
전화를 끊고 당시에 내가 훔쳤던 카세트테이프가 생각났다. 이소은이라고 기억하시는지. 당시 고3이었던 이소은의 1집 테이프를 훔쳐 와서 집에서 들었다. 레코드점에 들어가서 날 보지도 않고 손님과 얘기를 나누던 사장님 보란 듯이 가지고 나섰다. 그녀는 전교에서도 1등을 하는데 목소리는 옥구슬이라서 김동률과 이승환에게 발탁이 되었다고 한다. 옥으로 만든 수저의 삶이다. 근데 맑고 청아한 그녀의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도둑질하고 발라드에 눈물을 흘리다니. 그땐 방구석에 모로 누워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이소은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앨범 커버를 하도 봐서 다 닳을 정도였다. 거의 찹쌀떡처럼 흰 분장을 한 이소은의 얼굴이 그려진 표지가 아직도 기억난다. 다들 아이돌 좋아할 때 이소은을 좋아하며 우쭐한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듣자 하니 이소은은 여전히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며 잘 산다고 하더라. 인자한 카페 사장님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날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속죄도 못 한 채 여기까지 와버렸다. 난 그때에 비해 얼마나 바뀌었을까. 스스로 꽤 괜찮다고 자부하며 사는 삶을 비껴가는 흠집은 또 얼마나 많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