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서 풀을 뜯는 친구들

소재 <스타벅스>

by 박민진

출장지에서 글을 쓰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츄리닝에 다리를 꼬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퇴근 후에 헬스를 하고 씻지도 않은 채 밥을 급히 먹고 과속을 하면서까지 막 온 참이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내내 화장실도 못 갈 만큼 바빴지만 더 갈급한 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아무렴 스타벅스는 내 마음처럼 화장실마저 깨끗하니까. 여긴 분명히 낯선 도시지만 스타벅스라서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니 일을 하든 글을 쓰든 스타벅스를 찾을 수밖에 없나 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번 출장에서 호텔 예약을 걸 때도 스타벅스 근처로 검색했다. 매장에 도착해서 늘 하던 짓을 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승모근에 힘을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스타벅스에 잠시 들렀다. 밤은 칠흑 같았고 낯선 침대는 날 자꾸만 심란하게 찔러댔다. 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아침에 일어나는데 애를 먹었다. 카페인 수혈이 필요한 참혹한 아침을 맞이했다. 운전을 시작한 지 오 분도 되지 않아서 카카오맵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스타벅스 위치를 화면에 띄웠다. 난 빅데이터라는 놈에게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불쾌했지만, 병약한 공복 아침이라서 순순이 내비게이션으로 스타벅스 매장을 찍었다. 익숙한 로고에 환한 조명이 날 반기자 기분이 나아졌다. 시계를 보니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삼십 분 정도가 비었다. 사이렌 오더로 '오늘의 커피'를 숏 사이즈를 시키고 포털 뉴스를 띄웠다. 3,400원이 차감되고 주문이 들어가자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날 위해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베란다 블랜드'라는 라틴 아메리카 원두로 로스팅한 커피였다.


스타벅스에서는 거의 매번 '오늘의 커피'를 시킨다. 스타벅스 메뉴 중에서 가장 싼 음료면서, 매일 원두가 달라지는 재미가 있어 애용한다.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아메리카노와 다르게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상당해서 제조 시간도 꽤 길다.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커피가 만들어진다는 착각이 든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에 노트북을 펴고 자리를 확보한다. 창가랑 조금 거리가 있으면서 창밖이 보여야 한다. 테이블은 널찍해야 하고 등받이가 곧은 의자를 선호한다. 때마침 저 구석자리가 보여 난 성큼성큼 다가섰다. 난 초등학교 때 책상 한가운데 가방을 놓고 짝꿍과 자리싸움을 하던 것처럼 붐비는 카페에서 조금이라도 공간을 점유하려고 애쓴다. 옆자리에 외투와 가방도 턱 하니 걸쳐놓고 다리를 꼰다. 가장 싼 음료를 주문하고 가장 넓은 자리를 확보하는 난 진상 고객일까. 그렇다고 눈치를 보진 않는다. 난 골드회원이니까 주눅 들 것 없다.


커피를 한 잔 들이켜자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긴 유럽의 이름 모를 거리를 여행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자극이 고파서 동유럽의 몇몇 도시를 떠돌아다녔지만 오후만 되면 곤죽이 되어서는 녹색 간판을 찾아 헤맸다. <경제학 콘서트>를 쓴 영국 작가 톰 하포드에 따르면, 스타벅스의 가장 뛰어난 점은 부동산이라고 한다. 지리적 조건에서 우위를 점하니 실패할 수가 없다나. 난 동의하지는 않는다. 유럽 도시에서 사람이 붐빌만한 거리에는 빠짐없이 스타벅스가 있지만, 그건 내가 스타벅스 로고에 각별히 반응하는 종자라는 이유가 더 크다. 풀을 뜯는 고라니처럼 스타벅스만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곧추 세우고 달음박질친다. 종일 관광지에서 낯선 정보를 유입해서 피곤해도 스타벅스에 앉으면 다 괜찮아지니 말 다했지. 스타벅스는 내게 바티칸 시국처럼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자 모든 게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는 허영의 공간이다.


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백색 소음 안에서 글쓰기를 좋아한다. 나처럼 허세가 있는 사람은 스타벅스에서 결코 딴짓을 할 수 없다. 가령 유튜브로 운동 영상을 본다거나 카카오톡 연예 뉴스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공간을 확보했는데 낭비하고 싶지 않달까. 있어 보이는 책을 표지가 다 보이게 펼쳐놓고, 꽤나 고심하는 척 글을 쓸 때 대도시의 속스러운 사치는 무르익는다. 커피도 맛있고 정리할 원고까지 산적하니 유능한 도시 남자 안 부럽다. 어쩌면 이런 기분이 지난 십 년 간 나를 지켜줬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이리저리 변해도 내가 만든 패턴은 늘 균일하게 돌아간다는 위안을 몇 모금 마시며 단전부터 끌어 오른 한숨을 내쉬었다. 스타벅스에 앉아서 어디 가서 털어놓기도 무서운 속사정까지 모두 글로 적으면서 난 작가가 되었다. 아니 작가라고 우길 수 있었다.


스타벅스 매장엔 나 말고도 뭔가에 열중한 사람이 여럿 보였다. 테이블 옆에 올려놓은 커피잔이 무색하게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하는 분위기다. 학생으로 보이는 공시생,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음을 찾는 넥타이족, 소설책에 푹 빠진 나이 지긋한 노부인까지 다 제각각으로 열심히 한다. 난 잠시 쉬며 단단하게 굳은 경추를 주무르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구석 자리에 앉은 늙수그레한 남자가 낸 눈길을 끌었다. 십 년은 넘게 쓴 것 같은 구형 레노보 노트북으로 뭔가를 적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잠시 훔쳐보니 한숨을 푹푹 내쉬며 허공을 응시하는 게 분명 나랑 비슷한 종자였다. 주의가 산만할 때 옆 사람을 빤히 보는 버릇도 나랑 똑 닮았다. 자세히 보니 노트북 옆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놓여있었다. 부모에게 학대당하고, 평생을 병약하게 살다가 할복으로 삶을 마감한 미친 작가의 소설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어서 가면을 쓰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다는 병적인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저 남자 심상치가 않군. 그 옆에 놓인 두툼한 노트에는 뭘 적었는지 글씨가 빼곡했다. 표정만큼은 존스홉킨스대 의과대학 연구원처럼 심각하지 그지없었다. 저 양반은 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그의 옆에는 미시마 유키오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음료인 5,300원짜리 자몽허니블랙티가 놓여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는 월급을 모아 적령기에 식을 올리고 직장생활에 전념하며 적금을 붓고 아이를 둘쯤 낳는 삶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친지들의 결혼 타령도 이제 멎었고, 세간의 말에도 콧방귀를 뀔 만큼 삐뚤어진 지 오래다. 그는 살짝 비껴간 느낌으로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면서 세상 다 아는 척하길 즐긴다. 그는 미끄러진 게 아니라 살짝 티가 안 날 정도로 보폭을 달리하며 걷고 있기에 자뭇 당당하다. 그걸 아무도 몰라주니 문제지만, 현재로선 아무리 주판을 튕기며 계산을 때려봤자 엉뚱한 값이 나올 뿐이다. 자신 하나쯤 궤도를 이탈해도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자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는 흡사 고라니처럼 풀숲 아래에 숨어 티 안 나게 도망 다니며 살 것이다. 지난주에 전화를 건 어머니는 결혼은 안 하냐고 물었지만, 그는 어머니에게 행복하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렇게 모진 사람이었다. 이처럼 소용없는 그에게 한산한 스타벅스는 조용히 풀을 뜯기에 적당한 은닉처다. 풀이 좀 비싸서 문제지 주위를 둘러보면 그와 비슷한 고라니가 수두룩 벅적하다. 얼음만 달그락거리는 자몽 찌꺼기를 마시며 그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난 올해 내 곁을 변함없이 지켜준 게 뭘까 생각하다가 스타벅스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고 늘 친절하고 밝은 미소로 날 반겨준 미국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지키긴 뭘 지켜.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난 스타벅스에 알게 모르게 빚을 지고 있다. 물론 한 달에 이십만 원 가까이 지불하지만, 매일 퇴근을 스타벅스로 하면서 난 나름대로 리추얼을 만들 수 있었다. 적당한 독서와 적당한 사유 적당한 글과 적당한 딴짓. 그러니 지불 이상으로 뽕을 뽑고 있는 셈이다. 난 거의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처럼 스타벅스에 가서 한 번 앉으면 세 시간은 족히 보내고 매장을 나선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세속 도시의 상징인 스타벅스 매장은 내 창작의 산파이자, 집보다 마음이 편한 안식처와 같다. 칼 세이건의 표현대로라면 직장과 삶은 카오스에 가깝다. 혼돈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소돔이다. 그에 반해 스타벅스는 맛있는 커피와 편한 의자 그리고 사시사철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는 코스모스에 가깝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처럼 늘 평균 이상의 안식을 제공한다. 난 스타벅스가 구성한 질서 안에서 누구보다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글 역시 자연스럽게 세속적이며 인공적인 안식이다. 직원들의 말투와 친절함까지 기성품처럼 매끈한 이곳에서 벌어질 만한 사건을 늘어놓는다.


솔직히 스타벅스 커피는 맛이 없다. 그렇지만 그게 쌀밥처럼 익숙해졌다는 게 현상의 핵심이다. 동네마다 버거 맛은 달라도 스타벅스 커피 맛은 똑같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건 동네마다 가서 버거는 먹지 않아도 스타벅스 커피는 시킨다는 소리니까. 어디에서나 쉽게 권태를 느끼던 나라는 사람도 어느 지점을 가나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보장하는 스타벅스는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평균에 집착하지 않나. 중간만 한다는 위안은 스타벅스에서 빛을 발한다. 서점에서는 조금이라도 새로운 책을 찾아 매대를 헤매지만, 독서만큼은 아무런 변수가 없는 균일한 공간을 찾는 아이러니. 내 글쓰기는 사실상 스타벅스 문학에 가깝다. 십 년이 훌쩍 넘도록 스타벅스 원두가 내 방광과 요도를 적셨으니, 내 문화적 자양분으로 추측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내가 출간한 두 권의 책도 거진 다 스타벅스에서 집필했고, 앞으로도 퇴근 후의 세 시간은 이곳에서 보낼 생각이다. 그러니까 스타벅스는 나를 지켜준 올해의 공간이자, 내가 가장 밑바닥일 때 내 등을 두드리며 안색을 살펴준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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