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공간

소재 <힘>

by 박민진

대학에서 도서관 일을 하다가 친해진 선배가 있다. 도서관 근로장학생을 하면 책과 가까워질 거란 기대가 있었다. 도도한 표정으로 반납 책을 엑셀에서 정리하는 사서의 모습에 매혹된 탓이다. 내 기대는 물리적으로는 이뤄졌지만, 심정적으로는 책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읽지도 않고 빌려 가서는 죄다 반납기에 쏟아 넣고 사라지는 무뢰한이 너무 많았다. 그 책 무더기를 정리하는 게 내 일이었는데, 무게도 무게지만 독한 먼지와 종이에 손을 베는 일이 반복되자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성준 선배는 일을 오래 해서인지 익숙해 보였고, 아주 잠깐의 틈을 활용해서 신간을 살피며 대여할 책까지 챙겨 넣을 만큼 일을 즐겼다. 나도 그를 따라서 한 달을 버텨내면서 점차 책의 표지와 제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생각보다 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시 도서관 책 대여 순위를 관내 1층 게시판에 붙여놓곤 했는데, 보나 마나 오쿠다 히데오와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와 데일 카네기가 가장 위에 있었다. 지겨운 김진명과 댄 브라운은 물론 이름마저 닭살이 돋는 기욤 미소도 빠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순위는 그야말로 누구나 다 읽는 책, 있어 보이는 책만 살아남는 리스트였다. 특징을 더 꼽자면, 오래된 고전과 자기계발서를 위시한 실용서가 대체로 잘 나갔고 고전마저도 순수한 독서의 기쁨보다는 취업을 위한 교양을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난 세대와 시대를 개탄하면서 나만큼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겠다며 선배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농담 따먹기가 피로를 덜어줄 무렵 형과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한 번쯤은 해야 하는 자리였다. 난 어색한 사이도 괜찮다고 느꼈지만, 자꾸 도서관 직원들이 너희 같이 밥은 먹었냐느니 왜 그렇게 어색하냐느니 핀잔을 주었다. 이러니 선배는 밥을 한 번쯤은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난 비가 그친 도서관을 쫄래쫄래 나서면서 당시 우리 지갑이 견뎌낼 수 있을법한 뒷고기 식당으로 향했다. 고기는 2인분만 시켜도 된장찌개와 공깃밥 두 개, 대형 계란찜에 쌈 채소로 배를 잔뜩 채우기에 좋은 곳이었다. 난 속으로 열심히 2만 원이 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상추를 세 개씩 씹어먹었다.


난 당시에 현실을 직시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상태를 맛보면서 몸에서 의식을 분리하는 놀이를 즐겼다. 마음만 먹으면 공상 속에서 살 수 있었다. 일상이 지루하니 어떻게든 딴청을 피워야 했다.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골치를 썩히는 산적한 문제를 다 모른 척하고 소설 속으로 도피했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기숙사로 가서 게임을 했다. 이러다 보면 삼시 세끼 다 먹여주는 군대가 날 불러주겠지. 마치 재수감을 기다리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실패의 냄새를 캠퍼스 곳곳에 묻히고 다녔다. 당시에도 난 쉴 새 없이 책을 읽으면서도 독서가 내게 뭔가를 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요즘도 내가 소설을 읽고 있으면 독서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고 물어보는 분이 계셨는데,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막무가내로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었지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 아는 눈치여서 말문이 막혔다. 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내게 소설은 그저 하나의 오락일 뿐이고, 어떤 영향이 깊숙이 자리할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물며 그마저도 금세 잊힌다고 말했다. 그걸 말로 하긴 어려운 노릇이니까. 무엇보다 독서를 과장하면 뻥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독서의 감상이라는 것은 내밀하고 사적이며 뭐로 보든 간에 입으로 말해지는 순간 시시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난 뭉클하게 했던 느낌을 다시 되찾기 위해 다른 책을 골라서 즐길 뿐이다. 말하고 나니 독서는 참 별거 없는 오락거리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내 잠까지 방해하는 독후의 상념마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 없어질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 어디 술자리 가서 아는 척 떠들려고 해도 기억에서 다 사라질 테니까. 그저 내겐 아침에 늘어지게 자고 학식을 때린 후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도서관 원목 탁자에 책을 올려놓는 시간이 확실한 행복이라고 일러뒀다. 일을 다 끝내고 야밤에 기숙사에서 소설을 읽다가 잘 수 있다면 조금 고된 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책을 읽고 뭔가가 남는다면 아마도 세포 안에 빗살무늬라도 새겨지지 않았을까. 조금은 다정하고 섬세한 뭔가 말이다.


아마도 이런 개똥철학을 성준이 형한테 떠들었던 것 같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던 것 같다. 입대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라서 그랬나. 형은 자꾸 군대만 가면 책을 잔뜩 읽을 수 있다고 속 모르는 소리를 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커녕 한 달 후에 있을 계절학기 시험도 내팽개치고 책만 보는 내게 퍽 괜찮은 위로였는지 난 형이 좋아졌다. 선배로 불렀던 자를 호형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이제 막역한 사이인 척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할 텐데, 난 도무지 그럴 맘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직행해야 하는데 선배가 나타나면 고개를 들고 억지웃음이라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에 단짝 친구였던 여자애한테 차인 터라 난 아무하고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이라 뇌가 마비됐는지 오르지 못할 나무에 시냅스를 잔뜩 보내서 내 팔자를 꼬았다. 그래 한 달만 버티면 되니까. 방학이라 텅 빈 캠퍼스에서 난 도서관 일을 하면서 군대로 슝 사라지리라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근데 형을 만난 것이다. 내 얘기를 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나타나자 내 얼굴은 한결 나아졌다. 형은 내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생각보다 자신과 비슷하다며 놀랍다고 말해줬다. 그건 아마도 그의 친화력일 텐데, 마치 난 오직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은 것 같은 착각에 감동하였다. 육군 병장 예비역에 전기공학도이면서도 연애 소설을 읽고 개봉 영화 프리뷰를 살피는 그는 아마도 내가 어여삐 여기는 인간상이었다. 나는 몇 년 후에 스토너라는 소설을 읽고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그 좁아터진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형은 식사가 끝나고 조금이라도 더 배를 채우려고 후식까지 식당 자판기를 이용하려는 내게 차를 마시러 자기 자취방에 가자고 청했다. 어색한 손짓으로 그의 뒤편으로 펼쳐지는 어두컴컴한 길로 안내했다. 난 기꺼이 응했다. 세븐일레븐에서 먹지도 못하는 술을 좀 샀다. 내겐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그의 뒤를 원룸이 즐비한 동네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빌라 4층에 이르니 아주 좁고 짧은 복도 복도가 나왔다. 철문을 열어 작디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좁은 집이었지만 세로로 긴 구조였다. 천장이 낮고 어둑한 그 방에는 소파와 겸용인 낮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 앞에는 두 명 정도는 앉을 수 있는 식탁 겸용 탁자가 있고,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폐기한 의자가 앞에 놓여있었다. 한쪽 벽에는 책이 바닥에 잔뜩 쌓여있었다. 침대 옆에도 책이 나뒹굴었다. 탁자 위에는 메모지가 흩어져 있었다. “집이 좀 작지?” 형은 바닥에 놓여 있는 책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난 공간이 별 필요가 없거든. 거의 잠만 자다 보니까.” 그의 말과 달리 탁자 위에는 외출 전에 읽던 책과 낡은 노트북이 보였다. 냉장고 옆에는 뜬금 없이 아령 두 개와 문틀 턱걸이 기구가 있었다. 나는 그의 방을 둘러보면서 성급하게도 완전한 뭔가를 떠올렸다. 늘 지속할 수 있는 세상. 세상과 분리된 작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같은 거. 내게 몇 년 후의 미래라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완전한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세상은 너무 멀게 보였지만, 그는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세상도 있음을 보여줬다. 설핏 보면 누추한 곳이었지만, 내겐 거의 완전한 공간이었다. 난 무심한 듯 말했다. “중요한 건 다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