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몸>
헬스장에서 1시간 넘게 운동을 하고, 프로틴 가루를 물에 타 먹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스타벅스에 왔다. 매일 반복하는 패턴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운동은 하체를 했다. 종아리부터 대퇴사두근과 둔근까지 땀을 철철 흘리면서 자극했다. 초과 회복이란 근육이 파열한 자리에 근 섬유가 자라나면서 아무는 과정을 말한다. 어릴 적에 지점토로 만든 공룡이 건조한 공기와 햇볕에 갈라지면 거기에 점토를 덧붙이곤 했다. 난 운동을 하면서 티라노 사우르스의 거대한 허벅지에 초콜릿 맛 프로틴 알갱이가 들러붙는 광경을 상상한다. 더 찢어야 해. 더 아파야 해. 통증이 근육이야. 아픔이 운동이야. 표정은 비장해지고 복식 호흡에 따른 숨소리가 맨망스러워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산다.
헬스장 사람들은 다 친근하다. 멋지고 육감적이다. 그들의 움직임과 육체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일상의 마법이다. 난 글을 쓰지만 게으르게도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언어가 제 기능이 도달하지 못하고 절망하는 순간, 정확한 동작의 근육들은 열띤 분위기로 무료한 하루를 압도한다. 끈끈한 육체 간의 움직임, 감정의 보폭이 출렁이는 기합 소리. 살을 도려내고, 찌르고 짓이기는 듯한 고통의 신음. 그들을 보는 건 확실한 자극이자 관능이다.
샤워를 하고 헬스장 거울에 내 몸을 비춰봤다. 아직 사람이 없을 시간이라서 그런지 체중계에도 오르고 이리저리 몸을 비춰봤다. 조명이 괜찮아서 배에 뭐라도 보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난 몸을 숭배하는 것 같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이 절대적으로 내 기분을 좌우한다고 느낀다. 가시적이고 정직한 몸뚱이는 운동을 하고 났을 때 가장 예뻐 보인다. 그러니까 난 거울에 내 몸을 만족스럽게 비추기 위해 운동을 한다. 이 말은 즉슨 조금만 방심해도 거울은 나를 비난할 거라는 의미다. 몸이 무너지면 각양각색의 불안과 실망이 찾아온다. 친구는 뭘 위해 운동을 하냐고 물어보지만, 정확하게 그것을 짚어낼 순 없다. 몸은 너무 다양한 기쁨과 슬픔을 자아내니 하나를 콕 짚어낼 수 없다. 확실한 건 하나다. 몸은 몸은 에두르는 법이 없고 늘 김구라식 화법이라서 긴장을 타야 한다.
난 유독 엉덩이와 허벅지 굵기에 연연한다. 이온 음료 광고와 같은 호승심을 자아내는 부위다. 거울 속에서 허벅지와 엉덩이가 늠름해 보이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 몸에는 주둥이라도 달린 것처럼 말이 쏟아진다. 오늘 출장을 가서 피로함에도 체육관에 와서 몸을 굴렸으니 합격! 주말에 마라탕에 탕수육을 먹을 자격 획득! 몸의 치하에 난 감격해서 통증을 감내하며 쇳덩이를 들어낸다.
오늘도 그렇게 초과적인 회복을 기대하며 운동을 하고 체육관을 나오니 다리가 다 풀릴 지경이다. 그래도 이 맛에 운동을 한다. 계단을 오를 때 다리가 비틀거리니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대로 했다는 생각에 풀린 눈에 세레나데가 흘렀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책을 읽어도 이 정도 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몸만이 내게 줄 수 있는 특권이다. 잠시 사무실에 들르니 퇴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짜장면을 시켜먹는 녀석들이 보인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지방은 고지혈증을 비롯한 혈관계 질환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지금 짜장이 입에 들어가냐 김 부장. 웃기는 짜장이네. 난 우월감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며 맛있게들 드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운동은 내게 유일한 승리의 전적을 남겼구나. 올해 가을에 하는 마라톤 대회를 예매했다. 풀 코스를 뛰고 지쳐 쓰러지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얼마나 짜릿할까. 그러고 나서 고기를 먹으면 붉은 돼지의 등허리 살이 내 근육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건 비정상적인 지방 아닌 매우 합당한 단백질이 될 것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프로틴 음료가 유독 맛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탄산수 한 통을 다 비웠다. 오늘 저녁으로 먹을 구내식당에는 오삼불고기가 나왔는데, 식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밥을 최대한 적게 펐고 고기도 최대한 양념을 덜어서 먹었다. 심심한 숙주나물과 오이김치도 잔뜩 펐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된장국은 우거지만 건져 먹었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생각할 테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거다. 버거킹에서 와퍼에 패티 추가까지 하면서 제로 콜라를 먹는 것도 노력은 노력이다. 몇 년 전에 밥 맛 떨어지는 일이 생겨서 살이 쭉쭉 빠졌던 적이 있다. 삶이 즐겁지 않으니 도무지 헬스장에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음고생을 하니 체중계도 응답을 했다. 근육도 질세라 쭉쭉 빠져나갔다. 운동과 식욕은 오직 몸의 문제라고만 여겼는데 처음으로 몸이 마음과 한통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운동과 기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처럼 전후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삶에 얼마나 깊은 절망과 슬픔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몸과 마음이 서로 미루지 않고 짊어지며 버텨나갈 것이다. 어느 쪽도 무너질 생각이 없다.
시원한 카페 1층 널찍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신발을 살짝 벗어서 발의 열기를 식혔다. 사이렌 오더로 오늘의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폈다. 몸이 노곤하지만 할게 수두룩했다. 군것질하지 않고 오늘 할 일만 딱 끝내고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케이크나 빵은 절대 먹지 말아야지. 근데 왜 가방에서 떡이 나오냐. 이거 무슨 떡이더라.
아까 퇴근하기 전에 보고서를 쓰는데 잘 모르는 한 직원이 결혼을 했다고 떡 선물을 가져왔다. '저 결혼해서 선물을 가져왔어요.' '아 축하드려요. 결혼하셨는지도 몰랐네요. 잘 먹겠습니다' '제가 회사 게시판에 결혼 소식 올려놨는데, 못 보셨나요?' 약간 상기된 목소리에 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 제가 경조사 게시판을 매번 보는 건 아니라서요.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떡 잘 먹을게요.' 난 눈도 못 마주치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경조사 떡 전문이라고 적힌 포장지를 읽었다. 그가 사무실 문밖으로 나서자 부장은 불평을 해댔다. '아니 무슨 청첩장도 안 주고 떡만 돌리고 그러냐 쟤는.' 곱게 먹으면 좋을 텐데. 그는 쓸데없이 질문을 해댔다. 누구랑 결혼을 했는지, 조직 내부 사람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무도 몰랐다. 저 사람이 누구였지. 나랑 본 적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저 건너편 자리에서 그가 김 아무개 직원이라는 말이 들렸다. '와 저분 살 엄청 뺐네요. 이제 뼈만 남았네.' 김 아무개? 나랑 맨날 헬스장에서 마주치는 그이? 알고 보니 결혼한다고 살을 하도 많이 빼서 거의 못 알아볼 정도였던 것이다. 독하다 독해.
난 독한 그를 생각하며 떡을 다 먹어치웠다. 뭐가 그렇게 맛있는지. 그러고 보니 떡을 먹은 지도 한참이었다. 어렸을 적엔 엄마가 시장에서 인절미 한 팩을 사 오면 가루까지 털어서 먹곤 했는데, 엄마가 내 삶에서 드물어지니 떡과도 멀어졌다. 가래떡을 구워 먹는 일도 없어졌고, 명절에 송편을 먹지도 않는다. 떡은 체중 관리에도 별로고,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아서 따로 사 먹을 일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탄수화물을 점점 더 죄악시하는 내 식성 탓이다. 커피와 떡이라 괜찮은걸. 커피도 달큼하게 맛있어서 좋았다. 무슨 원두인지 확인하니 수프리모다. 에티오피아의 해발 1600미터 고산지대에서 딴 원두를 여기 한국의 이 작은 도시에서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과 같은 일이다. 고급 원두로 만든 커피는 종일 지끈거렸던 내 스트레스를 잠재워냈다. 교감신경과 집중력을 항진하는 진한 커피는 내가 휴식할 때마다 내 몸을 버티게끔 한다. 근육통도 잠잠해지는 게 느껴진다. 종일 일하고 운동까지 열띠게 하고도 키보드를 붙들 수 있는 건 다 이 카페인 때문 아닌가. 마음이 맨송맨송해지는 야밤이라 더 배가 고파졌다. 몸이 떡이 되어서 그런지, 소파에 누워서 떡을 먹는 게 다른 무엇보다 쉬운 일이라서 그런지, 오늘 마음이 떡이 될 만큼 가라앉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니체는 말했다, 어떠한 심오한 철학보다 더 큰 지혜가 육체에 담겨 있다고. 우리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움직이는 일뿐이라고.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아 물 한잔 마시고, 주변 공기를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는 것이 내겐 유일한 확신이다. 이 시간이 없다면 하루는 부유하는 물처럼 썩은 내만 가득한 곳이 된다. 아득한 형광등 불빛과 샤워를 끝내고, 허겁지겁 밖 공기를 찾아 한 숨 들이마실 저녁 공기를 상상하는 것. 탈진한 상태를 즐기면서, 나 자신의 몸은 물론 상대의 몸과도 완벽하게 호응하는 그 순간이 있다. 난 무한대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 있는 육체의 엄연한 존재감에 괜스레 몸을 떤다. 난 이 글을 쓰며 아름다운 운동을 떠올렸다. 손흥민의 넓적다리와 르브론 제임스의 길쭉한 팔. 황철순 선수의 흉부와 이철승 선수의 대퇴사두근도. 육체 간의 느낌은 언어로 형언하기 어렵고, 그 느낌을 말하는 순간 소멸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라면, 말로 뭉개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안타까움에 난 이렇게 너저분한 글을 쓰고야 말았다. 몸을 향한 애틋함을 글로 풀어보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