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에서 일정을 끝내고 잠시 쉬기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스타벅스를 찾았지만 잘 안 보여서 내가 싫어하는 인스타그램에나 나올법한 예쁘장한 카페로 향했다. 사장님의 앞치마부터 좌석 구석구석이 다 깨끗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청결하니 싫어하기 힘들었다. 추잡한 도시에서 깨끗한 곳은 해방이다. 카페가 왜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간다. 내 방보다 깨끗하니 말 다했지. 이런 공간을 다들 좋아하는데 나만 싫어하고 싶은 건 취향이 아닌 강박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서 깨끗하다는 건 매혹 아닌가. 깨끗해야 무릇 섹시하다. 인공적으로 느껴질 만큼 매끈한 가구들 사이에 앉아서 난 유튜브를 봤다. 다리를 꼬고 발을 까닥까닥하면서 몸을 늘어뜨렸다. 깨끗하지 못한 자가 즐비한 저녁 뉴스였다. 그래 이게 리얼이지.
커피를 시켰더니 아이스로 나왔다. 난 분명히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그랬는데. 사장님은 요즘 다 아이스를 마셔서 아메리카노 달라고 하면 무조건 차게 준다고 했다. 찬 커피를 마시고는 쉴 수가 없지. 난 뜨거운 커피로 다시 받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받고 나니 이게 행복이지 싶었다. 아 행복 별거 없다. 소소하게 만족하면서 살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힘들게 사냐. 몇 년 전 뉴스에서 노량진 학원가에서 어떤 수험생이 옆자리 학생에게 매일 커피를 들고 오는 사치를 부리는 걸 지적하는 쪽지를 남긴 걸 본 적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지적질이었지만 그걸 굳이 지적하려고 했던 학생을 생각해보니 짠했다. 1,500원짜리 빽다방 커피도 사치이니 제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는 거 아닌가. 갑자기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다. 난 스타벅스 커피 정도는 매일 먹어야 할 만큼 소소하지 못하니까. 사치가 좀 필요하니까.
날이 어두워지던 참이었지만 내리 세 시간을 운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 이상하게 한 시간만 넘게 운전하면 졸렸다. 그럼 졸음쉼터에 가서 시체처럼 뻗은 사람들과 잠이 들어야 한다. 며칠 전에는 꿈에서 졸음쉼터에서 자는 나를 보았다. 한참 달게 자는데 북한에서 미사일을 쏴서 무방비상태로 죽는 꿈이었다. 다른 차들은 쌩쌩 달려서 미사일을 피해 달아나는데, 졸음쉼터 사람들은 쉬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무덤을 파야만 했다. 두 시간 회의를 위해 왕복 여섯 시간 운전하니 안 졸릴 수가 있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창밖 요란한 네온사인 아래 드문드문 비틀거리는 사람이 보였다. 초저녁부터 술을 자셨네. 팔자 좋네. 근처 오피스텔 건물은 벌집처럼 빼곡했는데 층마다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다 불이 커져 있었다. 저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들 유튜브 보다가 자겠지. 세탁기 위에 가스레인지, 신발장 옆에 옷장이 있겠지. 뻔하다 뻔해. 내 친구 지우도 공무원을 하면서 오피스텔에 산다. 주말부부를 하면서 잠만 잔다고 했다. 녀석은 고시 공부를 할 땐 고시원에 살기도 했다. 녀석은 고시원 방이 관속 같다고 했다. 벽이 쿵쿵 울리면 누군가 관을 두드리면서 자신의 생사를 확인하는 기분이란다. 그래서 생존 신고차 힘껏 쿵쿵 치며 응수했단다. 마치 모스부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쿵쿵쿵. 난 그 얘길 듣고 실컷 웃었는데 녀석의 눈이 슬퍼 보여서 나도 계속 웃을 순 없었다.
4년간 노량진 고시원에서 버텼던 지우는 이런 말도 했다. 매일 인터넷 강의를 듣고, 아침부터 줄을 서서 선생 말을 목 빠지라 듣고 있노라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고. 발을 디딜 틈 없이 빼곡한 강의실에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기도 버겁다고. 녀석은 곱창을 격렬하게 씹으며 아이작 아시모프 소설 속 사이보그가 된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고시원 쪽방은 머리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창문뿐이라 공상이 깃들 리 없었다. 그래서 지우는 매일 밤 블로그에 아무 글이나 싸질렀다. 녀석은 실제로 글을 배설한다고 즐겨 말했다. 정치 얘기, 여자 얘기, 사회 얘기, 공무원 얘기, 고향 얘기, 옛날 친구 얘기, 부동산 얘기, 주식 얘기, 언젠가는 일시불로 살 차 얘기. 녀석은 얘깃거리가 정말 많았다. 어떻게 참고 온종일 공부하냐고 물었더니, 자기 전에 싸지르는 시간만 기다린다고 했다. 시험공부를 하면 글쓰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나. 하긴 매일 강의로 받아먹기만 하니 배출도 필요할 거다. 지우는 그렇게 매일 매시간 기계처럼 줄줄 암기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잊지 않았다. 난 녀석이 올린 글을 주말에 몰아 읽으면서 킥킥거렸다. 신랄하고 맹렬하며 독창적인 불평이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저런 떠버리가 글은 안 쓰고 공무원이나 하려고 한다는 데 있었다. 죄다 공무원 하면 스탠딩 코미디 각본이나 명랑 소설은 누가 쓰나. 난 녀석에게 4년간 때마다 곱창을 대접했는데, 그건 구독료이기도 했다.
녀석은 언젠가 도시에서 유머가 사라지면 도시는 본연의 낭만을 빼앗기고 기능 위주로 돌아간다는 글을 써서 날 놀라게 했다. 네가 이렇게 착한 생각을 한다고? 나는 놀리듯이 말했지만 산뜻하고 기뻐 몇몇 문장을 곱씹었다.
“그래서 유머가 없는 도시란 게 네게 뭘 의미하는데?”
난 곱창을 씹으면서 무심한 듯 물었다.
“알코올과 카페인으로 무차별적인 성욕과 식욕을 버텨내는 좀비가 되는 거지.”
“누가 그렇다는 건대?”
"다 그렇더라고. 나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
난 일을 하다가도 녀석과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순간 그런 대화야말로 매일같이 읽는 책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날 꾀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담처럼 가볍고 날렵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난 속된 도시를 좋아하는데, 그 속됨에 속하기는 싫은 거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여기서 수업을 듣고 합격 수기나 읽고 있으면 그럴 가망은 없다고 봐야지. 너도 마찬가지고.”
지우는 이제 한 소도시 공무원이 되어 구내식당을 다닌다. 고시원을 졸업하고 좀 더 넓고 쾌적한 오피스텔로 갔다. 이젠 노량진을 잊고 살지만, 노량진에 살 때보다는 재미없어졌다. 이제는 글도 안 쓰고, 당시 쓴 글도 모두 지워버렸다. 그게 부끄럽다고 했다. 하지만 난 녀석의 글을 잊지 않는다. 난 그때 그 시절 녀석만 좋아한다. 할 말이 많았던 녀석이야말로 내 친구였다. 지금은 친구로 보기 어렵다. 지루하고 사무적인 김 아무개 씨는 내 친구 안 같다. 장승배기 근처 녀석의 고시방과 매일 입던 남색 아디다스 츄리닝이 아른거린다. 요즘 녀석은 그토록 원했던 생각이란 걸 하고 살까. 서점에서 신간 소설을 사서 읽고 술자리에선 족집게 강사 말에 심취했던 그 시절을 떠벌일까. 톡을 한번 해봐야겠다.
지이잉. 금방 답이 왔다. 그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워했다. 결혼하는 건가. 누구 돌아가셨나. 무슨 일 있나. 따져 묻더니 안심하고는 회식 자리라고 했다. 그랬다. 지우는 내가 어디서 살고 무슨 글을 쓰는지 전혀 몰랐다. 나도 녀석을 몰랐다. 몰라도 괜찮았다. 인스타그램 속보다는 조금 처진 느낌이었다. 재기와 익살은 그래도 죽지 않았네. 난 녀석에게 요즘도 글 같은 거 쓰냐고 물었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녀석은 특유의 말투로 말했다.
“이제 글 쓸 시간은 없지. 책은 가끔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봐. 진짜 재미없는 책도 읽어. 계속 뭔가 시험이 있잖아. 근데 책만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진짜 공부 안 하고 싶다”
지우와 달리 나는 이제야 공부하려 한다. 독서는 이제 공부보다는 즐거운 습관에 가깝지만, 공부라고도 생각하면 으쓱해진다. 나는 나의 색을 드러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분주히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글에 나만 적을 수 있는 표식은 없었다. 나는 그저 별다른 기준 없이 쓰는 양을 한 권 한 권 늘려가는 끈기를 몸에 익혔을 뿐이다. 그게 그때와 다른 내 모습이다.
요즘엔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글을 쓴다. 늦은 저녁 침대에 기대서 뭐라도 적는다. 노트북을 펴고 문장을 이어 나가다 보면 기분이 나아지고 누추한 세간도 스탠드 빛을 받아서 어여삐 뵌다. 내가 아는 수많은 유명 작가들도 퇴근 후에 이런 키친테이블 노블로 생계를 꾸렸다. 일찍이 잠자리에 든 가족 몰래 차를 끓이고 식탁에 앉아 뭔가를 적으며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그들처럼 나도 잘 쓰고 싶다. 지우처럼 웃기게 쓰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이 예전처럼 신나는 모험이 아니라 그저 내가 늘 하는 일이고, 이 일로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일 정도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밤을 과장하고 싶지 않다.
이제 더는 일기를 쓰진 않는다. 한때 정말 열심히 쓰던 시기도 있었지만, 어이없이 쫑났다. 몇 해 전에 십 년 넘게 쓰던 일기장을 지하철 짐칸에 두고 내렸다. 역무원에게 간청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걸 누가 가져간단 말인가. 그 찌질한 투정을 누가 보관해준단 말인가. 난 거의 난동에 가깝게 지하철 직원들에게 따져 물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냐고. 억지를 부려봤다. 곁을 떠나보내는 푸닥거리였다. 처음에는 일기장이 사라진 게 팔 하나가 부러진 통증이었다. 사랑니를 처음 뺏을 때 피가 철철 나던 때보다 둔중한 아픔이었다. 불쾌하고 초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시발. 시발. 아 제기랄. 근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까 홀가분해졌다. 쾌하고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매일 강박적으로 쓰던 글에서 멀어지고, 이제는 아무거나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아무거나 쓴다. 그냥 막 쓴다.
매일 일기처럼 글을 쓴다는 이슬아 작가의 산문을 좋아한다. 예상외로 큰 감명을 받았다. 내용을 차치하고 일일 단위로 써낸다는 그 양에 경악했다. 그 분량을 매일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난 질보단 양을 믿는 쪽이라 우선 원고지 15매가 훌쩍 넘어가면 감복한다. 이슬아 작가는 믿을만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도망칠 구석 없이 몰아붙이는 전사처럼 보였다. 그가 펴낸 두툼한 단행본을 만져보며 경애하는 마음을 품었다. 나의 과거, 기억,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이 정도로 쏟아내려면 얼마나 시간을 멈춰 세우고 문장을 떠올려야 할까. 그는 근면한 노동자처럼 썼다. 나도 그러고 싶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66번의 반복이 진실을 만든다고 했다. 누군가의 글을 반복해서 읽으면 그 생각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그건 맹목적인 구석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를 추종하게 된다. 내겐 지우가 그랬다. 이슬아도 물론 그렇다. 품질은 모르겠고 우선 양이라도 채워야겠다.
누군가 카페 문을 열고 그냥 나갔다. 쌀쌀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바깥공기가 서늘해지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아늑해졌다.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분위기였다. 카페 안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한참 구경하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헐렁이는 옷차림과 분홍빛 재잘거림에 마음이 동했다. 겉보기에는 뻔해 보이지만 사실 꽤 남다른 그런 사람의 이야기. 조금 더 비비다가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