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회오리바람>
중학교 졸업식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보중이랑 나는 학교가 끝나고 언제나 그랬듯 학교 뒤편에 모였다. 우유 급식 상자를 쌓아놓은 창고 옆 구석탱이는 우리 아지트였다. 피시방을 가든 농구를 하러 가든 우리 집에 가서 라면을 때리든 우선은 학교 뒤에 모여야만 했다. 왠지 모르게 시무룩한 보중이와 나는 반 여자애들 얘기를 하고 게임 얘기를 나눠도 쉽게 흥이 나지 않았다. 다른 날 같으면 몇몇 애들이 찾아오기도 할 만한데 이상하게 그날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학교 옆 식당가 뒤편으로 오후의 태양이 서쪽 풀숲 나무들과 주택가 위에 찰랑이는 물결처럼 흐느적거리는 구름 아래쪽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우린 넋 나간 사람들처럼 세상의 고요를 구경했다. 근처에 쓰레기장이 있어서인지 똥파리 몇 마리가 우리 주위에서 윙윙거리면서 정적을 깼고, 근처 교회의 오르간 소리가 미세하게 학교 건물을 울려댔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이상하게 보중이는 학원에 가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어정쩡하게 말장난을 계속하던 보중이는 내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꼭 나랑 같이 하겠다고 대답해줘. 뜸을 들이는 것으로 보아서 지금 막 생각난 것처럼 말했지만 분명히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 같았다. 뭔데 그래. 녀석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 자기가 무슨 큰 사고라도 친 악당처럼 허세를 떨었다. 그래서 무슨 제안이냐고. 젊음의 서투름과 어리석음. 난 매사 터무니없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고, 보중이는 흥분하면 방어적이다 못해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내세워서 언성이 높아지곤 했다. 야 그냥 나랑 가겠다고 대답하면 되잖아. 어딜 가? 피시방 가자고? 정 반대라서 우린 잘 맞았다. 뭘 하자는 거야?
얼마 전 고등학교 배정 결과가 나왔는데 난 평촌, 보중이는 백영으로 가게 되었다. 대충은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막상 교실 앞에 배정표가 붙고 나니 난 당황했다. 보중이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작은 도로 하나를 두고 붙어 있었지만, 학군 상 갈라진 참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중이는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부자 동네 중학교로 배정됐고, 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파트 단지 간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아파트 브랜드와 거실 평수에 따라 집값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격차를 잘 몰랐던 것 같지만 느낌으로는 알고 있었다. 부유함과 가난함은 눈에 다 보이니까. 다 비슷해 보이는 아파트 간에도 구분 짓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어른들 틈에서 우린 꼭 붙어 다녔다.
보중이는 중학교 시절 내내 우리 아파트 단지로 놀러 왔다. 생각해보면 보중이네 단지보다는 우리 아파트가 허름했지만, 더 정겨웠다. 단지 전체에 쥐색 타일이 깔린 보중이네 단지는 놀이터가 좁았고, 가지고 놀만한 잔해(?)도 없었다. 한마디로 매끈했지만 노잼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 아파트 단지는 잔해가 많았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치우지 않아서 놀기 좋았다. 원래 쓸데없는 게 재밌는 법 아닌가. 고장 난 오토바이와 녹슨 철봉, 매일 오는 잡상인 아저씨와 미처 치우지 못한 컨테이너가 신도시 아파트 단지를 하나의 세계로 치장했다. 무엇보다 상가 내에 이런저런 가게가 많았다. 무슨 장터라도 열리는 것처럼 분식집과 문방구, 비디오 가게와 부동산, 제과점과 만화방까지 있었다. 내가 살던 초원 아파트 단지는 이름처럼 넓고 우거진 우리의 터전이었다. 보중이와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단지 내 근린공원이었다. 가면 농구든 축구든 와리가리든 공놀이하는 애들이 꼭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놈도, 술을 가져와서 몰래 먹는 놈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한갓지게 수다를 떨었다. 단지 뒤편으로 크라운 베이커리와 오뚜기 공장이 있었는데, 거길 놀러 가면 쿠키와 카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저녁 6시쯤이 되면 공장 인부들이 개미들처럼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린 공원에서 놀다가 늦은 밤이 되면 공장 지역에 가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즐겼다. 보중이네나 나나 부모가 다 맞벌이해서 저녁을 늘 같이 먹었다. 출출해지면 우리 집에 가서 늘 라면을 먹었다. 난 우리 어머니가 맞벌이의 대책으로 사놓은 5+1 포장지를 뜯고 오징어 짬뽕을 끓였다. MBC 일일드라마를 보면서 국물까지 짜내서 먹던 기억이 선하다. 그런 우리가 고작 고등학교로 갈라질 줄은 몰랐지. 졸업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해 어색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말은 안 해도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같이 있는 시간이 서서히 줄 것이다. 그땐 일정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몰랐다. 이제 성인이 될 즈음이니 붙어있을 여유가 없으리라는 것도 몰랐다. 그냥 다 모르던 시기였다. 다 지나서야 무릎을 탁하고 치는 게 버릇이었다. 학교 뒤편에서 우린 철저히 훗날에 관한 말을 숨기고 삼갔다. 중딩 주제에 과거 얘기만 줄창 했다. 하지만 밑천이 다 떨어지면서 말수가 줄었다. 그렇게 그날도 우린 학교 뒤편에서 네온 속으로 져가는 노을을 보면서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그때 보중이가 여행을 제안했다. 뜸을 들이더니 술술 쏟아냈다. 내일 학교 수업을 하루 빼먹고 강릉에 가자고 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갔지만, 난 그냥 차에 실려도 다녀오면 그만이었다. 근데 보중이는 우리가 열차표를 직접 끊고 학교까지 빼먹자는 것이다. 당연히 부모와 선생에게는 숨겨야 했다. 처음에 제안을 듣고 든 생각은 '아 졸업식에서 개근상은 못 타겠군'이었다. 다음으로는 엄마한테 대차게 얻어터질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이게 가출 비슷한 뭔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없는 게 신기했다. 아니 집 나가면 고생인데 뭣 하러 피 같은 용돈까지 다 써가면서 여행을 가나 싶었다. 내가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면서 의구심을 제기하자 보중이는 재빠른 답을 촉구했다. 내가 안 가면 혼자라도 떠나겠다고 엄포를 놨다. 녀석은 중학교로 가기 전에 기념비적인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난 얼떨결에 같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난 종종 용산역에서 지하철은 탔지만, 한 번도 기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기차가 어느 도시, 어떤 세계를 향해 가는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내 세계는 딱 학교와 우리 동네 단지가 전부였다. 머릿속으로 동쪽으로 가로질러 가는 걸 상상해봤지만, 서쪽 바다를 놔두고 굳이 왜 먼 동쪽 바다로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보중이는 내가 갈까 말까 고민하는데도 무시하고 생각해둔 계획을 읊었다. 우선 선생님께는 엄마 번호로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보중이는 벌써 엄마 이름으로 담임한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못 간다고 알렸다고 했다. 인터넷 무료 문자 서비스로 하면 발신 번호도 조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간도 큰 새끼.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녀석에게 일깨워주려고 했지만, 보중이는 우리 담임처럼 멍청한 자라면 별 의심도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부모님께는 보중이네서 하루 자고 오는 거로 얘기하기로 했다. 보중이는 우리 집에서 잔다고 뻥을 쳤다고 했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뭘 하든 무관심했으니 상관없었다. 그들은 퇴근하고 들어와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싸우다가 자느라고 형과 내가 어디서 뭔 짓을 하든 무관심했다. 관건은 담탱이였다. 그 마귀 같은 할망구가 의심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마귀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무시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내 뺨을 세차게 때리던 그 여자는 아직도 선생질하려나.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상스러운 인간이었다.
일은 정확하게 보중이의 말대로 진행됐다. 우린 완전 범죄를 확신하고 저녁 7시 무렵 용산역에 도착했다. 아무런 짐도 없었다. 비닐봉지에 저녁 대신 먹을 과자와 우유가 있었다. 기차에 오르니 무궁화호 특유의 돼지갈비 냄새가 났다. 갈비랑 소주 냄새가 섞여서 불쾌했지만, 후각은 그 어떤 기관보다도 적응력이 빨랐다. 평일이라서 퇴근길에 탄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드물게나마 배낭을 메고 먼 길을 떠나는 여행객도 보였다. 보중이가 끊은 열차표에 적힌 좌석에 앉았다. 나는 창가, 보중이는 복도였다. 기차가 출발하면서 우리가 매일 보던 동네를 낯설게 비췄다. 난 계획에도 없던 기차 여행에 잔뜩 흥분해서는 목소리가 커졌다. 난 요즘도 자유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항상 그날 여행에서 본 기차 풍경을 떠올린다. 한 시간 가량 지나자 도심이 사라지면서 긴 터널을 통과했다. 전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목초지와 논밭이 가득한 강원도의 풍경은 서울 촌놈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우린 앞으로 세 시간 후면 바다에 닿을 것이다. 날이 쌀쌀해서 물놀이는 어려워도 충분히 재밌을 것이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미지에 노출된 느낌을 한껏 즐겼다.
기차는 정확하게 네 시간 만에 강릉역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갔다. 우리는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후회하는 표정을 짓는 보중이가 보였다. 보중이는 말수가 줄면서 역사에서 두리번거렸다. 우리 계획은 밤새워서 바닷가 근처에서 노는 것이었다. 배고프면 피시방에 가서 컵라면을 먹고 게임을 하다가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난 우리 계획을 상기하려는 듯 관광지 표지판을 가리켰다. 15분만 걸으면 바다로 갈 수 있겠어. 걸어갈까. 보중이가 내 말을 듣고 마지못해 건물 밖으로 나서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선 역사 옆에 있는 가락국숫집에서 우동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영업을 종료하려던 주인장이 국수를 잔뜩 삶아줘서 배불리 먹었다. 난 비를 맞고서라도 바다로 가야 한다고 우겼다. 우리 둘이 돈을 모으면 차비 제외하고 만원 정도가 남으니 비가 그칠 때까지 피시방에서 밤을 새울 수 있을 터였다.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천둥소리보다 더 나를 두렵게 한 것은 겁에 질린 보중이의 표정이었다. 녀석은 안절부절못하며 앞뒤 좌우를 번갈아 봤다. 그때 보중이가 역사와 붙어있는 간이 고속버스 터미널을 보더니 말했다. 그냥 집에 가자. 뭐? 버스 막차가 아직 있네. 야 강릉까지 와서 우동 하나 먹고 간다고? 비가 오잖아. 다음에 오자. 난 다음이 어디 있느냐고 따질 뻔했지만, 꾹 참고 그냥 바다로 가자고 졸랐다. 어차피 지금 가면 걸린다고, 그러느니 바다만 보고 오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보중이는 이런 날씨에 바다로 가봤자라고 했다.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면 돈이 다 떨어질 테고 그럼 내일 졸려서 놀 수도 없을 거라고 초를 쳤다. 이 대책 없는 녀석이 왜 이렇게 따져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왜 오자고 한 건대. 난 결국 화가 나서 토라졌지만, 순순히 녀석을 따라 심야버스표를 끊었다. 이십 분 정도가 남아서 난 역사 밖을 잠시 걸었다. 비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아스팔트에 떨어진 비 냄새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별 미련 없이 막차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미안한 걸까. 분노도 기쁨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보중이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둠의 잔해들을 바삐 헤아렸다.
이후로 보중이와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가 아는 자연은 분리를 당연시한다. 몇 달 후부터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지트도 후배들에게 뺏겼다. 가끔 지나가다가 마주쳤지만 어색해서 금세 헤어졌다. 녀석은 학원 뺑뺑이를 도는 모양이었다. 난 고등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오징어 짬뽕을 먹었다. 가끔 여자애들과 먹기도 하고, 한 번은 라면 먹고 갈 거냐고 묻는 영화를 보며 먹기도 했다. 지금도 난 헷갈린다. 보중이는 왜 바다를 보자고 했을까. 왜 그렇게 서둘러서 다시 돌아왔을까. 세월이 흘러서야 난 보중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당시에는 무척 당황스럽고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지금은 물어보고 싶다. 넌 어디서 뭐 하고 사냐.
보중이와 겪은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있다. 사실 거의 모르는 영화인데, 나만 무척 아끼고 좋아한다.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바람>이다. 고2 겨울방학, 태훈은 여자 친구 미정과 함께 무작정 동해 여행을 떠난다. 부모의 허락 없이 가출을 감행한 것이다. 이후로 부모님은 두 사람을 억지로 갈라놓고, 태훈은 자신을 만나주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는 미정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객관식의 시기에 주관식의 관계를 맞이하고는 어쩔 줄 모르던 내 모습이 있었다. 혼자 뒤처졌다고 낙담해서는, 어쩌면 우린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며 쉽게 체념하던 나. 훗날 연애를 하며 다시 강릉을 찾았을 때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뒤바뀌었다. 보중이와 나는 거기 없었다. 강릉은 커피와 맛집의 도시였고, 테라로사 카페는 붐비고 왁자지껄했다. 강릉 바다는 고요함보다는 내 삶이 어느 한 대목에 이르렀음을 상기했다. 경포대 근처 한 한옥집에서 잠을 잤는데 그때 보중이 꿈을 꿨다. 다 커서 오징어 짬뽕을 먹고 있었다. 요즘도 종종 보중이와 내가 바닷가에서 컵라면을 먹고 물장구도 치는 장면을 상상한다. 마치 우리가 꽤 괜찮은 여행을 했던 것처럼. 실제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 시절을 묘사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사진 출처 : 영화 회오리 바람 스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