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테두리에 사는 소로

소재 <립반윙클의 신부>

by 박민진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튀어나온다. 그걸 다 이어 보면 삶이라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툭 까놓고 보면 그건 일대기라기보다는 분절적인 천 쪼가리에 불과하다. 글을 통해서 내가 독특한 역사를 쌓아온 존재임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실은 너덜거리는 천을 기워 입는 정도다. 어딜 가면 내 삶은 장편 소설이라고 떠벌리지만, 막상 자판을 두드리면 이백 자 원고지 오십 매도 채우기 버겁다. 지금까지 난 내 자아가 언어와 함께 생겨난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글을 쓰며 가상의 자아를 불러내고는 믿어봄직한 하나의 상을 만들어왔다. 어머니가 해준 얘기로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내면서 자아에 현실감을 더했다. 내면의 독백에 피와 뼈를 넣어서 나를 새로고침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내게 기억의 조각모임이며, 자아라는 환상을 대지로 불러들이는 인형 놀이다.


허구적인 자아는 부서지기 쉬운 건물과 같다. 시시때때로 빠져다는 윤색에 취약하다. 기억으로 자리잡지 못한 어떤 이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재와는 거리가 먼 모양새로 내 전두엽을 더럽힌다. 최근에는 출장을 자주 다녀서 열차 차창 밖으로 대중없는 회상에 젖어들었다. 풍경이 흩어지는 걸 보면서 망막에 비쳐 드는 기억을 떠올렸다. 인상적이거나 아픈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 칠만한 파편에 불과했다. 뇌리에 붙박일 만큼 선명하지 않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비싼 열차표가 내게 주는 선물이다.


몇 해 전 한 친구는 내게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지방에서 혼자 상경한 서른 중반의 남자로 경기도 외곽 투룸 방에서 살았다. 목돈이 없어 서울 시내에 집을 구할 수 없다 보니 너무 멀리서 방을 잡았다. 아침저녁으로 버스에서 두 시간씩 잡아먹혔다.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 녹초가 됐다. 자유로라는 이름과 달리 항시 차가 막혀대는 탓에 지칠 대로 지쳤다. 버스를 가득 매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는 이런 처지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았다. 풀린 눈으로 버스에서 골골거리다가, 빌딩 숲에 다다르면 한숨을 내쉬며 우르르 빠져나가는 좀비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만 살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찝찝함을 아는지. 고인 물속을 부유하는 미생물이 된 기분. 유폐된 채 모든 고민을 유예시키는데 익숙해져서, 지금 하는 일이 부유한 삶을 위한 건지 아니면 간신히 퇴근해서 편의점에서 산 유부초밥을 먹기 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십 년쯤 지나 유부남이 되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평생 노동하는 기계가 될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현재 그는 두려움을 제대로 직면하지도 못하는 뜨내기에 불과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밤늦은 시간이었다. 가끔 북에서 송출하는 대남방송이 들려왔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지만, 자꾸 듣다 보니 주술처럼 느껴져서 섬뜩했다.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과도한 의미부여로 연명하는 자신을 꾸짖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대북 방송을 제외하면 동네는 대체로 고요했다. 아니 소리보다는 시선이 고요했다. 눈이 탁 트여서 좋았지만, 점차 눈 둘 곳이 사라져 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소란 속에서 자약하게 앉아 있기를 바랐다. 너무 외로워서 고향이 그리웠다.


주 내내 일하고 나면 주말에는 무조건 집에서 쉬어야 했다. 녹초가 되어 주말 대부분은 잠을 몰아 잤다. 일이 너무 힘들었다. 몸이 축나는 게 느껴졌다. 산에서 녹초라도 캐 먹어야 할 판이었다. 기운이 난다고 하면 초롱초롱하게 눈을 뜬 사슴에 올라타서 뿔이라도 잘라먹을 판이었다. 안 그래도 가끔 동네에 사슴이 나타났다. 눈이 붉고 털이 흰 알비노 사슴이었다. 무리와 떨어져서 돌아다니다가 멀찍이서 풀을 뜯으며 물끄러미 날 쳐다봤다. 눈을 마주치고 가까이 다가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너도 심심하지. 너도 외톨이구나. 조금만 기다려라. 목돈을 모으자마자 서울로 갈 거니까.'


끼니는 보통 오피스텔 1층에 생긴 이마트 편의점에서 때웠다. 허허벌판에 지은 오피스텔 건물은 집주인이 노후를 위해 가진 돈을 다 털어서 지은 건물이었다. 주인 할아범은 틈만 나면 편의점에 들어가서 잔소리를 했다. 내가 본 경우만 몇 번이었다. 건물 밖 청소를 안 한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고 난리였다. 때마다 편의점 알바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시키는 대로 했다. 한 소리 해주고 싶을 만큼 할아범의 말투는 무례했지만, 내가 일터에서 당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나 역시 사무실에서라면 아르바이트생처럼 별말 없이 꾸지람을 견뎠을 것이다.


밖은 너무 추웠다. 십만 원 주고 산 토퍼에 누워서 누에고치처럼 몸을 구기고 유튜브를 봤다. 어차피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차가운 도시락이 지겨우면 프라이팬에 도시락을 다 쏟아 넣고 볶아먹었다. 요리는 사치였다. 장 보고 조리하고 설거지하느라 주말을 날릴 순 없었다. 라면이 지겨우면 김치를 더 넣어서 찌개를 만들었다. 주말이라고 약속을 잡을만한 친구도 없었다. 영화라도 보려면 또 지긋지긋한 버스를 타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싸도 합정이나 상수 근처에 집을 구했으면 전시회라도 보러 갔을 텐데.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개천가와 동네 카페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싫어했던 몰취향 한 어른이 되어감이 느껴졌다.

편의점에 자주 들르니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선점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은 늘 핸드폰만 보고 있어서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지만, 그가 도시락을 고를 땐 말도 없이 다가와서는 할인하는 제품을 가리켰다. ‘감사해요. 늘 신세를 지내요.’ 한 번은 말을 걸어봤지만, 고개만 끄덕이고 카톡창으로 돌아갔다. 그가 주말에 만나는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아무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나도 사무실에서는 아무 말 안 하니까.' 항상 아식스 운동화에 청바지 그리고 초록색 유니폼 차림이었다. 거의 매일 일하는 걸로 보아서 프리터족이 아닐까 상상했다. 상상을 버릇처럼 반복하니 아르바이트생이 퇴근하면 뭘 할지, 집에서는 뭘 먹을지 떠올랐다. '너도 나처럼 지금은 일종의 모라토리움 기간일까.' 병적인 구석이 있는 상상이었다.


일터를 제외하고 대화다운 대화는 오직 SNS에서만 나눴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만남을 주선하는 랜덤 채팅도 가라지 않고 깔았다. 그렇다고 온라인에서 놀 마음은 없었다. 기회가 되면 SNS를 통해 동년배의 친구와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도 분명히 자신처럼 심심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빨간 버스에 탄 수많은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들 방구석에 처박혀서 월요일 출근만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그들을 불러내고 싶었다. 학교 다닐 때는 동아리 회장도 하고, 학생부 활동도 4년 내내 할 만큼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자신이 있었다. 이성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컸다. 왠지 연애만 하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장래 희망이 사라진 지금이라면 사랑이 돌파구가 아닐까. 과거엔 그도 클럽에 가서 놀만큼 밤문화를 즐겼지만, 그러기엔 너무 늙었다. 이 시골 땅에 어울리는 목가적인 취미가 필요했다. 온라인의 장점은 뚜렷했다. 빠르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으며 선호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애플리케이션에 입력하면 적합한 상대들을 이어줬다.


타지로 와서 말수가 줄은 그는 온라인에서만큼은 활발히 소통할 수 있었다. 아이디를 '앙리 다비드 소로'라고 만들었다. 소로는 한 대화방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심심함을 심심하게만 바라보지 않는 다정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이성을 잇는 서비스였는데, 상대는 ‘립반윙클의 신부’라는 아이디를 썼다. 대화방에 들어오자마자 터놓고 얘기를 나눴다.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어느 순간부터 번호를 교환하고 장문의 카톡으로 일상을 함께했다. 소로는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하면서 점차 현실의 피폐함과 멀어졌다. 혼자 보내는 주말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두 사람 다 만남을 재촉하지 않았다. 소로는 실제 립반윙클의 신부가 궁금하지 않았다.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 예의를 차리고 얘기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카톡으로 오가는 일상의 전시가 정겨웠다. 옷을 차려입을 필요도 없고, 돈도 들지 않았다. 가끔 사진을 찍어 보냈고, 같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모티콘 몇 개만 돌려써도 다정한 기운이 차올랐다.


며칠 전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 얘기를 하다가 불과 두 블록 거리에 산다는 걸 알아버렸다. 개천 맞은편이 립반윙클의 신부 집이었다. 옆 동네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다. 자연스럽게 만나자는 말이 나왔고, 약속이 잡혔다. 마음이 복잡했다. 직접 보면 내 모습이 다 드러날 텐데, 그러면 다시 못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보면 판가름을 내야 하니까. 관계를 규정해야 하니까. 관계를 유예한 채 상상만으로 지속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오후 두 시 약속인데 초조함에 두 시간이나 일찍 나섰다. 그간 결혼식 아니면 입을 일이 없던 셔츠도 꺼내 입었다. 커피를 마시고 갈 식당과 저녁에 근처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회도 찾아놨다. 국내 중견 작가의 전시였는데 건물에 딸린 카페가 근사했다. 카페에 앉아서 그간 나눈 대화 내용을 쓱쓱 올려보면서 복습했다. 그간 얼마나 깊고 방대한 대화를 나눴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둘은 시도 때도 없이 속사정을 털어놨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긁어다가 붙였다. 둘 다 이 시골 동네에서의 삶이 유일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소로는 립반윙클의 신부를 알 것 같았다. 립반윙클의 신부도 소로를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카톡으로는 라면을 끓이고 청소하는 일상까지 특별하게 전시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도 그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떠한 관계의 형식 안으로 들어가면 그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해야만 한다. 남들이 의례 하는 것처럼 서로를 대할 것이다. 소로는 항상 만지고 부둥켜안을 수 있는 관계를 바라 왔건만, 적어도 오늘은 그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부담감에 목이 탔다. 차가운 커피를 한 잔 더 시켰다. 어제 술을 잔뜩 마셔서인지 몸에 미열이 있었다. 창밖 햇살이 따듯했는지 카페에서 선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는 사람과 심하게 다퉜다. 피부 바로 밑까지 올라온 취기 때문에 목소리가 떨려왔다. 잔뜩 긴장해서는 지나치게 정확하고 딱 부러지는 말투로 공격했다. 꿈속에 등장한 아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내 폭언을 참고 견디던 그는 나를 샅샅이 꿰뚫는 말로 반격해왔다. 상대의 호통 소리에 잠에서 깨니 순간적으로 지금 여기가 어딘지 헷갈렸다.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걸까. 누구를 만나서 뭘 하려던 거지.' 옆 테이블에 그와 머리를 비슷하게 깎고 유사하게 옷을 입은 남자가 비스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55분. 창밖을 살피는데 어딘가로 향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보였다. '어딜 가는 거지. 잘 차려입었네.' 편의점 녹색 유니폼만 보다가 처음으로 외출복을 목격했다. 아식스 운동화 대신 끈이 달린 구두를 신고 있었다. 고동색 벨벳 코트가 제법 잘 어울렸다. 역시 길을 걸으면서도 휴대전화기를 보고 있었다. 부지런히 엄지손가락이 보였다. 누구에게 카톡을 하는 걸까. 이제 약속 시간에 다다랐음에도 립반윙클의 신부는 별말이 없었다. 편의점 학생은 버스정류장 근처에 잠시 서서 개천 너머를 바라봤다. 한쪽 발을 정류장 기둥에 대고 서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돌아서서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뭘 두고 왔나.' 그때 립반윙클의 신부가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나올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톡을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라.' 소로는 너그럽게 다음에 보면 된다고 답했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정말 미안하다고 재차 사과했다. 소로는 괜찮다고 다독였다. 슬슬 배가 고픈 참이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집에 사다 놓은 도시락 생각이 났다. 립반윙클의 신부에게 주려고 사 온 작은 화분을 챙겨서 카페 밖으로 나섰다. 레옹이 된 것 같았다. 마틸다처럼 작고 왜소한 편의점 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친구에게 들은 경기도 외곽에 사는 서른 중반의 남자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친구는 내게 낯선 동네가 얼마나 쓸쓸한지 알려줌과 동시에, 대도시에 없는 나른하고 한적진 기운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시보다 오히려 시골에서 온라인 만남이 성행하는 걸 알려주려고 했던 얘기 같기도 하다. 집을 구할 때는 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던 것 같기도 하고. 친구는 저녁을 먹기 전에 그를 만나 차라도 한잔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경기도 외곽에서 편의점 도시락이나 까먹고 있는 그가 부른다고 올까?' 주말에 할 게 없으니 올 거라고 했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무 일정이 없음에도 할 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소로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생각하고 싶었다. 4호선 지하철에 올라서 소로를 상상했다. 내가 상상으로 부여한 형태를 이어갔다. 소로는 립반윙클의 신부와 만났을까. 그건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