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안녕하는 사이

소재 <십 년>

by 박민진

서울국제도서전을 핑계로 오래간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전시는 1시간만 딱 보고 용산역에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노을을 보며 한강대교를 걷고 싶었다. 엉킨 이어폰 줄을 풀며 역 에스컬레이터에 섰는데 반대쪽에서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한 삼 초쯤 시선이 이어지자 질세라 나도 눈에 힘을 주고 눈빛을 받아냈다. 한번 해보자는 거지. 묘하게 낯이 익었다. 상대도 나를 알아보는 눈이었다. 누가 봐도 서글서글하고 인상이 좋아 눈에 띄는 외모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고 헐렁한 티셔츠에는 벌건 입술이 그려져 있었다. 너도나도 갈아타고 섞여가는 용산역 아사리판에서도 도드라지는 모습이었다. 누구를 빗대서 얘기하는 걸 싫어하는데 뮤지컬 배우 김호영 씨랑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렇게 눈빛이 오가고 지나치면서도 그가 누구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의 캐비닛을 열고 파일철을 이리저리 들춰봐도 통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서 쾅 닫고 그냥 지나쳤다. 알게 뭐냐. 그렇게 용산역 광장을 걸어가는데 그가 뛰어왔다. '민진, 나야. 어떻게 여태 빡빡머리냐. 딱 알아봤네. 어떻게 사냐.' 목소리를 들으니 알 것 같았다. '승범이구나. 너 많이 변했네.' 난 거의 속삭이듯이 답했다. 아무리 소란스러운 광장이라도 그렇지 목청껏 내 이름을 부르면 부끄럽다. 눈치 볼 사람은 없었지만 난, 마치 광장에서 뮤지컬이라도 하는 것처럼 울리는 승범이의 목청이 놀라웠다. '잘 사는 거지. 지금은 어디 살아. 어디 가는 길이야.' 3 연타 질문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난 지금은 이사 가서 다른 동네에 산다고 말했다. '난 몰라봤어. 많이 변했다. 근데 말투가 똑같네.' 교복은 아니지만 줄 이어폰을 쓰고 에어포스 신발을 신은 게 똑같았다. 귀걸이와 눈 화장이 이렇게 어울리기도 어려웠다.


승범이에 관한 기억은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저 멀리서 소란스럽게 구는 무리 중 하나라는 이미지뿐이었다. 난 녀석과 달리 늘 구석 자리에서 엎드려 자는 찐따였다. 한 마디로 말 없고 조용해서 존재감 없는 애였다. 승범이는 여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는데, 당시 난 여자애들과 말도 섞기 어려울 만큼 수줍음을 탔다. 녀석은 남녀 구분 없이 다 친했던 것 같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부러웠고 질투도 했다. 당시에 난 나를 내향적인 인간이라고 믿고 최대한 멀리 서 있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웠고 유독 눈을 마주치기를 꺼렸다. 지금의 나는 MBTI를 하면 백이면 백 E로 나오는데, 그렇다고 현재의 내가 고스란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승범이와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건 완전 다른 종을 바라보는 열성 인자의 고통이었으니까. 그렇게 활달했던 승범이가 학교 다닐 때도 내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녀석은 반 아이들과 다 친했는데, 나는 철저히 멀리했다. 승범이는 어쩌면 나는 혼자가 어울린다고 넘겨짚었는지도 모르겠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찰하는 나의 관찰자 시점을 지켜준 걸지도. 괜히 책 열심히 읽는 애랑 엮였다가 엄한 소리라도 들을라 겁을 먹었을지도. 그렇게 일 년을 같은 교실에서 살면서도 몇 마디 나누지 못했다. 내 눈에 녀석은 희귀종이었다. 승범이는 명랑 만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말과 행동을 하는 녀석은 연기자였다. 가식적인 놈. 녀석과 같은 아파트 단지라서 종종 마주쳤는데 우린 철저히 서로를 멀리했다. 마치 사전에 합의라도 한 것처럼. 근데 용산역에서 이십 년 만에 만나서 아는 척을 하다니. 우리가 친구?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늘 암울했다. 선생님들 눈밖에 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학업은 놓고 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평균치의 학생 이미지였다. 뒷자리에서 소설을 읽고 공상에 빠져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 하지만 그 평균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 데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시험을 못 보는 바로 잉여인간이 되어버리는 교실에서 나의 컴컴한 아이덴티티는 민폐였다. 그냥 조용히 눈에 띄지 않고 살기만을 바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니. 그에 반해 승범이는 공부도 곧잘 하고 교유 관계도 돈독히 다져냈다. 학교에서 내내 노는 것 같아도 학원을 다니며 성적을 맞춰냈고, 밝은 성격 탓에 교사들도 녀석을 예뻐했다. 세상은 절대 공평할 수 없고, 공정하기는커녕 번번이 감내해야만 그럭저럭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산증인이었다. 용산역 광장에서 멈춰 서서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다. 우리의 공통점은 그거뿐이었으니까. 녀석은 내가 여태 같은 동네에 사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해 2학기에 이사 간 것도 몰랐구나.'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지금은 대구에 산다고 말해줬다. 일도 대구에서 한다고. 녀석은 아직도 우리 학교가 있는 고향에 살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단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일 학년 이후로 평생 날 못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녀석은 날 알아봤을까. 나는 더는 할 일이 없어져서 어색하게 웃고 얘기했다. '승범아 날이 덥다. 왜 이렇게 땀이 나냐. 난 날이 더워지면 이상하게 옛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맞아 오늘 진짜 덥다. 근데 대구는 더 덥지?' '응 대구 덥지. 근데 여기도 진짜 더워. 그래서 빨리 대구 가려고.' '그래 다음에 한 번 봐.' '응 우연히 덥지 않을 때 한 번 마주치자.'


생각해 보면 난 녀석을 까칠하게 대했다. 사는 동네도 같고 교실 자리도 바로 옆이었는데 모른 척했다. 녀석의 눈을 피했다.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승범이가 옆 반 애랑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노골적으로 미워했다. 가끔 난 열등감이 날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돌이켜보면 열등감 때문에 많은 걸 잃기도 했다. 호의와 농담이 찰랑거리는 학교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잘난 놈들을 시기하느라 힘을 뺐다. 누군가에게 십 대는 캘리포니아의 축복과 같은 밝고 맑은 기운이 깃든 나날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절대 돌아가기 싫은 우울과 절망과 권태의 총체였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과 무관하게 존재 자체의 어떤 속성 같은 것이 날 허송세월에 가둬뒀다. 웃기게도 난 당시 내가 머금은 우울과 절망과 권태를 지적인 뭔가로 느낀 것 같다. 저 속 깊은 곳 어딘가 도사리고 있다가 언젠가는 재능으로 꽃 피워낼 그런 가능성 있지 않나. 그래서 난 승범이를 동경하면서도 애써 무시했다. 빈 껍데기 같은 놈, 어디 잘난 척이나 계속해 보라지.


승범이에 관한 기억에는 이런 것도 있다. (세 번째 캐비닛을 안 열어봤네.) 새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승범이가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한다는 루머였다. 루머의 근원지는 녀석이 사귀었던 옆 반 혜지였다. 연인 사이였기에 더 정확한 얘기로 통했다. 소문은 자극적으로 퍼져서 어느 날 승범이의 노트북을 보니 남자들끼리 열심히 땀을 흘리는 영상이 있었단다. 어떤 애는 승범이가 남자 화장실에서 다른 학교 남자애랑 키스하는 걸 봤단다. 내가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뺨 싸대기라도 올려붙였을 텐데 승범이는 아무 말 없이 소문을 감내했다. 전보다 많이 위축되었고 말도 줄었다. 난 쌤통 심리를 느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래 그렇게 완벽하게 살 순 없지. 나는 녀석이 루머를 뱉는 무리에게 주먹을 날릴 거라고 기대하며 소문을 즐겼다. 당시만 해도 수컷들은 으레 그랬으니까. 그러나 승범이는 경멸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내가 호모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어. 굳이 그걸 해명할 필요는 없어. 화를 낼 필요도 없고.”


녀석의 무심코 뱉은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소문이 퍼지는 와중에도 깔끔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다. 늘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를 독특하게 꾸미고 앞머리에는 브리지를 넣고 양말은 주황색을 신는 녀석이 저렇게 침착하다니. 난 녀석이 흉내 내는 정중함은 결국 언젠가는 튀어나올 분노의 은닉처라고 생각했지만, 승범이는 끝내 아무런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루머에 루머는 계속해서 퍼져나가 아이들은 수군거렸지만 승범이는 초연하게 학교에 다녔다.


승범이는 사악한 교실에서 보기 드물게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사람이 전혀 없는 학교라서 더 돋보였다. 특히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나는 그걸 가식으로 읽었는데, 가식보다 못한 위악이 판을 쳐대는 통에 승범이의 부드러움은 도드라졌다. 난 녀석을 훔쳐보면서 내가 되고픈 어떤 상을 보았던 것 같다. 조금도 긴장하는 법 없이 부드러운 애정을 표하는 태도. 어쩌면 그래서 승범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는지도 모른다. 나의 질투처럼. 나의 열등감과 나의 의구심처럼 어떤 견고함에 대한 도전처럼, 결함에 아파하는 자의 투정처럼.


용산역 광장에서 멈춰 서서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다가 사는 동네 얘기가 나왔다. 우리의 공통점은 그거뿐이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서 '어떻게 지내'냐는 얘기가 나오면 으레 하는 일 얘기가 먼저 나오기 마련이다. 나도 습관처럼 무슨 일을 하냐고 물을 참이었는데, 녀석은 여태 같은 동네에 사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해 2학기에 이사 간 것도 몰랐구나.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지금은 용산에 산다고 말해줬다. 일도 용산에서 한다고. 녀석은 아직도 우리 학교가 있는 고향에 살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사한 적이 없단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일 학년 이후로 평생 날 못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녀석은 날 알아봤을까. 몇 마디 얘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왜 역에서 마주치고 붙잡을 만큼 익숙했을까. 갸웃했지만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난 '다음에 보자'라는 거짓말을 하며 헤어졌다. 다음에 보자고 하지 않으면 헤어질 수 없어서 바쁜 척을 했다. 바쁘긴커녕 시간이 텅 비었는데도. 녀석은 내 의중을 알아채고 그래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말하며 씩 웃었다. 이제는 같은 동네에 살지 않고, 지난 이십 년이 그런 것처럼 우연히 마주하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승범이는 그렇게 1호선 플랫폼으로 멀어져 갔다.


한강공원을 걷는데 문득 승범이가 뭘 하고 사는지 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그 얼굴과 옷차림이 익숙했다. 뭐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하다가 봤나. 답은 카톡에 있었다. 카톡 창에 처음에 승범이라고 쳤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S라고 쳤더니 'H.S.B'라는 이름이 보였고 거기에 승범이가 친구들과 뒤엉켜서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난 카톡 친구 관리를 아예 안 하는데 승범이가 들어가 있었다. 어떤 연유로 추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 새로운 사진으로 업데이트한 승범이의 카톡 프로필을 보면서도 누구인지 몰랐고, 왜 내 리스트에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온라인은 방대하고 이어폰 줄처럼 뒤엉켜있으니까. 잘 풀어내 봤자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니까. 난 승범이가 에어로빅과 헬스 트레이너를 하며 수많은 친구 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오늘 녀석을 마주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더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지금까지 틈틈이 승범이의 일상을 훔쳐보고 있었던 거다. 가끔 업데이트한 프로필 사진을 하나씩 넘겨 보면서 난 녀석의 친구 얼굴도 알았고, 연인의 모습도 보았으며 요즘은 호랑이 모양 타투를 어깨 근처에 새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녀석이 한 십 년 전쯤에는 에어로빅 대회에 나가서 수상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 녀석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은 이유 역시 궁금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아마도 다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 내 책 읽은 건 아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승범이의 엄마와 우리 엄마가 아는 사이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니까 종종 왕래하는 사이였다. 엄마가 저녁 계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며 옷매무시를 다듬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아줌마들끼리의 기싸움이란. 한 번은 엄마가 빈 그릇을 가져다주라면서 옆 동 호수를 알려줬다. 빈 그릇만 가져가기 뭐 해 귤을 한 봉지 들려 보냈다. 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된장국 냄새가 훅 끼쳤다. '계세요'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잠들어 있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아서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난 스스럼없이 빈집에 들어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들어가서 집을 둘러보고 올 참이었다. 그릇과 귤만 놓고 갈 참이었다. 아주머니가 들어와도 어머니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슬그머니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거실 텔레비전 옆에 가족사진을 하나씩 보는데 거기에 승범이가 있었다. 이 집 막내아들이었어! 슬금슬금 녀석의 방에 가보니 전쟁터였다. 색색깔 옷들이 침대와 바닥에 헤집어 놓여 있었다. 방은 어지러웠지만, 냄새는 깔끔했다. 난 잠시 침대에 앉아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봤다.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책상 위에 놓인 만화책과 노트들도 들춰봤다. 침대에 잠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난 뭐라도 된 것처럼 팔베개하고 창밖을 바라봤다.


십 년 전에 갑작스럽게 출장을 갔다가 고향 개포동에 들렀다.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가 근린주구의 형태를 갖추면서 블록들이 큼지막해졌더라. 대로가 늘어나고 모퉁이는 드물어졌다. 특히 내가 살던 개포 상록 9단지 공무원 임대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다 지워져 버렸다. 여긴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위화감만 잔뜩 느끼고 돌아왔다. 실향민이 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곳도 가장 오래 산 곳도 아닌 그 동네가 내겐 고향으로 여겨졌다. 아마도 뭣도 모르면서 끙끙대며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랐던 공간이라서 그런 것 같다. 영화 <벌새>를 보니 내가 살던 동네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치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실제 촬영지는 개포동 공무원 아파트 단지였다. 어릴 적 드나들던 상가건물과 작은 공원까지 다 고스란했다. 주인공 은희의 걸음마다 내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청승맞게 영화를 보다 살짝 울기도 했는데, 은희가 고목 아래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라면 국물처럼 짠 눈물이 흘러내렸다. 색색깔 승범이도 아마 나처럼 영화를 보며 반가워했겠지. 가끔 용산역에서 갈아탈 때 빡빡머리 날 기억할 테지. 카톡은 녀석을 보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