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육개장 냄새

by 박민진

생일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늘 왜 그리도 기운이 없으신지.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난 강남에 있는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는데 그 당시에도 어머니는 병원이 너무 무서웠고 날 낳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단다. 두 번째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 머리가 너무 커서 결국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난 2월에 나와서 여태껏 살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평생 생일파티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온 가족이 다 그런 것 같다. 각자 지인과 생일잔치를 했을 수는 있지만 가족끼리는 그런 게 없었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다들 다정하고 화사한 기운을 뿜어낼 주변머리가 없다. 가족인데도 멋쩍어한다. 심지어 나는 친구들과도 생일 파티 따위는 해본 경험이 없다. 챙기는 것도 못하고 챙김을 받는 것은 더더욱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내 마지막 생일 파티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왠지 한 번쯤은 했을 것 같은데 퍽 인상적이진 않았나 보다.


만약 언젠가 기회가 되어 마지막 생일파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불편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늘 주목받는 걸 어려워했다. 내 사적인 뭔가를 사람들 앞에서 내비치는 게 불편하다. 글로는 뭐든 쓸 수 있지만 입과 눈으로 감정이 오가는 자리에서 난 오므라진다. 자고로 생일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마라탕 한 그릇에 영화 한 편 보면 적당하다. 설령 지난 주말과 별반 다를 바 없어도 괜찮다. 이런 이유로 생일이 드러나는 모든 온라인상의 알림 기능을 다 꺼뒀다. 점차 모든 사람의 기억에도 나의 생일날은 사라져 갈 것이다. 생이 끝나면 내 모든 흔적이 사라지길. 아예 없었던 것처럼. 그게 내 마지막 생일 소원이다.


올해 생일은 낯선 도시에서 맞았다. 아버지께는 카카오톡으로만 인사를 드렸다. 일이 잘되고 있고 밥도 잘 챙겨 먹는다고. 곧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찾아뵙겠다며. 벌써 잠잠해져 가는 코로나 핑계로 생일을 흐지부지했다. 어릴 적 내 생일엔 왕왕 아버지와 영화관에 갔다. 무슨 영화였는지는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끝나고 집 근처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먹곤 했다. 걸쭉한 흰 수프와 옥수수, 브로콜리가 놓인 예스러운 곳이었다. 포크와 나이프 손잡이가 목재로 된 감촉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 먹고 나면 소화도 시킬 겸 아파트 단지를 아버지와 둘이서 걸었다. 별 말은 없었다. 집까지 서로 먼저 가겠다고 달리기 시합을 벌인 기억도 난다. 아버지는 원기 왕성한 순간을 약간 지났고 난 이제 막 피어오르는 참이었다. 마치 젊음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처럼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기를 쓰며 달렸다. 난 시야가 점차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렴풋하게나마 이게 삶의 순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 생일에는 오래전에 모셨던 부장님이 전화를 해왔다. 딱히 각별했던 사이는 아니었다. 정이 가는 타입이었지만 흔한 상관과 부하의 관계였을 뿐이었다. 그는 혼자 객지에서 사는 날 걱정해줬는데, 대뜸 요즘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으셨다. 별 뜻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할 말이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 나는 선뜻 책 읽고 친구랑 영화 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는 짓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그가 별생각 없이 물은 건 단순한 '재미'는 아니었다. 왜 어른처럼 살지 않느냐는 뜻을 함의하고 있었다. 물론 심각한 뜻으로 물은 건 아니었지만 난 곤란했다. 그의 말투가 자아내는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답이 내겐 없었으니까. 그래도 난 그가 웃음을 터뜨릴만한 너스레 정도는 떨 줄 알기에 대충 넘겼다. 속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저 주식 안 해요. 저는 주택청약 안 해요. 인간관계엔 눈곱만큼도 신경 안 써요. 줄 설 생각도 없어요. 사고 싶은 것도 그냥 사버려요. 스타벅스에 매달 수십만 원씩 상납해요. 저는 그냥 글이나 쓸게요. 실컷 시간을 낭비할게요. 적고 보니 유치하지만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재미라니. 그래 재미있지. 어른됨에 따라 딸려나오는 납부고지서를 찢어버리고 한갓진 소리만 늘어놓으니 재미가 없을 리 없지.' 그래, 나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생애 주기 건건마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걸 애써 마다하고, 삶의 좌표를 엉뚱한 곳에 찍고서 유유자적한다.


생일날 해 질 녘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터에서 놀던 나를 부르던 어머니의 부름이 떠오른다. 내가 살던 개포 상록 9단지 공무원 임대아파트 단지의 정경.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았고, 유년의 안식처로 남아있는 공간. 미역국 대신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을 끓여주시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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