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질투>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땐 종종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일상의 커다란 구멍을 마주하고도 미처 돌아볼 새 없이 스쳐 지난다. 늦은 밤 뭔가가 떠올라 물끄러미 기억의 한켠을 응시하지만, 머리가 아득해서 눈꺼풀만 무거워진다. 언어는 애초에 불완전한 거라 마음을 온전히 녹여낼 순 없는 걸까. 이렇게 글을 쓸 때 무력해지면 백스페이스를 연타하다가 한숨을 쉬기 일쑤다.
분명 저녁밥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럴싸한 착상이었는데 막상 글로 풀어보면 볼품없이 흩어지고 마니 답답한 노릇이다. 삶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데 반해 글은 항상 더디고 미진하니 힘에 부친다. 하루는 눈 깜빡할 새 흘러가지만, 내 글은 수 없는 마침표를 찍고서도 깜깜무소식이다. 벌건 눈으로 커피를 들이켜며 조잡한 초고를 만져봐도 기껏해야 패배감만 베어진다. 인식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작가 흉내라도 내보려 아등바등하는 꼴이다. 그래서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이런 말을 남겼나 보다. “나는 글을 쓸 때, 입에 크레용 하나를 물었을 뿐 팔도 다리도 없는 사람처럼 느낀다.” 내가 힘든 밤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주는 그이는 다 잘 될 거라고 날 위로한다. 나는 그 고운 마음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해 짜증이 난다. 그 위로가 원고가 되지 않기에 머리만 긁적이며 그냥 잘 자라고 말한다. 마음 같아서는 어쩌면 좋냐고, 이게 내가 사는 길인 줄 알았는데 어쩌냐며. 그의 잘못도 아닌데 그의 물음을 탓한다.
이렇게 사지가 절단되어 나뒹굴 때 서가로 향한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일급 작가가 쓴 문장에 밑줄을 치며 안식을 찾는다. 때론 그 격차에 실망해서 우울해지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책장에 머리를 세 번 정도 부딪친다. 저 멀리 날아가는 작가를 돌멩이를 던져서 떨어뜨리는 것보다 더 쉬운 건 내가 퍼덕거리며 새 흉내라도 내는 게 아닌가 싶다. 질투는 무슨 필사적으로 필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름난 작가들은 어느 장을 펴봐도 창밖으로 멀리 어두워지는 늦저녁 하늘처럼 불가해한 현상을 능수능란하게 서술한다. 내가 정체 모를 기분에 허우적거릴 때도 그들은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문학의 자장 속으로 날 이끈다. 미묘한 문장과 정성스레 조탁한 단어가 감정의 틈새를 파고든다. 미묘한 느낌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결국엔 광채를 띤 순간을 포착해낸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글을 쓰는데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지.’ 시샘과 질투에 휩싸여서 열이 뻗쳐도 어쨌든 문학 안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헬스장은 걸러도 독서는 빼놓지 않아야 불안이 덜하다.
불안 증세는 새벽이면 점점 더 극심해진다. 왜 엄마가 자정 전에는 잠자리에 들라고 했는지 이해가 간다. 새벽은 누구에게나 취약한 시간 아닌가. 우울증을 알았던 어머니라면 더 잘 알았겠지. 새벽에 홀로 남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걸. 영화 <베를린>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오지 않나. “소련이 적을 공격할 때의 시간 새벽 4시, 인간이 가장 약해지는 시간이지” 바이오리듬에 따르면 새벽 4시는 인간의 체온이 최저로 내려가 감기에 걸리기 쉽고 천식을 가진 사람에겐 발작 증세가 나타나는 시간대라고 한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약해지는 시간이다. 내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시간이 새벽 2시다. 새벽 2시쯤 되면 내가 별것 아닌 존재라고 굳게 믿게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버거워서 자꾸만 찬물을 마셔댄다. 무엇보다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이 멀게끔 느껴지고, 조각난 기억의 잔해들이 내 황량한 거실을 나뒹군다. 원고를 쓸 때도 새벽 두 시쯤 되면 참을 수 없는 초조함이 찾아온다. 내가 오늘 한 게 뭔가 싶고, 맨날 똑같은 글만 쓰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 더 최악인 건 기껏 쟁여둔 원고가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기 잘 걸리는 사람은 새벽 4시를 조심해야 하지만 뜬금없는 전화벨이 무서운 사람이라면 새벽 2시가 더 위험하니 주의 바란다. 안 풀리는 원고를 핑계 삼아 엄한 곳에 기댈 확률이 높다.
그렇게 마의 새벽 세 시가 오면 증세는 더 심해진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저도 모르게 전화통을 붙잡고,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가 라면 냄비에 물을 올린다. 고독은 이렇게 뜬눈 사이로 스며든다. 눈을 감기조차 어렵게 온 방 안을 부유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고독한 이의 책장엔 문학이 꽂혀있다. 도시가 잠들고 달빛마저 희미한 새벽이 오면 문학은 내 굽은 등을 정성스레 쓰다듬어 준다. 매번 내게 좌절감을 안기는 놈들이지만 모두가 잠든 새벽에 보면 꽤 멋스러워 보인다. 세계문학전집에서마저도 바바리코트를 입고 폼을 잡는 알베르 카뮈처럼 어디 가도 꿀리지 않을 녀석들이 허리춤을 한 번 추어올리고는 말문을 연다. 난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도 잠시 잊고, 떠나보낸 그를 다시 이불속으로 끌어당긴다. 흔한 연애담을 내 일처럼 보살피고, 더는 혼자 긍긍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려 깊게 낱말을 고른다. 우선 내일 출근해야 하니 여기까지만 하고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