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난 책 좀 본다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단연코 물고기가 최고라고 말했다. '너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거 아냐?'라고 주접을 떤 건 물론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왜 좋은지 설명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그냥 읽어보면 안다고 했다.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 덩달아 읽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내가 왜 물고기를 좋아하는지 잘 얘기해보고 싶다.
우선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저자 룰루 밀러가 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에게 몰두했는지 물어야 한다. 왜 그였을까. 스탠퍼드 초대 학장이자 분류학에서 굵은 발자취를 남긴 분류학자. 따분한 일 아닌가. 그래서 초반에 책을 읽다 말고 위키피디아를 전전했는데,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물고기와 산봉우리가 눈에 띄었다. 다윈의 '생명의 나무'를 밝혀내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평생을 몸 바쳤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회의 이곳저곳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학자로 크나큰 명성을 가졌으며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행복하게 살다 죽었다. 근데 그보다 내 눈에 띈 건 그에 관한 트리비아였다. 의심스러운 범죄, 우스꽝스러운 수집병, 으리으리하면서도 다사다난한 가족사까지. 그는 분명히 학자인데 다들 감언이설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학문적으로 이룬 성취보다 그가 써 내려간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는 건 그가 진짜 스타라는 점을 입증한다. 셀럽은 유명해서 유명한 사람 아닌가. 그가 그렇다고 패리스 힐튼처럼 어그로나 끄는 학자라는 건 아니고, 그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살았는데 영겁의 세월을 거치고 나니 우스꽝스러워진 사례다. 당시에는 과학으로 보였던 것들이 현재는 비과학으로 판명 났다. 21세기에 우생학이 웬 말인가. 우린 과학을 그 어느 것보다 엄정한 것으로 여기지만, 시대에 따라 제 모습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미신적인 것이 없지 않다. 스타 조던이 평생 샤머니즘을 비난해 온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무튼, 스타 조던은 우생학자에 살인 혐의까지 있으니 평가가 박해진 건 당연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 역시 평생 어류에 몸 바친 자를 향한 비난의 뉘앙스가 담겨 있으니 이 책을 쓴 '룰루 밀러' 역시 그 우스꽝스러움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우스꽝스러움의 정체는 뭘까. 그가 주장했던 바가 현재에 다다라 보니 다 틀렸기에 그런 걸까. 아니 그보다는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자기 일과 삶을 긍정했다는 데 있다.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진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다. 그는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다 무너져서 비참해진 처지에도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갔다. 룰루 밀러 역시 그의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긍정성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과학자의 삶을 다룬 책이지만, 비과학적인 인간의 심연을 헤쳐 나간다. 마치 풍덩! 물소리와 함께 까만 몸뚱이가 미끄럽게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는 잠수부처럼 길게 숨을 내쉰다.
룰루 밀러가 내쉬는 들숨은 삼킨 연기가 목에 걸려 캑캑거리는 것처럼 우여곡절이 많다. 스타 조던은 사실 작가의 생각처럼 무한한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 학자를 힘으로 누를 줄 알았고, 자신을 방해하는 이를 제거할 줄도 알았다. 그건 그가 학자 출신의 금수저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기인한다.
스타 조던은 태어날 때부터 저명한 학자의 길을 갈 것이 정해진 운명이었다. 사진을 검색해보라. 저명한 학자의 전형이다. 수염에 졸라맨 넥타이와 검은 양복 차림까지. 근엄한 표정으로 사선을 바라보며 찍은 모습까지. 미국 남부 텍사스주 공화당 의원 선거 포스터로 써도 된다. 스타 조던이 따랐던 '루이 아가시', '프랜시스 골턴' 어쩌면 '찰스 다윈'까지도 다 마찬가지다. 싸잡아서 죄송하긴 한데 그들은 계급상으로 시대를 휘어잡은 가문 출신이다. 위엄 어린 목소리로 세상은 이렇게 생겨먹은 거라며 한 소리씩 거들 힘이 있었다. 그들이 이룬 학자로서의 위업을 다 떠나서 난 주류의 목소리에 대한 이상한 반감이 들었다. '알겠다고. 신고 있던 슬리퍼를 던져서 판을 깨고 싶었다.' 미간에 힘 좀 빼고 에스프레소나 한잔하면서 쓸데없는 얘기나 하고 싶었다. '가족들은 다 건강해요? 애들은 공부 잘하고 있나요? 요즘 무슨 소설 읽으세요?' 난 다리를 꼬고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들이 하려는 말을 뭉갰다. '그렇게 힘주어 어려운 얘기만 쏟아내면 난 감당할 수 없다고요. 시시한 것, 사소한 것이 더 재밌다고요. 나뿐만 아니라 다들 마찬가질 걸요.' 찰스 다윈이라고 해봤자 사실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떻게 생긴 줄도 잘 모른다. 무슨 소릴 했는지도 별 관심이 없다. 루이 아가시는 시쳇말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세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위인들이다. 골턴은 시대의 악당으로 불린다. 동상을 지어봤자, 건물에 이름을 붙여봤자, 그깟 재단 하나 만들어봤자 관심을 끌 수 없다. 난 그들에게 나 같은 보통 남자에게 먹혀드는 얘기를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룰루 밀러의 책이 왜 날 그렇게 감복시켰는지 알만했다. 난 내가 숨 쉬고 고민하는 일상에 접목할 수 있을 만한 과학 이야기가 필요했다. 세상이 날 고달프게 할 때 그나마 할 수 있는 걸 얘기해줄 수 있는 대중 과학자가 그리웠다. 그들이 이룬 학문의 진위가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필요한 과학은 유머 감각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지닌 작가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였다. 룰루 밀러는 바로 이 지점에 창안해서 따분한 꼰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세계를 탐구한다. 그리고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창조한다.
룰루 밀러는 세상에 숨겨진 진귀한 비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상 구간에서 맴도는 얘기들도 과학사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침에 이불을 걷고 일어나서 보는 창밖 풍경에 관한 책이다. 하루의 기분을 결정하는 어떤 태도에 관한 얘기다. 허리춤에 손을 짚고 크게 내쉬는 후련한 날숨이다. 우선, 과학책이라는 레떼르를 가지고도 온기를 품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직관과 어긋나더라도 어떻게든 세상과 접목해 보려는 낮은 자세에 호의를 가진다. 진리가 주는 혼돈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에 감탄한다. 학자연하는 말 없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종의 기원이다. 진화는 거듭 실수를 반복했지만 그렇다고 다 틀려먹은 건 아니다. 그래, 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걸 알고도 충분히 물고기를 먹으러 대포항에 갈 수 있다. '사장님, 아무 물고기나 요즘 잡힌 실한 놈으로 썰어주세요. 전어, 대방어 뭐 그런 거요.'
룰루 밀러 씨는 스타 조던이 지닌 무지막지한 낙천성과 위기 극복 능력이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한다. 룰루 밀러가 보기에 스타 조던은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굽어본 것 같았다. 진화의 사다리를 쌓아 올리는 신의 섭리에 도전했다. 그는 진화의 비밀을 밝혀낸답시고 자기가 물고기에 명명 작업을 하면서 조물주가 되었다. 진화 계통도를 만들면서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떠드는 불평불만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속적인 문제들을 다 귓등으로 넘길 수 있었다. 룰루 밀러 자신이 연인과의 이별로 밑을 닦지 않은 기분에 시달릴 때 룰루 밀러식 극복 절차를 따르려고 했지만, 자기기만의 끝에 보이는 것은 오직 허무함뿐이라는 걸 상기한다. 인간이 개미나 풀과 다를 거 없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잔인한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라는 건 없다. 우린 열역학 제2 법칙에 순응해야 살아가는 미물에 불과하다. 스타 조던은 결국 거짓된 믿음에 놀아난 미신과 같은 학자로 역사에 남았다.
스타 조던의 전성기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를 위해 찾아간 '패니키스' 섬에서 보낸 나날이었다. 그의 짧았던 화양연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학자로서 모든 게 탄탄대로였던 시절.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보았던 젊은 학자의 나날. 날씨는 항상 맑고 자연은 찬란하니 남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니까 그가 스승 루이 아가시의 얘기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루이 아가시가 다른 말을 해줬다면! '사다리라는 건 없어 사다리를 걷어차라고! 너희들이 아무리 공부해봤자 허공만 헤집다가 끝날뿐이야. 그냥 앎 자체에 재미를 느끼면 여기 남고, 세상을 휘어잡을 비밀 어쩌고를 발견하겠다는 야심 따위를 논하려면 썩 꺼지라고.'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고, 횟집 사장도 아니면서 생명의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전 세계의 물고기를 잡아들였다. 긍정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그를 장악한 것이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어류라는 분류상의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직관에 완전히 벗어나는 이론이다.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친 물고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가 찾으려던 진보의 사다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다윈이 말한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지닌 진짜 의미는 우생학 따위에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인생의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성질상 영원한 불가해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