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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20. 2023

66번 반복하면 뭐라도 되겠지

운동할 때 다치고 싶지 않다면 이렇게

 글을 쓰려고 카페 한구석에 앉았는데 도무지 의욕이 나질 않았다. 며칠 전에 운동하다 다친 등이 계속 욱신거렸다. 통증이 유튜브처럼 내 몸과 생각을 앗아가 버렸다. 평소에 등 운동을 얼마나 했는데 광배근 좀 뻐근하다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날도 좋고 카페에 북적거리니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렇게 한참을 백지와 씨름하다 노트북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팝콘과 강냉이를 섞어서 파는 노점이 인산인해였다. 팝콘을 담는 컵에 소복이 담고 그 옆에서는 버터 황태구이를 팔았다. 아마도 건물 꼭대기에 새로 생긴 멀티플렉스 관객을 노린 것 같았다. '롯데시네마가 엄청 싫어하겠네.' 난 왜 저 생각을 못 했을까. 달곰한 강냉이와 짭짤한 팝콘을 섞어주면 얼마나 맛있을까. 바스락바스락 고소한 강냉이를 먹고 싶은 생각에 군침이 흘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새는 잡념이 검은 타르가 되어 내 몸에 뚫린 9개의 구멍으로 흘러나왔다. 더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걷잡을 수 없이 배가 고파졌고 편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수다를 떨며 놀고 싶었다. 아마도 오늘 운동을 못 가 생긴 부작용일 것이다.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했는데 아직도 운동하다 다치니 한숨만 나왔다. 운동에 서툰 사람이 쓴 운동 에세이를 과연 누가 읽을까. 걱정이 태산만큼 쌓여간다.


 며칠 전에 급하게 운동하다가 다쳤다. 딱히 사정이 있지도 않으면서 여차저차하다가  며칠간 운동을 빼먹은 게 화근이었다. 조바심은 죄책감으로 돌변해서 괜히 마음만 급해졌다. 헬스장을 안 갈 땐 늘 적당한 이유가 떠올랐는데, 다음 날 생각해 보면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머무는 헬스장을 건너뛸 이유라는 건 진도 5.0 이상의 지진 밖에는 없었다. 그래, 그냥 게을러서 가기 싫었던 거다. 그렇게 며칠을 건너뛰고 헬스장을 가면 나도 모르게 설레발을 친다. 며칠 전에도 자책과 불안을 주렁주렁 달고서 헬스장 거울 앞에 섰다. 몸에 살이 찐 느낌이 상당했다. 토실토실 살이 꽉 찬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난 쿠르베의 '절망하는 남자'가 지은 표정을 하고는 준비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준비 운동이 부족한 채 스쿼트를 하면 고관절이 덜 풀려서 부상 위험이 높다는 걸 알았지만 난 어서 평상심을 찾고 싶었다. 헬스장 벽에 붙은 근사한 달력 모델처럼 여유만만한 상태가 되고 싶었다. 첫 세트를 하고 힘들어서 자세가 흐트러졌지만, 그냥 밀고 나갔다. 어느새 허리와 등이 뻐근해지기 시작했지만 내가 운동 경력을 믿고 밀어붙였다. 그러다 세 번째 세트를 하면서 더는 무리라는 깨달았지만, 주위 눈치를 보느라 바벨을 빼지 못했다. ‘근데 누구 눈치를 봐?’ 주위에 다 모르는 사람들인데 누가 누구 눈치를 본단 말인가. 저 염색한 작자는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니라서 말 한 번 섞은 적 없고, 지엑스 룸의 빡빡이는 나랑 머리 스타일만 비슷하지 골프 스윙 연습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내가 눈치를 보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거울 속에서 흉측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나. 난 나를 미워하기 싫었다. 허구한 날 운동을 빠지는 날 한심하게 보기 싫었다. 운동을 빼먹지 않았던 며칠 전의 나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옆구리에 팔을 얹은 채 날 지적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네 몸을 고스란히 돌려놓을 테니.' 난 눈을 내리깔고 무리해서 운동을 계속했다. 등허리가 퍽퍽한 닭가슴살처럼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힘든 일상인데 싸울 사람이 없어서 며칠 전 나하고 싸워대는 꼴이라니. 기껏 싸웠으면 이기든가. 한심하게도 나한테도 져서 몸에 탈까지 났다.


 누가 보면 이런 내 자의식 과잉을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실컷 비웃어라.'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건 루틴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정체 현상에 불과하다. 영국 작가 앤서니 트롤럽은 잠도 없는지 이른 아침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아서 소설을 쓰고 출근했다. 대단한 정신력이다. 근데 더 주목할만한 건 그는 글을 쓸 때 회중시계 하나를 책상에 올려놓고 15분에 250자를 균일하게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그는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분량을 쓰고 펜을 내려놨다. 심지어 장편소설 하나를 다 쓰고 나서도 그날 정해진 시간이 남아있으면 다음 소설 챕터 1을 쓰다가 출근했다고 하니 기계적인 루틴을 가진 사람의 극단이라고 볼 수 있다. 나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스무 살 초입부터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비슷한 시간에 퇴근했다. 헬스장도 마찬가지로 퇴근 시간에 맞추어 갔고, 헬스장을 나와야 밥을 먹었으며, 저녁밥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같은 카페 같은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 자정쯤 집에 들어가서 잠자리에 들었다. 근데 헬스장을 빼먹으면 균일한 일과가 삐걱거렸다. 차곡차곡 잘 쌓아가던 루틴이 흐트러지면서 평정심이 달아났다. 나는 앤서니 트롤럽이 되고 싶었지만, 루틴이 무너지면 괴상망측한 사고나 날 잠식해 버렸다. 온화함 속에 가려진 내 또 다른 자아가 내면 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루틴이 무너지는 첫 번째 부작용은 SNS다. 질투와 부러움을 자아내는 잘난 놈 천지인 인스타와 브런치에는 낸 눈을 사로잡는 이들이 가득하다. 특히 근사한 몸을 가진 헬스 유튜버는 운동 별거 아니라면서 200킬로에 가까운 쇳덩이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요즘 내가 보는 헬스 유튜버는 씨범이라고 불리는 '크리스 범스테드'라는 보디빌딩 선수인데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운동 수행 능력이 역대급이라서 입을 쩍 벌리고 본다. 동기 부여를 받으려고 보는데 나는 안된다는 자괴감만 불러일으키는 선수다. 난 유튜브를 보며 다짐에 극단적인 자기 비하를 섞어낸다. '내일 또 헬스장을 빼먹는다면 나는 네 놈 면상에 침을 뱉어줄 터다! 널 침대에서 떨어뜨리고 머리채를 붙들고 몇 가닥이라도 뽑아내서 머털도사처럼 널 소로 만들어줄 주문을 욀 테다!'


 헬스장을 빼먹을 때 나타나는 두 번째 부작용은 헛것을 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내 아랫배가 청어 기름처럼 비릿하게 흘러내리는 형상이 계속 날 따라다닌다. 특히 잠자리에 누웠을 때 더 심해지는데 천장에 오늘 내가 극악무도하게 먹은 것들을 떠올린다. 샤워하다 말고 거울 속 내 배를 만지면서 이건 살이 아니라 숨이 들락거리는 거라고 믿고자 애쓴다. 그럴 땐 케겔 운동이라도 해야지 잠을 청할 수 있다. 성급한 맨몸 스쿼트와 팔 굽혀 펴기가 잇따른다. '내일은 씨발 꼭 헬스장에 가고 만다.' 중얼거리면서 내일의 나에게 꼭 운동하러 가라고 압박을 가한다. 그렇게 불면의 와중에도 어렵사리 잠에서 깨도 내일의 나는 들은 체도 않고 아침부터 맥심 모카골드를 타 마신다. '이런 오늘만 사는 작자 같으니!' 이렇게 실패를 반복하면 난 괜히 여자친구에게 화를 내고 냉소적으로 말을 받는다. 애인과 사이가 나빠지면 세 번째 부작용으로 새벽까지 쌈질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해 컨디션이 나빠진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다 배 나온 괴물이 돼서 헬스장을 찾으면 무리수를 남발하다가 등허리를 다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루틴에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생각을 다림질하고픈 욕심도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한때는 말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고민을 길고 난해한 문장으로 쓰는 걸 멋으로 여겼다. 정돈이 아니라 더 큰 혼란을 써내고 싶었다. 하지만 혼돈은 그 자체로 혼돈이지 좋은 글이 되기는 어려웠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든지 정치권 문제라든지 계간지 어느 자 작가가 쓴 논평에 관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썼다. 정리는커녕 의문과 불만을 동력 삼아 더 뻗어나갔다. 자료 조사도 없이 통찰이랍시고 서툰 사고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일갈했다. 간혹 가다 누군가가 내 글을 주의 깊게 읽고 다정한 말을 남겨주시면 마치 신탁이라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답글을 적었다. 혹자가 감탄하는 듯한 말로 “너는 정말 아는 것도 많고, 생각도 많구나”라고 얘기라도 해주면 지체 없이 자뻑에 취했다. 가끔 나를 놀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그냥 내가 잘 써서 그러는가 보다 하고 넘겼다. 이 정도 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도 용기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뻐기는 글을 자주 올리면서 현학적이라는 칭찬에 도취했다. 헬스장에서 남 눈치 보느라 운동도 제대로 못 하고 샤워장 거울 속에 심취한 내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잘 생각해 보면 내가 공격적이고 뭣도 모르는 지식을 나열할 때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은 댓글로 ‘나도 한때 그랬지’라는 식의 위로를 보냈다. 다정하게 내게 공감 어린 말을 보태주셨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속이 꼬여서는 답글로 당신은 내 고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내쏘았다. 내가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들은 너그럽게도 내 투정을 어린 시절 치기로 받아줬고, 난 지금 그때를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난 유달리 다정한 말로 교훈을 되새기는 글에 취약했다. 감상적인 문장이 하나라도 보이면 거짓부렁이라고 무시했다. 난 위선보다 위악을 쫓는 독설가였다. 요즘 들어 따듯한 글이 점점 더 좋아졌다. 쉬운 위로나 섣부른 교훈이라는 말 대신, 오래 생각한 끝에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순수하게 지식을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치중한다. 차갑게 툭툭 뱉던 게시글을 삭제하고 지금은 아닌 척 손발이 따듯한 남자인 척 글을 쓴다. 속근보다는 지근을 더 생각하는 운동이랄까.


 운동할 때도 다를 게 없다. 예전에는 근력을 단련하는 목적이 단연 누군가에게 비치는 모습을 가꾸는 것이었다. 바벨 봉에 무게를 최대한 달아서 우악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한두 번 드는 척하고 말았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180kg 노 스트랩, 노 벨트로 성공'이라고 달고는 의기양양했다. 드넓은 헬스장을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온갖 기구를 섭렵하면서 허세를 떨었다. 건강한 단련을 신경 쓰기보다는 누구라도 인정을 해주기를 바라는 객기였다. 요즘에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전신 운동에 가까운 다관절 운동으로 몸을 달구며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속도와 자극에 더 신경을 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벨을 실어 나르던 풋내기 시절을 벗어나서 내가 어딜 단련하는지 생각하며 운동한다. 다치고 나서야 나이에 따라 운동 방식도 달라져야 함을 느꼈다. 내가 이런 말을 진지하게 꺼내니 친구는 그거야말로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일축했다. ‘늙어간다는 두려움을 그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


 한때 나와 함께 운동을 다니던 친구는 '생각하느라 바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땐 미처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을 지금에 이르러서야 이해할 수 있다. 그 친구는 여드름처럼 솟아오르는 고민거리를 제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난 전혀 이해할 생각 없어서 친구의 심각한 표정을 외면했다. 당연히 그 친구는 헬스장을 자주 빼먹었고, 난 득달같이 따지고 들었다. 헬스장에서 도와달라고 말도 안 꺼냈는데 가르치려고 드는 얼치기처럼 일장 연설을 했다. '무슨 일인데 헬스장을 빠지냐. 누가 지구멸망이라도 한대냐.' 친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는 한산한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우린 서로 삐져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내 눈을 외면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야당 원내대표 선거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모놀로그처럼 늘어놓았다. '저 양반 피부관리로만 일 년에 3억을 쓴대. 확실히 요즘에는 정치인도 외모가 다인 것 같아.' 이 새끼가 웬 개소리야. '그렇게 따지면 외모지상주의가 아닌 곳이 어디 있냐. 너만 해도 예쁜 여자 만나보려고 하는 거잖아. 그렇게 정신머리가 딴 데 가 있으니 운동이 잘 될 리가 있냐. 아 근데, 운동하러 왜 안 나오냐니까.' 친구는 텔레비전 볼륨을 더 높였다. '야, 소리 안 줄이냐.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나는 잡아먹을 것처럼 눈을 희번덕 뜨고 위협했다. 녀석은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싫다고 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 위악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비엔나소시지를 씹어댔다. 성인이 된 이후 거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던 베토벤처럼 머리를 단발로 기른 녀석은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이 텔레비전만 쳐다봤다. 성질 같아서는 녀석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어렵사리 참았다. 나는 최후통첩과 같이 따져 물었다. '넌 그간 나랑 운동한 게 아깝지도 않냐. 매일 그렇게 빠지면 다 도루묵이잖아. 어제는 또 왜 안 왔어.' 친구는 나를 슬쩍 보더니 다시 TV로 눈을 돌리고는 짧게 답했다. '미안해. 일이 많은 데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 나는 무식하게 덩치만 큰 놈이 예민한 척 구는 꼴이 아니꼬워서 말도 없이 식당을 나섰다. 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YTN 돌발영상을 시청했다. '이런 돌발새끼.'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친구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우스꽝스러운 배경 음악이 날 조롱하듯 따라왔다. 엘리베이터에서 헬스장으로 가는 지하 1층 버튼을 눌렀다. 그 이후로 녀석과 멀어졌다.


 그때 내 마음은 업신여김과 오만함이 있었다. 도대체 운동을 빠질 만큼 어려운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운동을 하지 못할 이유라는 건 1,235,353,234가지 정도는 된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그때 친구로서 내 역할은 무슨 고민인지 캐묻는 게 아니라 녀석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닦달할 게 아니라 잘 구슬려서 설득했어야 했다. 위로의 한 마디를 보내고 운동으로 이겨내자고 해야 했다. 아닌가. 오늘은 같이 운동 빼먹고 곱창이라도 먹자고 해야 했나. 잘 모르겠다. 변명하자면 당시 나도 모든 게 엉망이었다. 난 친구와 달리 엉망진창이 된 일상을 운동을 하며 푸는 스타일이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식단이 불규칙해졌고 살이 쪄가면서 속병이 나니 운동을 빠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근데 친구가 안 따라주니 화가 난 것이다. 내 노이로제 증세는 다분히 공격에 가까운 화법으로 나타났고, 친구는 나를 멀리했다. 당시 친구의 얼굴은 나 못지않게 피곤해 보였고, 때 이른 결혼과 이직에 대한 중압감에 이마가 움푹 파여 있었다. 하지만 난 결국 나를 더 불쌍히 여겨서 친구를 저버렸다. 내 운동 강박이 부른 슬픈 이별이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벤츠프레스에만 골몰했던 그 시절의 경험은 루틴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상기한다. 혼자 민첩하고 영리하게 나만의 루틴 속으로 도망쳐서 뭘 얻은 것일까. 요즘도 가끔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녀석의 근력 상태를 훔쳐본다. 생각이 많아져서 운동이 잘 안 된다는 피드를 보며 안도한다. 그래도 다행인 게 우린 운동하며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


 다쳤던 등이 조금 나아지고 나서야 헬스장에 갈 수 있었다. 헬스장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게 나아짐을 느꼈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66번의 반복이 진실을 만든다고 했다. 습관은 힘이 세다. 내 자유의지는 헬스장을 귀찮아하지만, 습관은 퇴근 후에 지친 날 별생각 없이 헬스장으로 끌어낸다. 거기엔 어떠한 머뭇거림도 없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하고 밖을 나서니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각오가 생겼다. 눈 깜짝할 새 나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내 글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새 내가 쓴 운동에 관한 에세이를 칭찬해 주시는 분도 생겨났다. 나는 헤프게 웃으며 내 글에 대한 칭찬을 제대로 듣고 싶은 마음에 구독자의 댓글에 오버해서 기쁨을 표했다. 유심히 보니 내 운동에세이는 주야장천 루틴을 향한 찬양으로 도배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보수적인 조직에서 겪은 내 스트레스를 운동이라는 고반복 고립 운동으로 풀어내는 꼴이었다. 난 똑똑하면서 바보짓을 하고, 섬세하면서 아둔하고, 늠름하면서도 매사 서툴렀다. 그 누구보다 교양을 중시하면서도 무식한 말을 일삼았지만, 헬스장을 다니면서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쇳덩이를 들었다 내리면서 난 변칙을 감내할 줄 아는 솜씨를 얻었다. 이제 들쑥날쑥한 내가 차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헬스장과 백지 종이뿐이라는 걸 잘 안다.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며 헬스장을 나서니 어김없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역시 운동하고 몸이 화끈거리는 상태로 쓰는 글이 최고였다. 부푼 내 배는 아마도 66번 헬스장을 방문하기 전에 쉽사리 예전처럼 홀쭉해질 것이다. 영화관만 가면 틀어대는 365mc 광고처럼 내 아랫배는 외과 수술 없이는 평생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기필코 헬스장을 들를 것이다.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서. 제대로 잠을 청하기 위해서. 내 곁에 선 다정한 이들을 위해서.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하루키의 부지런함을 닮기 위해서. 66번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진실을 글로 적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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