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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8. 2023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꽉 낀다

 퇴근 30분 전, 이미 정신은 사무실 밖에 나서있다. 딱히 약속이 있는 건 아닌데 퇴근은 당최 무슨 이유에선지 항상 설렌다. 비싼 커피를 18잔이나 마시고 받은 스타벅스 다이어리에다가 퇴근 후 동선을 그렸다. 설레긴 설레는지 매일 똑같은 걸 하면서도 디테일만큼은 야무지게 써냈다. 우선 오늘 등 운동을 해야지. 광배근 상하부와 하부 승모근에 맛있게 자극을 먹일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어서 저녁 식사 메뉴를 따져봤다. 단백질과 열량의 적절한 안배가 중요한데, 매번 어렵사리 고르고 고르지만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우선, 구내식당 메뉴 창을 띄웠다. ‘덴뿌라에 감잣국... 이런 하찮은!’ 식판 위에 담으면 뭐든 볼품없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SNS에 찍어 올리면 조롱과 위로를 동시에 받을만한 메뉴였다. 음... 고민이 됐다. 회사 구내식당은 장점이 뚜렷하다. 혼자 먹어도 별로 눈치 볼 게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손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싸다. 난 혼밥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녁 프라임 타임에 식당 4인석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먹기는 싫다.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웃고 떠들 때 혼자서 수저를 들면 마치 초대받지 않은 예식 연회장에서 훈제 연어를 씹는 처량한 맞은 기분이 든다. 안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사장님 시선을 받아내는 것도 고역이다. 쥐꼬리만큼 주고는 만 원이 훌쩍 넘는 살인 물가는 어떤가. 그렇다고 혼밥인을 위한 식당은 실내가 비좁아서 별로다. 등이 뻐근하다고 팔을 휘둘렀다가는 세 명 정도가 고함을 지를만한 크기 아닌가. 그렇게 저녁 식사를 하면 마음조차 비좁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 구내식당은 늘 내게 0순위다. 혼밥을 해도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와이티엔 뉴스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장소다. 창밖을 보면서 후식으로 프로틴 셰이크도 마실 수 있을 만큼 여유도 있다. 구내식당의 치명적인 문제라면 식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간혹 가다 돼지불백에 상추쌈이 나와서 가성비가 있지만, 오늘처럼 영양사님이 직무를 유기하면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단이 나온다. 하긴 그 가격에 뭘 더 바랄까. 그건 욕심이지.


 별수 없이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카카오맵으로 근방 1킬로 내 식당을 모니터에 띄웠다. 누가 내 모니터를 볼세라 ‘Alt+Tab’으로 업무 보고서와 맛집 포스팅을 번갈아 띄웠다. 회사 근처 몇몇 식당을 불러냈다. 별은 3.5 이상의 평을 얻은 식당 위주로 정렬했다. 혼자 가기 어려운 술집이나 고깃집은 빼자. 그건 청승맞다. 밀가루 덩어리인 피자집이나 파스타도 탈락이다. 그런 식당은 고작 소개팅용일 뿐이다. 값비싼 식당도 지갑 사정상 나가리다. 대기 줄이 긴 식당도 아웃 오브 마인드다. 시간이 금인데 커플 사이에서 뻘쭘해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다 걸러내면 정말 갈 데가 없다. 이제 정말 몇 개 안 남았다. 고민 끝에 최종 후보 세 곳을 추려냈다.


 A 백반집은 생선구이 정식이 유명하다. 최근에 값을 올렸지만 늘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님이 손수 구워주시는 고등어가 일품이다. 근데 문제는 작년 이맘때쯤 반찬에서 담배꽁초 나와서 떠들썩했다는 점이다. 꽁초가 대체 어떻게 시래기 무침 속으로 침투했을까. 반찬 재사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업주는 경쟁업체가 쓴 리뷰라고 블랙컨슈머에 법적 조치를 취할 거라며 엄포를 놨지만, 왠지 찝찝하다. B 고기 국숫집은 어떨까. 리뷰 사진 속 돔베고기가 참 맛있어 보이는데, 몇몇 댓글을 보니 음식이 너무 짜단다. 자기가 쓰는 죽염 치약보다 더 짜서 놀랐다고 한다. 짜면 탈락!. 기껏 땀 흘려서 운동해 놓고 근육에 소금 간을 칠 순 없다. 그럼, C 돈가스집으로 갈까. 수려한 외모로 유명한 모 셰프가 여기가 찐 맛집이라고 자기 인스타에 소개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거의 생살에 가까울 만큼 부드러워서 나 역시 좋아한다. 다만 안심 돈가스가 무슨 보쌈 한 판 가격이다. 안심은 단백질이 풍부해서 좋아하지만, 안심하려고 먹으려다가 등신처럼 한 끼에 이만 원을 써야 할 판이다. 여기도 제외! 결국 선택을 유예시키고 헬스에 집중하기로 했다. 고픈 배는 프로틴 셰이크로 달래면 되니까.


 헬스장을 나오니 청량한 봄의 제전이 펼쳐졌다. 산책을 좀 하고 싶었지만 넘겨야 할 원고가 산더미라 빨리 밥 먹고 카페에 가기로 했다. 회사 근처 먹자골목을 배회했다. 어느ᅠ집은ᅠ사람이ᅠ가득했고, 어느ᅠ집은ᅠ텅ᅠ비어있었다. 손님이 많으면 북적여서 싫고, 손님이 없으면 뻘쭘해서 또 싫었다. 눈여겨봤던ᅠ백반집은ᅠ불이ᅠ꺼져있었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던 샐러드 집도 망해서 폐허만 남았다. 이 골목 저 골목 식당이 가득한데 당최 내가 먹을만한ᅠ식당이ᅠ없었다. 봄밤은 오직 그들만의 축제처럼 여겨져서 살짝 소외감이 들었다. 화사한 분위기에 눌려 그 어디도ᅠ내키지ᅠ않았다. 방금 등 운동을 해서ᅠ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어 버렸는데 마음ᅠ놓고ᅠ먹을ᅠ곳이ᅠ없다니.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세븐일레븐에 들렀다.


 편의점은 생각보다 식단 하기가 용이하다. 기분만 좀 누추할 뿐 요즘에는 여느 식당보다 깔끔한 곳도 많다. 우선, 가장 먼저 닭가슴살을 집어 들었다. 맛은 핫바처럼 생긴 가공육 닭가슴살 소시지가 좋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생 닭가슴살을 고스란히 도려낸 제품을 택했다. 그리고 음료는 아몬드 브리즈를 골라서 당 없이 건강한 지방을 챙겼다. 양이 부족할까 봐 저열량에 고단백인 게살 킹크레미도 하나 넣고, 탄수화물로 찰현미 햇반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막 디저트로 제로 콜라까지 집어 드니 어느새 만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할인 카드를 써도 별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모둠초밥 가격이 나왔지만,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에 섭취가 필요한 단백질량을 거의 다 채운 셈이니까.


 편의점을 나와서 평소 자주 가는 드립 커피집을 찾았다. 식사에는 그토록 가성비를 따지면서 커피값은 전혀 아끼질 않는다. 오랜만에 예가체프 원두에 휘낭시에를 찍어 먹었다. 한때 제과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휘낭시에라는 이름은 재력가 혹은 자본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만큼 지갑이 두툼한 이들이 해마다 선물용으로 주고받던 고급 과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생김새도 금괴 모양이라나. 임대료 내기도 버거워 보이던 친구가 해준 말이라서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케이크 먹기에는 열량과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가끔 먹는 과잔데, 담백하게 생긴 외형과 달리 대량의 밀가루와 버터가 들어간다니 뜨악했다. 녹차 가루가 뿌려져 있으면 살이 안 찐다고 착각하기 쉽다. 자본가들의 배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알만하다. 요즘에는 칼 같이 식단을 할 수 있는 게 부의 상징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내가 왜 그리도 식사를 챙기는데 애를 먹는지 알만했다. 녹오늘은 돈가스나 고기국수 대신 깔끔한 편의점 식단으로 해결했으니 휘낭시에 하나 정도는 즐기기로 했다.


 여기까지 이렇게 적고 보니 헬스는 반절 이상이 식욕과의 싸움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뭘 먹는가가 늘 숙제와 같다. 먹는 걸 참 좋아하지만 잘 챙겨 먹는다는 건 참 버거운 일이다. 매일 밤 라면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먹방 유튜버를 보는 것조차 나를 달래는 노동이다. 오죽하면 라면이라도 죄책감을 덜고 먹으려고 신라면 건면을 사서 국물 위로 달걀을 다섯 개씩 넣을까. 비극적인 건 나이 들수록 몸무게가 더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 조짐이 없으면 재미가 떨어지고 식단을 할 용기도 줄어든다. 나이에 순응하게 되고, 일정 패배를 인정해야 함을 실토하는 말이 저도 모르게 글에 묻어난다. 노화라는 건 생전 눈에도 보지 않았던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에 꽂힌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안티에이징이 시대 모토가 된 세상에서 건강한 몸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운동 얘기를 하면서 식단 얘기가 빠지지 않는 건 아마도 보디빌딩이 근육을 만들고 몸에 있는 불필요한 지방을 걷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건강한 몸이라는 건 오장육부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걸 의미함을 부정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밥 먹을 데가 마땅치 않으면 식당이 한 입만 찬스를 메뉴에 넣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먹는 걸 가장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한 입만 사서 먹고픈 심정이다. 테이크아웃 커피점처럼 창 바깥으로 '한 입만' 떠서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격은 한 숟갈에 천 원, 티스푼이면 오백 원 어떨까. 초밥 한 입, 불닭 한 입, 메밀국수 한 입. 선택 부담은 줄어들고 다채로운 맛의 세계로 떠날 수 있으니까. 업주도 박리다매 효과가 있지 않을까. 걸으면서 먹는 게 소화도 잘될 텐데. 유유히 배를 채우고 스치듯 골목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혼밥이라고 눈치 볼 필요 없이, 열량 계산에 시달리지 않고 유유히 카페에 안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군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얼굴도 초등학생 때처럼 통통해졌다. 내 몸은 점점 살이 올랐지만, 유튜브 속 셀럽들 몸은 날이 갈수록 가볍고 섬세했다. 그해 들어, 내 몸은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가슴과 허벅지, 엉덩이에 살이 차올랐다. 나는 헬스장에서 점점 더 우울하고 신경질적으로 기구를 들었다. 해가 갈수록 드는 중량도 무게도 감소해서 마음처럼 들기도 힘겨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고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문장을 잘 써보려고 해도 힘만 잔뜩 들어가고 글을 어디서 끝맺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힘을 줄 곳과 힘을 뺄 곳을 분간하기가 이토록 어렵다니. 이런 고민을 누구에게도 고민을 터놓지 못했고 툭 터놓고 물어볼 곳도 없다. 나는 틈만 나면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옷을 벗고 몸을 관찰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낯설었다. 다시 사춘기가 오는 기분이랄까.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그간 해온 모든 노력이 빛이 바랜 느낌이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탄탄했던 몸이 변해 있었고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피부도 망가지고 있었다. 이마와 턱 주변으로 뾰루지가 두더지 게임처럼 나를 놀리듯이 번갈아 가며 솟았다. 두더지를 때려죽이면 그때부턴 고름으로 변해서 흉터를 남겼다. 난 몸이 계속 변해서 어느 순간 아저씨가 되어 있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그렇게 되면 여자친구도 날 떠나겠지. 시시때때로 이런 스트레스는 폭식으로 이어졌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나는 내 몸속에서 꿈틀대는 허기진 각설이의 춤사위에 사로잡혀서 근심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게 급선무다. 내가 왜 헬스장을 다니고 몸을 만드려는지 탐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운동이 포개진 삶에 관한 글도 쓸 수 있을 거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별생각 없이 일상을 습관으로 채우는 걸 이상적으로 여기지만, 그동안 나는 너무 과하게 닥치고 그냥 하라고 나를 몰아세웠다. 친구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 만큼 운동과 몸 관리에 집착했다. 운동이라면 뭐든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뭐든 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운동하는 나를 철석같이 믿고 살았지만, 사실 진짜 나는 헬스와 몸만들기에 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뿐이었나 싶다. 누구에게든 내가 관리하며 사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 괜찮다는 정도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나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게 다 부질없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그토록 땀을 흘리고 고통을 참아오던 날이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내 이런 사고방식은 내가 읽어온 책에서 유래했다. 난 일류 작가의 검약한 삶을 보면서 나 자신과 부당한 조약을 맺은 셈이었다. 타인의 칭송을 받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에 갇혀 살아왔다. 그 부작용으로 난 멋진 몸을 가진 인플루언서와 날 일치시키려 들었다. 기준과 점차 멀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파져 왔다. 호통을 치고 아주 쉽다고 뻥을 치는 호사가의 말을 맹신했다. '점심은 프로틴에 저녁은 닭가슴살입니다. 배고픔이 기본값이니 변수를 만들지 마세요.' 나는 그들과 분리한 나 자신을 보아야 했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평범한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평범한 몸을 기준으로 삼고 더 나은 기분과 몸 상태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물론 더 노력해서 성취감을 얻을 수도 있을 테지만 불필요한 강박은 다 놓아버려야 마땅하다. 과제처럼 해치우는 몸 관리가 아닌 즐겁게 나를 살피는 식단이 필요하다. 


 체중이 불더니 별얘기를 다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이 헬스에 관한 책 한 권을 쓰게끔 했으니 헛된 일만은 아니리라. 배가 고파지면 죄책감이 사라졌다가 배를 채우면 다시 가책을 느끼는 그런 심정이야말로 내가 쓰려는 글의 요체니까. 몸무게가 거의 칸첸중가 손톱바위 꼭대기까지 올라서니 더는 도망칠 데가 없어서 글로라도 다이어트를 한달까. 문장은 너저분하지만, 식단만큼은 깨끗하게 하려는 나의 애씀이 요설로만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매주 가다시피 했던 초밥집도, 이마트에서 늘 가지도 나오던 칼집 삼겹살도 더는 주문하지 않는 게 나이 듦을 거부하는 철없는 투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거부할 수 없는 내 뒤꽁무니다. 이제 곧 여름이 닥쳐올 것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살이 쪄서 그간 사놨던 라코스테 피케 티셔츠를 다 당근 마켓에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분명히 잘 맞았는데 요즘 입어보니 꽉 끼는 게 이번 여름에는 새 옷 입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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