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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09. 2023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Ver. 2.0

ᅠ 퇴근 30분 전, 이미 정신은 사무실 밖을 나섰다. 딱히 약속이 있는 건 아닌데 퇴근은 당최 무슨 이유에선지 항상 설렌다. 고작 몇 시간도 못 돼서 일을 하기 위해 잠에 들 것을. 맘 놓고 새벽까지 놀지도 못하면서. 출근을 담보로 한 퇴근이 뭐 그리 좋다고. 내일 아침이면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지하철에 오를 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서너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다이어리에 퇴근 후 일정을 짧게 메모했다. 비싼 커피를 18잔이나 마시고 받은 다이어리는 마치 브레인스토밍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퇴근 후의 삶을 장식하는 데 쓰인다.


 우선 퇴근하면 등 운동을 해야 한다. 광배근 상하부와 하부 승모근에 어떤 자극을 먹을까 생각하니 기쁜 마음으로 세트 수와 운동 강도를 정할 수 있었다. 이어서 저녁 식사 메뉴를 따졌다. 단백질과 열량의 적절한 안배가 중요한데, 매번 어렵사리 고르고 고르지만 가장 어려운 과제다. 우선, 구내식당 메뉴 창을 띄웠다. '덴뿌라에 감잣국... 이런 하찮은!' 식판 위에 담으면 뭐든 볼품없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블라인드에 이런 메뉴를 찍어 올리면 조롱과 위로를 동시에 받을만한 메뉴였다. 음... 고민이 됐다. 회사 구내식당은 장점이 뚜렷하다. 혼자 먹어도 별로 눈치 볼 게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손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싸다. 난 혼자 밥 먹기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녁 프라임 타임에 식당 4인석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기는 싫다.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떠들 텐데 혼자서 수저를 들면 마치 초대받지 않은 돌잔치에 가서 탬버린을 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안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사장님의 시선을 받는 것도 고역이다. 쥐꼬리만큼 담아 주고는 만 원이 훌쩍 넘는 음식값은 또 어떤가. 그렇다고 혼밥인을 위한 식당이라고 크게 써 붙인 곳에 가면 이상하게 눈치가 보인다. 그런 식당은 팔을 잘못 휘둘렀다가는 세 명 정도가 고함을 지를 만큼 비좁다. 무슨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 삭막하고 고립되는 기분이 든다. 나는 혼자라고 유난을 떠는 꼴이라서 기피한다. 그런 데서 저녁 식사를 하면 마음조차 비좁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 구내식당은 늘 내게 0순위 고려 대상이다. 회사라서 혼밥을 해도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와이티엔 뉴스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장소다. 구내식당의 치명적인 문제라면 식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간혹가다 돼지불백에 상추쌈이 나오면 가성비가 있지만, 오늘처럼 영양사님이 직무를 유기하면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단이 나온다. 하긴 그 가격에 뭘 더 바랄까. 그건 욕심이지.


 ᅠ별수 없이 회사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카카오맵으로 근방 1킬로 내 식당을 모니터에 띄웠다. 누가 내 모니터를 볼세라 'Alt+Tab'으로 업무 보고서와 맛집 포스팅을 번갈아 띄웠다. 회사 근처 몇몇 식당을 불러냈다. 별은 3.5 이상의 평을 얻은 식당 위주로 정렬했다. 혼자 가기 어려운 술집이나 고깃집은 뺐다. 그건 청승맞다. 밀가루 덩어리인 피자집이나 파스타도 탈락이다. 그런 식당은 고작 소개팅용일 뿐이다. 값비싼 식당도 지갑 사정상 나가리다. 대기 줄이 긴 식당도 아웃 오브 마인드다. 시간이 금인데 커플 사이에서 뻘쭘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다 걸러내면 정말 갈 데가 없다. 이제 정말 몇 개 안 남았다. 고민 끝에 최종 후보 세 곳을 추려냈다.


 1번 후보 백반집은 생선구이 정식으로 유명하다. 최근에 값을 올렸지만 그건 물가 탓이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허리가 굽은 할머님이 손수 구워주시는 고단백 고등어구이가 일품이다. 근데 문제는 작년 이맘때쯤 반찬에서 담배꽁초 나와서 떠들썩했다는 점이다. 꽁초가 대체 어떻게 시래기 무침 속으로 침투했을까. 반찬 재사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업주는 경쟁업체가 쓴 리뷰라며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왠지 찝찝하다. 2번 후보 고기 국숫집은 어떨까. 리뷰 사진 속 돔베고기가 참 맛있어 보였는데, 몇몇 댓글을 보니 음식이 너무 짜단다. 자기가 쓰는 죽염 치약보다 더 짜서 놀랐다고 한다. 짜면 탈락! 기껏 땀 흘려서 운동해 놓고 근육에 소금 간을 칠 순 없다. 그럼, 3번 후보 돈가스집으로 갈까. 수려한 외모로 유명한 모 셰프가 여기가 진짜 맛집이라고 자기 인스타에 소개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거의 생살에 가까울 만큼 부드러워서 나 역시 좋아한다. 다만 안심 돈가스가 무슨 보쌈 한 판 가격이다. 안심은 단백질이 풍부해서 좋아하지만, 안심하려고 먹으려다가 등신처럼 한 끼에 이만 원을 써야 할 판이다. 여기도 제외! 결국 선택을 유예시키고 헬스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이어리에는 내 심란함을 보여주는 동그라미와 별표 따위가 흉측하게 그려져 있었다. 우선 고픈 배부터 단백질 셰이크로 달랬다.


ᅠ 헬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오니 청량한 봄의 제전이 펼쳐졌다. 산책을 좀 하고 싶었지만 넘겨야 할 원고가 산더미라 재빨리 밥 먹고 카페로 갈 생각이었다. 회사 근처 먹자골목을 배회했다. 어느 집은 사람이 가득했고, 어느 집은 텅 비어있었다. 손님이 많으면 북적여서 싫고, 손님이 없으면 또 뻘쭘해서 싫었다. 눈여겨봤던 백반집은 불이 꺼져 있었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던 샐러드 집도 망해서 잔해만 남았다. 이 골목 저 골목 식당이 가득한데 당최 내가 먹을만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았다. 봄밤은 오직 그들만의 축제처럼 멀찍이서 반짝였다. 왠지 모를 소외감이 들었다. 역시 헬스는 고독한 운동인가. 거리의 화사한 분위기에 눌려 그 어디도 내키지 않았다. 방금 등 운동을 해서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어 버렸는데 마음ᅠ놓고 먹을 곳이 없다니.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세븐일레븐에 들렀다.


 ᅠ편의점은 생각보다 식단을 관리하기에 용이하다. 기분만 좀 누추할 뿐 요즘에는 여느 식당보다 깔끔한 곳도 많다. 역시 요즘 트렌드는 보기 4번 기타 등등이다. 우선 닭가슴살을 기세등등하게 집어 들었다. 맛은 핫바처럼 생긴 가공육 닭가슴살 소시지가 좋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생 닭가슴살을 고스란히 도려낸 제품을 택했다. 그리고 음료는 아몬드 브리즈를 골라서 당 없이 건강한 지방을 챙겼다. 양이 부족할까 봐 저열량에 고단백인 게살 킹크레미도 하나 넣고, 탄수화물로 찰현미 햇반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막 디저트로 제로 콜라까지 집어 드니 어느새 만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럴 거면 초밥 도시락을 먹었어야 했나. 할인 카드를 써도 별수 없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에 섭취가 필요한 단백질량을 거의 다 채운 셈이니까.


 ᅠ편의점을 나와서 평소 자주 가는 드립 커피집을 찾았다. 식사에는 그토록 가성비를 따지면서 커피값은 전혀 아끼질 않는다. 오랜만에 예가체프 원두에 휘낭시에를 찍어 먹었다. 한때 제과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휘낭시에라는 이름은 재력가 혹은 자본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만큼 지갑이 두툼한 이들이 해마다 선물용으로 주고받던 고급 과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생김새도 금괴 모양이라나. 가게 임대료 내기도 버거워 보이던 친구가 해준 말이라서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케이크 먹기에는 열량과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가끔 휘낭시에를 먹는데, 담백하게 생긴 외형과 달리 대량의 밀가루와 버터가 들어간다니 뜨악했다. 녹차 가루가 뿌려져ᅠ있으면 살이 안 찐다고 착각해 버려서 너무 마음 놓고 먹었다. 자본가들의 배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알만했다. 요즘에는 칼같이 식단을 할 수 있는 게 부의 상징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내가 왜 그리도 식사를 챙기는 데 애를 먹는지도 알만했다. 오늘은 돈가스나 고기국수 대신 깔끔한 편의점 식단으로 해결했으니 휘낭시에 하나 정도는 맘 편히 즐기기로 했다.


 ᅠ여기까지 적고 보니 헬스는 반절 이상이 식단을 꾸리는 노력에 있음을 실감했다. 뭘 먹는가가 늘 숙제와 같다. 먹는 걸 참 좋아하지만 잘 챙겨 먹는다는 건 귀찮은 일이다. 매일 밤 라면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먹방 유튜브를 시청조차 삼가야 한다. 오죽하면 라면이라도 죄책감을 덜고 먹으려고 신라면 건면을 사서 국물에 달걀을 다섯 개씩 투하할까. 비극적인 건 나이 들수록 몸무게가 더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 조짐이 없으면 재미가 떨어지고 식단을 할 마음도 꺾이고 만다. 나이에 순응하게 되고, 패배를 인정하는 말이 저도 모르게 글에서 묻어난다. 노화라는 건 생전 눈에도 보지 않았던 다이어트 보조제 광고에 꽂힌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안티에이징이 시대의 모토가 된 마당에 건강한 몸을 지키는 건 점점 더 고단한 싸움이 돼가고 있다.


 ᅠ먼저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게 급선무다. 내가 왜 헬스장을 다니고 몸을 만들려고 하는지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 운동이 포개진 삶에 관한 글도 쓸 수 있을 거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별생각 없이 일상을 습관으로 채우는 걸 이상적으로 여기지만, 그동안 나는 너무 과하게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았다. 친구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을 만큼 맹목적으로 운동과 몸 관리에 집착했다. 나는 그렇게 운동하는 나를 철석같이 믿고 살았지만, 사실 현실의 나는 헬스와 몸만들기에 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뿐이었나 싶다. 누구에게든 내가 관리하며 사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 괜찮다는 정도가 점점 더 높아지면서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나는 강박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게 다 부질없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그토록 땀을 흘리고 고통을 참아오던 날이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ᅠ 내 이런 사고방식은 내가 읽어온 책에서 유래했다. 난 일류 작가의 검약한 삶을 보면서 나 자신과 부당한 조약을 맺은 셈이었다. 타인의 칭송을 받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에 갇혀 살아왔다. 그 부작용으로 난 멋진 몸을 가진 인플루언서와 날 일치시키려 들었다. 기준과 점차 멀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파졌다. 호통을 치면서 식단 관리가 아주 쉽다고 거짓말을 하는 호사가의 말을 맹신했다. '점심은 프로틴 셰이크에 저녁은 닭가슴살입니다. 배고픔이 기본값이니 변수를 만들지 마세요.' 나는 그들과 분리한 나 자신을 보지 못했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인 보드리야르는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이지만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며, 실재의 부재를 감춘다”라고 했다. 이미지는 실재와 무관하지만, 난 매체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기준으로 내 삶을 맞춰내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이미지가 나의 건강이라고 생각했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뒷걸음쳤다. 내가 점차 늙어가는 걸 잊으려고 현실의 피드백을 거부했다. 인스타그램이 아무리 현실 못지않게 생생하고 강력해도 그 사각형 틀 안에 있는 건 가상에 불과하다. 수도 없이 올라오는 피드는 현실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당신이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지 가르쳐 주면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다오.” 나는 식단의 고역스러움에 시달릴 때마다 조르바의 이 말을 떠올린다. 난 어렵사리 식단을 관리하면서 뭘 얻고자 하는가.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중략)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헬스에서 보통 운동이 잘될 때 잘 먹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가슴 운동을 할 때 가슴으로 잘 컨트롤해서 효율적으로 운동하면 지금 가슴으로 잘 먹고 있다고 말해준다. 나도 내가 공들여서 잘 먹인 근육을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싶다. 단백질에서 근육이 자라고, 주린 배에서 복근이 보이는 것처럼 몸을 잘 가꿔서 조르바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로 거듭나는 데 쓰고자 한다. 그래서 난 오늘도 근육통과 뻑뻑한 닭가슴살을 기꺼이 감내한다.


 배가 고파지면 죄책감이 사라졌다가 배를 채우면 다시 가책을 느끼는 그런 심정이야말로 내가 쓰려는 글의 요체다. 몸무게가 거의 칸첸중가 손톱바위 꼭대기까지 올라서니 더는 도망칠 데가 없어서 글을 통해서라도 건강한 삶을 되찾고자 한다. 비록 문장은 너저분하지만, 식단만큼은 깨끗하게 하려는 내 애씀이 요설로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주 가다시피 했던 초밥집도, 이마트에서 늘 사 오던 칼집 삼겹살도 더는 주문하지 않는 게 나이 듦을 거부하는 철없는 투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거부할 수 없는 내 뒤꽁무니다. 이제 곧 여름이 닥쳐오리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하러 가야 할 시기다. 운동의 당위를 만들어내고 운동 후에 체감에 관해 적으면서 이 위기를 극복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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