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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08. 2023

보기 드물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VER. 2.0

 ᅠ마음은 이미 창밖에 있다. 몸은 사무실에 앉아있다. 눈동자와 손가락만 분주히 움직인다. 꼰 다리가 흔들거리고 묘하게 마음이 일렁인다. 어제는 쌀쌀했는데 오늘은 상당히 푹하다. 외투는 괜히 입고 왔네. 이제 곧 퇴근이다. 여느 때와 다를 거 없는 평일 저녁이고, 별일 없으면 헬스장에 들렀다가 집에 갈 생각이다. YTN에서는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이제 그 누구보다 즐겁게 산다는 어느 학자의 인터뷰가 나왔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잠시 그의 얼굴을 봤다. 죽다 살아온 것 치고는 너무 건강해 보였다. 아 저게. 죽다 살아와야만 지을 수 있는 표정인가. 사무실이라 텔레비전은 묵음이었지만 YTN은 우리 사무실처럼 안 보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뉴스를 보는 시청자를 위해 자막을 큼지막하게 띄운다. 푸른빛이 은은한 스튜디오에서 두꺼운 화장을 한 노신사는 중병이 들어 평생 몸담아온 학교를 그만두고 꾸준히 하던 방송까지 정리한 사연을 들려줬다.


 오 년 전 이맘때쯤 이 남자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세상 잘 나가던 사람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주변 사람들이 삽시간에 그걸 다 알아버린다.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펼쳐지는 플롯이다. 그는 병환에 앞서 사회로부터 배제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마치 드라마 속 배역처럼 남자의 죽음을 대했다. 그는 사는 게 바빠서 주변을 잘 돌보지 못하는 냉랭한 아버지이자 세상 잘 나가는 학자였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주인공의 삶이었다. 그가 곧 세상을 뜰 거라는 말을 털어놓기 무섭게 가족들은 돌변했다. 유산 문제로 그를 괴롭혔고, 원망 어린 말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자신을 따르던 학계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걸쳤던 팔을 풀었다. 평소 방송 활동을 하면서 스타 학자라고 불렸지만 정작 자신이 일군 땅에서 한참 밀려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거창한 위로를 기대한 게 아니었다. 그냥 죽을 때가 되면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 그냥 툭 하고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사람들은 으레 있을법한 일이 생겼다는 식의 심상한 반응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 칠십 먹은 노인이 죽는다는 건 으레 있을 법한 일이 맞긴 하지. 그는 자기 죽음이 드라마 속 어느 주변 인물의 죽음처럼 자막 한 줄로 요약될 줄은 몰랐다. 명색이 주인공인데.


 앵커는 처음 죽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냐고 물었다. 나는 마우스 위에 검지 손가락을 올리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노신사는 뜸을 들이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런 심정이야 말로 어떻게 다 할까요. 억울하고 허탈하고 그렇지요. 뭐. 그래도 죽기 전에 하나 깨달은 게 있긴 해요. 사람은 혼자 잘 놀 줄 알아야 한다오.' 앵커는 약간 당황해서 억지스럽게 웃으며 그 질문은 나중에 하겠다고 얘기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가족에게 잘하라거나, 인생은 고독이라느니 하는 충고 어린 말을 예상했는데 내 예상을 벗어난 답이었다. 죽다 살아온 자의 통찰이란 저런 건가. 남자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막상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겪은 당혹스러움을 먼저 얘기했다. 그는 연고도 없는 경기도 광주에 구 평 남짓한 작은 오피스텔을 구해서 무작정 혼자 살기 시작했다. 가족이고 친구고 다 보기 싫었다. 못 볼 꼴 그만 보고 조용히 죽음 심산이었다. '아니 시골 전원주택이 아니라 오피스텔이라고요? 개는 안 키우시나 봐요? 텃밭을 가꾸고 싶지는 않았나요?' 그는 당최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난 평생 혼자서 산 적도 없을뿐더러, 시골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전 카페에서 쉴 수는 있어도 텃밭에서는 한 시간도 못 버티는 전형적인 도시 촌놈이죠.' 그는 평생 일로 바빴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기운을 다 뺐으며 주말이면 밀려드는 약속을 소화하느라 허둥대며 살았다. 앵커는 되물었다. '학자시니까 책을 좋아하시지는 않나요.' 노인은 책이라는 건 자신에게 밥벌이지 놀이가 아니라고 했다. 누가 죽어가는데 공부하냐며 앵커도 그럴 거냐고 나무라듯 말했다.


 중간에 틈입한 광고가 다 끝나니 그의 지난날을 회고하는 영상이 이어졌다. 그가 직접 촬영한 일상이었다. 그는 요샛말로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언 형식으로 남기려는 의도였는데, 의도치 않게 '말기 암에서 죽다 살아난 어느 남자의 사연! 기적의 암 치료법!'이라는 제목으로 퍼지면서 유튜브 조회수가 상당하다고 했다. 그가 만든 채널명은 '틸아이다이'였다. 영상 속 그는 자신을 생물학자라고 소개했다. 그래서인지 화면 뒤로 보이는 책장에는 온갖 과학 서적이 즐비했다. 그의 말대로 그 책들은 학자의 일일 뿐이었지만 아직도 그의 곁에 빽빽하게 서 있는 걸 그냥 일일 뿐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말투와 제스처에서 장서가의 애착이 보였다. 아나운서는 암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아마도 이게 하이라이트 질문이었던 것 같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잡았지만, 그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마가 뜨는 게 불편했는지 앵커가 한 번 더 되물었다. '저는ᅠ갑작스럽게 폐에 종양이 생기면서 암에 걸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운 좋게 회복했고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 죽다 살아났을까요. 저는 신앙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도 여러 번 생각해 봤는데 제가 추측하기로는 생애 처음으로 혼자 살면서 잘 놀았습니다. 다 그 덕인 것 같습니다.' 영상 속 영감님은 분위기가 처지는 걸 우려했는지 암의 좋은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선,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말기 암 환자는 의사마저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라고 떠민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생 퉁퉁하던 살이 다 빠져서 옷발이 살고 영정사진으로 쓸 셀카도 분위기 있게 나온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의 유쾌함이 그를 살린 게 아닐까 미루어 짐작했다.


 그는 그렇게 혼자 두문불출하다가 재작년 이맘때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완치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냥 막 놀았는데 병세가 차츰 호전되더니 암세포가 다 죽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무표정으로 종종 이런 일도 있다고 했다. 자기가 석 달이면 죽을 거라고 통보해 놓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그럼 쉴 때 뭘 하셨냐며 특별히 드신 게 있냐고 앵커가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무척 궁금한 듯 물었다. '별거는 없어요. 잘 쉬고 잘 놀고 했는데.' 노인은 의사에게 완쾌 소식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앵커는 왜 놀라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게 사람이 참 이상한 거요. 이제 다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면서 막막했어요. 앞날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지, 사람들한테 다시 산다고 알려야 하잖아요. 나 다시 살아. 이러면 가족들이 좋아할까요. 반길까요. 상조회사랑 계약하고 재산 분할한다고 변호사까지 사서 서류 작업을 싹 해놨는데. 내가 몇 년이라도 더 산다고 하면 그걸 진심으로 반겨줄까요. 난 그런 확신이 없었소.' 그는 완쾌 이후에도 한동안 오피스텔을 떠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완쾌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학자는 자신이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전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집도 사무실도 가족도 친구들도 그가 그토록 열심히 했던 교단도 그립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가 좋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태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건물 옥상에 있는 헬스장에 갔다. 오피스텔로 이사한 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은 일과였다. 그는 운동하면서 여러모로 놀랐다. 자신이 생각보다 헬스를 꽤 잘하더란다. 난생처음 잡아본 바벨 봉이 몸에 착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헬스를 다녀와서는 간단히 아점을 먹고 씻은 후에 집에서 넷플릭스를 봤다. 드라마다 영화다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보면서 다 보고 나면 자기 블로그에 감상문을 적었다. 그건 메모에 가까운 짧은 코멘트였는데 차음 쓰다 보니 길어졌고 어느새 화면을 가득 메울 만큼 긴 글이 됐다. 그는 연신 보리차를 마시면서 글을 썼다. '그냥 그렇게 하염없이 영화를 보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이 좋은 걸 왜 안 하고 살았나 몰라. 강의다 연구다 행사다 되는 대로 끌려다니다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지 뭐요.' 오후 여섯 시쯤 그는 마트에서 산 포장 닭가슴살과 세척 사과 따위로 저녁을 때웠다. 싱크대 앞에 서서 말 그대로 때우는 식사였지만 건강한 식단이었다. 관련 영상으로 토마토와 닭가슴살, 현미밥과 블랙커피가 보였다. 정말 그의 말처럼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난 최근에 헬스장을 함께 다니는 옆자리 동료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저거 봐. 저 할아버지 식단이 우리랑 정말 비슷한데!' '그러게요. 딱 우리가 하는 식단이네요.' 녀석은 자기가 가져온 도시락통을 두드렸다. '저 식단이 암 치료 효과도 있나 봐. 우리도 장수하겠다 야.'


 ᅠ그는 아나운서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건강을 회복하면서 스무 살 나이 차가 나는 부인과 만나 잘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헬스장에서 만난 사이라고 했다. 오전 헬스장에는 노인들뿐인데 유독 젊은 사람이 운동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걸 묻다가 친해졌단다. 같이 밥도 먹고 책도 읽는다고 했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큼지막한 뿔테 안경을 낀 앵커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장난스럽게 그 비결이 뭐냐고 물었지만, 그는 마치 인생이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스쿼트지. 스쿼트인 것 같아.' 그는 매일 헬스장에 가서 스쿼트를 하고 식단을 단백질 위주로 바꾸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마치 독실한 신자의 열정적인 간증처럼 매일 스쿼트를 하면 못 이룰 게 없다고 했다. 관련 영상으로 어린 아내와 손을 마주하고 선 채 허리를 굽히며 팔을 뻗으며 껄껄껄 웃는 영상이 나왔다. 이어 그는 복압 벨트를 차고 SBD 로고가 적힌 흰 양말을 신고 몸을 풀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아내를 어깨 위에 무동을 태우고는 스쿼트를 시작했다. 족히 쌀 한 가마니는 돼 보이는 아내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렸다. 부인은 아마도 촬영 감독이 시켰을 게 분명한 기쁨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타이트하게 노인의 대퇴부를 비췄다. 그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제 나이에 이 정도 무게를 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행복한 그 표정은 앞으로 백 살은 거뜬하게 살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언제 병마에 시달렸다는 듯이 먼 훗날을 그리는 데 익숙해 보였다. 그 어떤 헬스 트레이너의 호통보다 더 많은 노인을 체육관으로 끌어올 수 있을 만한 호소력이었다. 난 이상하게 죽어가던 소에게 낙지를 먹이며 되살리는 과정을 롱테이크로 찍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랐다. 낙지를 먹고 극적으로 벌떡 일어선 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을 시작했다. 노인의 몸은 낙지를 먹은 소처럼 생명력이 있었다. 영감님이 어떻게 요즘 그 치열하다는 닭가슴살 시장에 해성같이 나타나서 업계 상위권에 랭크했는지 알만했다. 닭고기 상호는 노닥이었다. 관련 영상으로 나오는 노닥 포스터에는 노인의 두툼한 가슴팍과 환한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정말 방송 안 하려고 했는데 그이가 사업을 해보라고 한창 부추기는 바람에 여기 또 나오지 않소.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는 거라오.' 노닥은 나도 먹어본 적 있는 포장육이었다. 나는 그 짭조름한 닭가슴살과 노인의 대퇴부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정말 그를 구원한 게 스쿼트였을까. 앵커는 그에게 따로 챙겨 먹는 건 없냐고 물었다. '다른 건 없고 화면에 보시는 대로 닭가슴살 위주로 고단백 식사를 합니다. 가끔 입맛 없을 때는 소고기를 구워 먹지요.' 나도 거들며 대꾸하고 싶었다. 저도요. 저도 그래요. 


 ᅠ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걸어 다니는 송장 시절. 음매 하며 울지는 않았지만, 소처럼 과묵하게 일만 하던 시절. 막 취업하고 삶의 성취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느낌. 목표가 사라지만 다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삶을 희생하길 반복하던 때. 그 무렵 나는 내가 진정으로 뭘 하고 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사춘기 학생이라도 된 듯 인생의 의미를 고민했다. 시야가 흐릿하니 삶이 무료하고 시무룩했다. 한편으로는 평생 내가 원했던 일상이 지금이 아니냐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어떻게 이룬 평화로운 일상인데 배부른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글도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써도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보이질 않았다. 열심히 써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글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글을 쓴다는 게 어불성설로 느껴졌다. 방에 우두커니 서서 어질러진 이불과 널브러진 빨랫감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책을 보면서 지금 내 인생이 딱 저 꼴이라고 생각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몸을 부딪쳐가며 이렇게 끌려다니다가는 그냥 평범한 아무개로 살다 죽을 것이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들고 신나서 떠드는 자리에서도 그는 홀로 뜨아를 마시면서 텅 빈 방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아마 지금 내 여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면 전문가에게 상담이라도 받아보라고 할 테지만, 난 이런 공허함을 고통이 아닌 분수에 넘치는 권태라고 단정했다. 나 스스로 징징거리지 말라고 다그치는 게 가장 편했다. 처음 내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낀 건 글쓰기마저 놓았을 때였다. 그건 자신감이 떨어졌다거나 글솜씨가 모자라니 더 연습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니었다. 글을 쓸 때마다 모든 문장이 피상적으로 보였다. 주변 친구는 내가 블로그 구독자도 많다면서 추켜세웠지만 내 눈을 마주치면서 얘기하진 않았다. 이런 글을 쓰다가는 결국 이 글처럼 보잘것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우울감과 자기혐오가 뒤섞여서 회사 생활을 하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관계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삶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삐걱거리면서 흘러갔다.


ᅠ삶 전체에 만족도가 떨어지니 외모 자신감도 하락했다. 난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서 외출을 꺼렸다. 현관 거울 앞에 서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고도 못생겨 보일까 봐 불안했다. 정확하게는 평범한 ''남자 1''로 살아가기가 싫었다. 내 감정과 성격이 평이하게 여겨졌고 볼품없는 육체의 너저분함이 옷 밖으로 삐져나올까 두려웠다. 이러니 늘 외출 전에 거울 앞에서 쇼를 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곤 했다.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내게 엄마도 '지랄도 가지가지네. 쇼한다 쇼해'라고 외치며 내 쇼에 감탄했다. 머리를 이렇게 만지고 저렇게 만지다가 한 시간을 훌쩍 허비했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고 빡빡 깎은 머리에 손댈 데가 어디 있다고 포마드를 뭉쳤다 헝클어뜨리기를 반복하며 꼴값을 떨었다. 얼굴값이 저렴하니 꼴값으로 치르려는 심산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옷이 없다는 흔한 말의 참뜻을 실감했다. 옷이 없어도 옷값은 더 없었다. 옷은 옷장에 가득 걸려 있지만, 그건 입고 나갈 수 없는 천 쪼가리일 뿐이었다. 입고 나갈 수는 있겠지만, 입고 나갔다가는 그날 하루를 망칠 거적때기였다. 옷 따위로 하루를 망치는 내 모습이 싫었다. 거울 속 나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인상이 칙칙했다. 이렇게 외출에 힘겨웠으면서도 가끔 약속 장소에 나갈 때는 가관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포멀한 흰 셔츠에 진 청바지를 입고 힘을 뺀 척하면서 머리를 힘주고 다녔다. 가방에 소설책과 노트북을 챙겨 넣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널 본다고 그래. 신경 쓸 거 없어. 누가 뭐라든 다 개소리야.' 그러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면 다시 자신감이 하락했다. 정류장 뒤편 돈가스집 까만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절망에 빠졌다. 광고 전단에서 환히 웃는 젊은 남자 모델이 아비꼬 정식을 먹으면서 날 놀려대고 있었다. 153번에 올라타면 여의도로 가는 단정한 셔츠 차림의 텍타이 부대 앞에서 주눅이 들어ᅠ힐끔거렸다.


    그때 난 내가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춘기를 제때 제대로 관통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중이염이 생길 나이에 중이병이 걸려서 골골댔다. 특별하지 않고는 살기 싫은데 특별할 도량이 없으니 늘 갈급했다. 지금은 나이 탓인지 서울특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 흔한 누군가로 특별함과 담쌓고 살지만, 스무 살 초입의 나는 젊음이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에 힘겨워했다. 상태가 심해졌을 땐 친구가 오랜만에 술자리로 불러내도 거절 놓기 바빴다. 나는 몇 시간을 망설이다가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내뺐다. 걔들 인스타그램에서 본 화려한 지인과 같은 공간에 있을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녀석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모 가꾸는 법을 배운 것처럼 능숙했다. 한 마디로 조기 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 녀석들은 기가 막히게ᅠ트렌드에 민감했고 늘 어디서 본 듯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키도 작고 왜소한 나는 녀석들이ᅠ교만한 태도로 나를 관찰하는 게 싫었다. 밤이 늦어 자리가 끝나고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일찍 귀가하면, 녀석들이 포장마차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순두부찌개에 소주를 하면서 잔혹하리만치 집요하게 내 외모를 까대진 않을까ᅠ불안했다. 그때 난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는데 정말 없을까 봐 조바심을 냈고, 누가 관심이라도 보이면 그게 날 놀리는 건 아닌지ᅠ불안해했다.


ᅠ모든 게 헬스를 처음 권유한 직장 선배로부터 달라졌다. 그는 대뜸 사내 메신저 단체 쪽지로 권상우 몸매를 만들고 싶은 자는 퇴근 후에 남으라고 올렸다. 보니까 후배에게만 보낸 메시지 같았다. 난 그 무례하고 무뚝뚝한 말투가 싫어서 피했다. 운동이 싫다기보다는 배우 권상우를 별로 안 좋아했다. 당시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한창 볼 때라... 한 마디로 선배와 나의 취향은 엇갈렸다. 어이없게도ᅠ사무실에서 잔업을 하다가 그에게 붙들려서 처음 헬스장에 갔다. 평소 그의 무쇠와 같은 팔과 터질듯한 셔츠를 눈여겨 살폈지만 그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저런 파우더 근육을 어디 쓰나 싶었다. 그런 근육을 달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종일 프로그램 코딩을 한다는 게 우스웠다. 솔직히 말하면 권상우보다는 마동석처럼 보였고, 여자가 좋아하기보다는 골격근 냄새나는 남자만 몰려와서 운동법을 물어볼 만한 두께였다. 그리고 업무를 고압적인 스타일로 하며, 평소에 과묵하기로 유명해서 나와 같은 수다쟁이와는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헬스장에만 가면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옆구리가 잔뜩 파인 나시를 입고 나선 그는 그날부터 헬스가 얼마나 숭고한 운동인지 몸소 증명했다. 그 컬컬한 목소리가 헬스장에 가니 꾀꼬리가 됐다. 말투 자체가 긍정을 씹어 먹은 투로 변했다. 그는 모든 힘을 죽이고 살다가 헬스장만 오면 살아나는 작자였다. 이른바 요샛말로 '헬창'이었다. 난 그와 어울리면서 도무지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익혔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면 그가 좋아하는 얘기를 해라. 그가 뭐로 시간을 보내며 평소에 뭘 생각하고 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늘 운동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점심때 짬뽕을 먹을 때도 편의점에서 닭가슴살을 사 와서 국물에 욱여넣었다. 왜 그리 유난을 떠냐는 동료의 놀림도 기분 좋게 받아넘겼다. 미소를 지으면서 따봉을 하는 그의 팔뚝이 모든 유난을 불식시켰다. 난 그와 운동하면서 절친해졌다. 지금도 가끔 연락할 만큼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선배는 최근에도 내가 여전히 운동에 푹 빠져서 사는 걸 자기가 새운 혁혁한 공으로 여긴다. 솔직한 얘기로 그는 내 인생을 뒤바꿔놨다.


 ᅠ그와 만난 이후로 절로 잠이 오고 절로 정신이 번쩍 뜨이며 절로 밥맛이 도는 데다가 절로 살이 빠지면서도 절로 몸이 두껍고 넓어지기까지 하는 그 세계로 진입했다. 텔레비전 속 노신사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알게 된 중량 운동의 위대함을 난 선배 덕에 갓 스무 살이 넘어서 알아챘다. 선배는 내가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낼 때마다 고함치는 걸 좋아했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면서 "민진아 지금 너무 좋아. 등에 완전히 먹고 있어. 자 세 개만 더해보자. 오 완전 터프해!" 그는 이런 식으로 오그라드는 말투로 내 운동능력을 그리스 신전에 올려놓았다. 그는 혀가 짧아서 '민진아'를 항상 '밍깅아'라고 외쳐댔다. '좋아'를 '됴아'라고 했다. 그러다가 내가 간혹 운동에 빠지기라도 하면 혹독할 만치 비난했다. 짧은 혀로 길고 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 몸이 좀 안 좋아서 헬스장을 빼먹고 집에 가는데 지하철에서 카톡을 열었더니 지금까지 살면서ᅠ가장 긴 카톡이 와 있었다. 여자친구가 비정하게 날 찰 때도 이렇게 긴 카톡은 아니었다. 요지는 이거였다. 뭐든지 정신력 싸움인데, 너는 나약하게 굴고 있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지만, 고비를 넘기면 분명히 아파도 운동을 해야 다 괜찮아지는 시기가 올 거다. 그러니 빼먹지 말라는 얘기다. 위인전이나 인생극장에나 나올법한 오글거리는 말투였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이처럼 때론 무섭고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그를 계속 따라다닐 수 있었던 건 확실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리가 풀릴 정도로 힘들고 난데없는 욕을 먹으면서도 몸무게가 늘고 등이 탄탄해지니 헬스장을 빠질 수 없었다. 남들은 돈 주고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는다는데 도무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코칭은 물론 단백질 파우더까지 나눠주고 가끔가다 저녁까지 사주면서도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던 그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운동을 더 악바리처럼 했던 것 같다.


 방송이 끝나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난 벌떡 일어나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월급은 안 나오지만 내겐 재출근의 시간이다.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시간이다. 관계나 금전 부분에서 상당 부분을 포기해도 꼭 내야만 하는 시간이다. 삶이 운동과 밀접해지면서 모든 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연인을 만났다가 헤어졌고 누군가와 가까웠다가 멀어졌으며, 회사도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만, 운동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이 고스란하다. 출장을 가서도 남들 다 사우나 갈 때 헬스장에서 피로를 해소했고, 기분이 우울할 때도 밀크초콜릿 대신 단백질 셰이크를 마셨다. '사장님 일일권 하나 주세요. 목욕탕은 빼고요.' 이제 헬스장에서 그 과묵하던 선배가 왜 그렇게 벙벙 뛰었는지 잘 안다. 다소 과장되기는 했으나 인터뷰하는 그 노신사가 왜 그리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외모 콤플렉스도 여전하지만 이제 운동으로 그 기분을 감쇠시킬 줄 안다. 여전히 옷은 딱 정해진 것만 사는 '옷못알' 영어로 하면 가빠만 믿고 설치는 패션 테러리스트지만 뭘 입든 운동을 열심히 하면 맵시가 난다는 걸 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운동은 그때도 좋고 지금도 좋다. 운동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 좀처럼 보기 드물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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