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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18. 2023

곧 죽어도 유럽 시간을 살아

Ver. 2.0

 며칠간 본의 아니게 야간근무를 서면서 시차가 생겼다. 낮에는 졸음이 쏟아지고 저녁때만 되면 정신이 말똥말똥한 박쥐가 됐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서 먹방 유튜버를 보며 긴긴밤을 지새웠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넘실대는 식욕이었다. 아픈 데도 없는데 몸이 피곤하고 계속 면발이 당기는 건 아마도 바이오리듬에 실조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난 내 뇌가 재즈 프레이즈처럼 불규칙하게 넘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밤새 모니터에 코를 박고 뭘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어려서부터 밤에 더 활달했는데 그게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버릇처럼 굳어질 줄은 몰랐다. 일몰이 지나고 하늘이 까매지면 그때부터 도파민이 치솟는 걸 어쩌랴. 어쩌면 난 그리운 프랑스의 시간을 사는 걸지도 모른다. 유럽 살 팔잔가 보다. 지중해풍이 부는 유럽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런 이런 시차도 자연스럽게 내 시간이 되었을 텐데!


ᅠ 퀭하고 몽롱한 상태로 아침에 출근했다가 간신히 점심까지 버텼지만 배가 고프진 않았다. 밥 맛이 떨어진 이유는 분명했다. 어제 밤늦게까지 쓴 보고서를 아침에 부장한테 내밀었더니 왕창 깨졌다.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식의 일 추진이 불만스러웠다. 그렇게 바쁘면 좀 도와주던지. 요즘 '조용한 사직'이 유행이라는데 절로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는 깍쟁이 심보가 들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욕지기가 식도 근처까지 올라왔다. 갑작스럽게 이명이 들려와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이건 경고 신호인가? 점심시간에 속상해서 퍼시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꼭 감았지만, 서글픈 생각에 잠도 오질 않았다. 나는 핸드폰으로 스카이스캐너를 띄워놓고 항공권을 뒤지기 시작했다. 갈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다음 주 주말로 날짜를 설정했다. 마음은 유럽에 있었지만 내 신용카드 한도를 생각해 보면 동남아가 팔자였다. 밀린 원고 생각을 하면 동남아는커녕 부산도 언감생심이었다. 역시 돈이나 벌어야 하나. 세계 곳곳을 클릭할 때마다 가격이 높아지면서 내 자존감은 하락장을 탔다. 프랑스 살 때가 좋았지. 살인적인 물가에도 내 첫 유럽은 날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었다. 평생 유럽에 살며 자신을 좋은 유럽인으로 불러주기를 원했던 니체는 “환경, 기후, 지형이 한 사람의 삶과 사상에 명백하고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확신했다. 내가 이 막연한 유럽병을 떨치고 좋은 한국인이 되려면 환경이나 기후 따위는 다 괜찮으니 노동 환경 개선이 시급했다. 틈만 나면 야근에 업무 바깥 지시가 일반화된 사내 문화는 유럽 항공권 가격만 높인다. 8월만 되면 왜 인천공항이 북적거리는지 알만했다. '여러분 다들 같은 마음이죠?' 잠시 눈을 감고 몇 해 전 스페인 광장을 걸을 때 머리칼에 가닿았던 바람을 떠올렸다. '여긴 유럽이다. 레드선!' 달달달 소리가 나는 캐리어를 끌고 유럽만 쭉 둘러봐도 커리어가 짱짱하게 풀릴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출근과 보고서의 영원회귀가 끝이 나고 오직 평화로운 숲길이 영원처럼 펼쳐지기를 바랐다. 그때, 옆자리 후배가 날 흔들어 깨웠다. '선배 부장이 찾는데요.' 탕비실 쪽 천장에 달린 캐리어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달달달 소리가 났다. 난 시큰둥한 표정으로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됐다 그래, 점심시간까지 지랄이네. 또 보고서 빨리 가져오라고 닦달하는 거겠지. 지랄도 병이야. 나는 유럽병이고.' '네? 유럽이요?' '그런 게 있어.' 날 한심하게 보는 후배의 눈초리를 떨쳐내려고 코어에 힘을 주고 이탈리아산 일리 캡슐커피로 내린 커피 한잔을 받아왔다. 독서를 좀 하려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는데 제목이 절묘했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제목이 우연치고는 너무 의미심장했다. 난 문학에게 외치고 싶었다. 나 그만둬도 네가 날 먹여 살려 줄 거지. 내가 소설가로 살아도 밥은 굶지 않게 도와줄 거지. 희미한 메아리라도 들렸다면 바로 사직서를 던졌을 테지만, 10년째 기다려도 그런 응답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 난 어제 새벽까지 문학이 날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형편없는 원고를 손보면서 더는 원하지 않는 직장에 출근하는 삶이 끝나기를 바랐다.


 보고서를 마저 쓰고 잠이나 좀 깨려고 회사 앞 작은 공원을 걷기로 했다. 운동화로 바꿔 신고 핸드폰과 이어폰을 챙겨서 건물 밖을 나섰다. ‘요즘 살 빼? 밥도 안 먹고 운동하는 거야?’ 일이 있었는지 뒤늦게 구내식당으로 가는 동료에게 난 실실거리며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네네 맛있게 드세요. 몸 좀 풀고 올게요. 지금 바깥이 유럽 날씨예요.’ 제법 선선해진 바람과 달리 강렬한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눈을 어지럽혔다. 챙겨 온 챙 모자를 눌러쓰고 잔디와 쓰레기통, 벤치와 자전거 타는 사람을 구경하며 걸었다. 가을이 어느 틈엔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이현령비현령 만사에 비위만 맞추다가 허송세월한 사이에 여름은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다. 한 시간 후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게 애석해졌다. 이맘때쯤 설악산이 참 좋은데, 곤드레밥이나 먹고 커피를 쪽쪽거리며 경포대나 걸었으면 원이 없겠네.


 ᅠ학교가 끝났는지 학생 몇 명이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걸어갔다. 보라색 이스트팩 가방과 빨간색 빗금이 쳐진 아디다스 슈퍼스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는 모양이다. 손에는 붉은빛이 도는 음료수가 들려 있었는데, 나도 비슷한 걸 문구점에서 사 먹었던 기억이 났다. 먹고 나면 입이 퍼레져서 해안가에서 발견된 변사체 놀이를 하곤 했는데. 학생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초가을의 적막을 깨뜨렸다. 정말 까르르 소리가 나는 그런 웃음이었다. 어딘가로 서둘러 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고작 학원에 가는 건 아니길 바랐다. 이 날씨에 백묵 냄새는 아니지 않은가. 학생들은 팔다리가 길고 말라서 걸음걸이가 우아했다. 마치 새처럼 까치발을 들고 걷는 듯 유려했다. 그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어디선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웃음소리를 전해왔다. 나도 따라 실없는 웃음이 배어 나왔다.


 ᅠ나는 언젠가부터 우정이라는 단어와 서먹해졌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 거리만큼 동떨어졌다. 글로벌 특파원도 우정에서만큼은 감감무소식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것 같다. 어제 한때 꽤 긴밀했던 형과 긴 통화를 했는데 내가 통화를 지나치게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는데 형의 친밀한 태도가 무색하게 건조한 대답만 나왔다. 분명히 반가웠는데 그건 옛 추억을 향한 그리움이지 현재 나는 그와 너무 먼 거리에 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거북한 뭔가가 목에 탁 걸렸다. ‘민진아 오랜만이다 진짜. 최근에 내가 좀 바빴어. 애 낳고 이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동네로 놀러 갈까. 우리 언제 만나지?’ 난 서두르는 형 목소리에 침을 두 번 삼키고 흔들림 없이 얘기했다. '어, 형 진짜 오랜만이네. 요즘 어떻게 지냈어. 가족들은 다 건강하지? 글쎄 우리 언제가 좋을까.' 난 목소리가 지나치게 깔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형은 다 괜찮으니까 너 편할 때로 한 번 잡자. 내가 가도 되고, 네가 오면 맛있는 거 사줄게.’ 형도 옛날과 다르게 지나치게 목소리를 벙벙 띄웠다. ‘요즘 나도 꽤 바쁘긴 한데, 거의 매일 야근하거든. 잘하면 시간을 낼 수도 있을 거야. 잠시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을지 잔머리를 굴렸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형 회사에 코로나 환자가 있어서 이번 주는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주에 내가 전화를 한 번 줄게. 미안해. 내가 이러고 사네.’ ‘미안하긴 뭘. 그래, 다음 주에 연락 한 번 줘.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형은 애써 쾌활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난 화면이 꺼진 폰을 꼭 쥐고 미세한 자책에 시달렸다. 우리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음에 슬펐다. 함께할 때 썼던 말이 사라지고, 어색한 인사치레만 가득했다. 이럴 거면 그냥 만나서 차 한잔 하면 될 텐데 뭐가 그렇게 어렵나. 난 요즘 퇴근하면 이런저런 생각할 게 많았다. 딱히 손에 잡히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지만 그랬다.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쓰여서 톡 창을 열고 형의 프로필 사진을 넘겨봤다. 아이를 낳았는지도 몰랐네. 주말을 재밌게 보내라면서 태연한 척 인사를 건네고 아이를 위한 케이크 한 상자를 기프티콘으로 보냈다.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직장에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하고, 같이 회포를 풀 날을 그리겠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음 주에도 결코 연락할 일은 없을 거라는 걸 확실히 해둬야 했다.


 ᅠ언젠가는 나를 이 세계로 환대할 만한 찐한 우정을 원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끼던 한 친구는 일하다가 무의미하게 죽었고, 또 다른 친구는 남편과 아버지 역할에 여념이 없어서 도통 연락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왜 이렇게 마음이 위축됐는지 애써 짐작해 볼 뿐이다. 평화로운 가을 날씨를 즐기면서도 서글펐다. 사람을 향한 기대가 사라진 내가 떨어지는 낙엽처럼 메마르게 느껴졌다. 벌써 가을 타나. 추석 전에 이러면 설레발인데. 우정을 느끼면서 나누는 다정한 대화와 서로 연결되는 기분을 맛본 지가 언제였던가. 우정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일하다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가 몸을 만들고, 신간 소설을 고르다가 써둔 글을 퇴고하느라 우정의 가능성을 밀어냈다. 그간 나와 시간을 보낸 몇몇 얼굴이 떠올랐지만,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부지런히 낸 축의금은 얼마나 될까. 돌려받지 못할 걸 알고 냈으면서도 아까웠다. 아냐, 훈제연어를 그렇게 먹어댔으니 아쉬울 건 없지. 이건 돈 문제가 아냐. 난 무심하게 사는 것 같지만 어쩌면 온전히 우정에 열정을 바쳤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별 계산 없이도 거리낌 없이 관계를 위해 노력했던 어느 시절을 말이다.


ᅠ 어릴 때는 참 왜 그랬는지 공부와도 서먹한 사이였다. 아마도 특정한 목적을 가진 공부를 못 견뎠던 것 같다. 늘 학교에서 눈 밖에 났다. 말도 적었고 의욕도 없어서 늘 창밖만 보는 산세였다. 내가 나라는 사람을 싫어했고 그러니 친구가 곁에 머물 수 없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전에 없는 고요함을 맛볼 수 있었다. 눈앞에 닥친 것을 잠시 잊고 공상하며 훌륭한 수업을 흘려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불량 학생이었던 내가 지금은 책 읽기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한다. 아마도 친구를 더는 원하지 않게 된 후로 생긴 변화 같다. 책을 좋아하면서 친구를 원하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친구가 없어서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무관심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집과 카페로 오간다. 다가오는 친구를 곤혹스러워하며 기피하고, 호기심 많은 학자의 열정을 흉내 내며 산다. 친구와는 다르게 갑자기 섭섭해지거나 사이가 멀어질 가능성이 없는 취미를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ᅠ아침 지하철에서 내릴 때 여러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의 내치지 못한 술기운과 미세한 향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출근 냄새는 미세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동반했다. 잠이 부족하니 더 예민해졌다. 확실히 내 아침은 밤보다 더 어두컴컴했다. 오늘 밤은 꼭 일찍 자야지 다짐하지만 늘 매한가지다. 그래도 난 내 삶을 높이 평가한다. 자존심이나 야망 같은 번쩍번쩍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니까. 마음속 깊은 곳, 기억 깊숙한 곳에 고생하며 비참함을 인내하고 고통을 감내하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단단한 표정으로 근면하게 버텨나가는 나. 주먹을 꽉 쥔 기분으로 너끈하게 헤쳐 나가 고대하던 밤의 평온을 기다리는 나. 아무리 힘들어도 헬스장에 가서 가빠를 키우는 나. 어렸을 때는 마음과 몸이 별개라고, 오히려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로 알았다. 그런데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 총체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의 집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유물론의 총아로서 더 건강한 세포를 가지고 살고자 한다. 문학은 날 알아봐 주지 않았지만, 몸뚱이는 시간을 쏟은 만큼 정확하게 시급을 쳐줬다. 그건 결국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이 날 감싼 상태다. 자세히는 닭가슴살과 쇳내가 내 척주 기립근을 지탱하는 모양새다. 고립 운동은 말 그대로 특정한 근육을 고립시켜 놓고 하는 운동을 말한다. 목표 근육 외의 다른 근육은 배제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기가 막힌 용어다. 나도 비슷한 의미에서 고립 운동을 한다. 특정한 근육 대신 나를 고립시킨다. 고립은 부정적인 용어로 쓰이지만, 보디빌딩에서만큼은 긍정어휘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자발적인 고립을 택했다. 프랑스인이 자주 쓰는 말에 ‘Je m'en fous’가 있다. 우리말로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라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아니꼬운 말이겠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에서도 자유와 독립을 가장 중시하는 프랑스인의 특성이 잘 드러난 표현이다. 나도 못지않게 나와 무관한 걸 떼어내고 유럽을 살고 있다. 거울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호흡과 관절을 느끼면서 고립이 가져오는 순수한 기쁨을 찬양한다. 이 정도면 근육도 영겁회귀다. 평생 유럽에만 산 니체 안 부럽다. 물론 세트 수를 다 채우면 운동도 끝이 날 테지만, 내일이면 다시 고립이다. 난 누구도 관심 없어 보이는 어떤 완전함을 공들여 상상하며 힘겨운 오후를 버텨낼 힘을 얻었다. 이제 장비처럼 생긴 부장과 맞짱을 뜨러 갈 것이다. 커피가 다 식기 전에 해치워야지. 손목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켰다. '프랑스는 지금 이른 새벽이겠네.' 사무실로 복귀할 시간이다. 난데없는 공상을 하고 나니 막 배가 고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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