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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21. 2023

마치 라오콘 조각상처럼

Ver. 2.0

 내가 글쓰기보다 수월하게 생각하는 건 헬스다. 글쓰기가 관념의 세계라면 헬스는 중세 기사의 마상시합처럼 승패가 명백히 드러나는 구상의 세계다. 드느냐, 혹은 못 드느냐. 가령 오늘 백 킬로 바벨을 8회씩 6회 들었는데 간단한 산수로 내가 들어낸 중량을 수치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글을 쓰다 허공에 아웃복싱하는 기분에 시달릴 때면 헬스장으로 간다. 헬스는 글쓰기와 달리 결괏값이 거울에 비친 내 몸뚱이에 고스란히 드러나니까. 바벨을 하나 더 끼우면 허벅지가 날렵해지고, 술 약속 있다고 헬스장을 안 가기 시작하면 새 다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저녁에 제육덮밥을 먹으면 한걸음 뒤처지고, 자기 전에 냉동실 비비고 군만두를 외면하면 조금 더 나아질 뿐이다. 내가 두 시간을 공들여 쓴 글은 클릭 한 번에 휴지통으로 사라지지만,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만든 근력은 틀림없이 살아남는다.


 월요일이 앞판을 만드는 날이라면, 화요일은 뒤태를 관리하는 날이다. 등짝과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에 가장 효율적인 운동은 단연코 데드리프트다. 데드리프트는 몸 전체에 힘을 주고 무거운 쇳덩이를 땅에서 뽑아 올리는 동작이다. 데드리프트는 트레이너가 꼽는 가장 효과적인 운동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스쿼트처럼 전신을 자극하는 데다 고중량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데드리프트를 할 땐 죽을 듯 힘이 들어서 '데드'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쇳덩이처럼 죽은 물체를 들어 올리는 운동이라서 붙여진 호칭이다. 거대한 바벨 앞에 서면 왜 쇳덩이가 죽어있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쇳덩이를 땅에서 허벅지까지 끌어올리는 동작은 마치 밭에 있는 무 뽑기처럼 보인다. 언뜻 봐서 별거 없게 느껴지지만, 쇳덩이를 들어 올린 기쁨은 마치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를 뽑아내서 왕이 되었다는 아서 왕의 전설과 맞먹는다.


 나도 시간이 부족할 때는 곧잘 헬스장에서 데드리프트만 하고 나온다. 강호동 몸무게를 훌쩍 넘는 쇳덩이를 몇 번 들었다 내리면 단 30분 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높은 운동 강도를 뽑아낼 수 있다. 시간은 짧아도 몸 뒤태가 마치 이만기의 허벅지처럼 탄탄해지는 기분에 취할 수 있다. 오늘도 오전 내내 회의네 보고서네 정신이 없었다. 녹초가 돼서 점심시간에는 커피잔에 코 박고 쉬려 했지만, 어제 먹은 치킨이 아직도 뱃속에서 포화지방을 배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라도 헬스장에 출근해야 했다. 이를 꽉 물고 싫은 티를 숨기며 데드리프트를 했다. 죽어있던 세포가 일제히 봉기하면서 송장 신세를 면했다. 중세 기사는 십자군 전쟁을 위해 갑옷을 걸쳤지만, 나는 벨트와 허리 보호대를 몸에 묶고 기껏해야 단백질 음료나 마시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쇳덩이와 물아일체 된 내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강렬한 힙합 비트가 귀에 쫙쫙 달라붙었다. 세트를 끝낼 때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헬스장에 붙어있는 고통을 단련하라는 문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참 멋있으면서 무시무시한 말이야.' 난 파워에이드 광고라도 찍듯 몸을 웅크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샤워장으로 향했다.


 데드리프트는 보디빌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운동임에도 대다수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그래서 그 중요성에 비해 매체나 SNS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데드리프트가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동작이 멋지지 않고, 근육 어디가 발달하는지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데드리프트를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의자에서 오래 앉는 사무직 직원이라면 척추가 바로 서야 버틸 수 있는데 데드리프트야말로 최적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무거운 화분이나 택배 박스 정도는 옮길 수 있어야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한국 여성 평균 체중이 56 정도라고 하니 적어도 그 정도 무게는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척주기립근을 갖고 싶다. 영화 <마담 뺑덕>에서 정우성이 여배우 이솜을 번쩍 들어 올리고 침대로 향한 것처럼 말이다. 정우성은 한 치 미동도 없는 편안한 표정으로 연인을 침대에 눕혔다.  현대 과학은 에이스침대가 아니라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정우성의 넓은 등짝에 있었다. 마치 라오콘 조각상처럼 육감적인 정우성의 뒤태는 매주 화요일마다 내 허리를 곧추세운다.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 분)는 고위 정치인으로 권력에 대한 야심에 매일 혈전을 치르며 산다. 살인과 음모, 배신과 암투, 묘략과 획책 등 내가 아는 무서운 짓만 일삼는 피곤한 인생이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도 아내인 클레어(로빈 라이트 분)가 힐러리를 능가하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라 숨통을 조여 온다. 게다가 프랜시스는 그 바쁜 와중에도 워싱턴 헤럴드의 야망 있는 젊은 기자 조이 반스(케이트 마라 분)와 바람까지 피운다. 이렇게 안팎으로 고단한 프랜시스의 스케줄은 드라마 <24>의 잭 바우어 못지않게 촘촘하다. 이쯤에서 시즌을 다섯 개 치르고도 건재한 프랜시스의 체력 관리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처럼 홍삼이나 녹용 같은 보양식을 먹나 했더니 비결은 로잉머신에 있었다. 그는 새벽에 귀가한 후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 로잉머신에 올라탄다. 로잉머신은 올림픽 종목이기도 한 조정 훈련 장비다. 로잉 머신이 조정의 노 젓는 동작에서 유래했다. 팔을 휘젓는 과정에서 등 전체가 개입하는 대표적인 등 운동 종목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노령의 정치인이 어쩜 그렇게 정력적일 수 있는지 변명이라도 하듯이 매화 빠짐없이 로잉머신 장면을 넣었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근력을 관리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일까. 그만큼 등 근육은 노화에 무너지기 쉬운 허리와 목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하우스 오브 카드> 방영 이후에 미국에서 로잉머신이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하니 시청자는 프랜시스의 지칠 줄 모르는 야욕의 비결로 로잉머신으로 다진 탄탄한 등 근육을 떠올린 게 아닐까.


 오늘도 지난주처럼 등 운동을 무사히 마쳤다. 프랜시스 못지않게 등이 넓어진 기분이 들어 만족스럽다. 헬스인이자 가수인 김종국은 운동 후의 영양섭취까지가 운동이라는 명언을 남겼기에 나도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고자 저녁으로 연어 초밥을 택했다. 유튜브 채널 ‘짐종국’에서 가수 김종국이 물회에 밥 대신 회를 말아서 먹방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초밥을 섭취했다. 카페에 가서는 근육통을 삭히려고 카페인이 잔뜩 든 커피도 마셨다. 스타벅스에서는 넷플릭스 <피지컬: 100>을 시청했다. 세상에 이렇게 하체가 탄탄한 사람이 많단 말인가. 난 열등감과 초조함이 엄습해서 다시 유튜브 채널로 하체 운동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봤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앞태와 뒤태를 관리했으니 이만하면 됐다. 내일은 가장 고되고 힘든 ‘하체’하는 수요일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지쳐 나자빠지기 마련이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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