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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20. 2023

이별에는 고립 운동

Ver. 2.0

 ᅠ프랑수아즈 사강은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지며 다소 심상한 이혼 사유를 댔다. "그는 결혼 생활보다 자신의 도기 작품을 더 좋아했다. 결혼이란 아스파라거스에 비네그레트소스를 곁들이느냐 네덜란드식 소스를 곁들이느냐의 문제, 곧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첫 번째 이혼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는 이유를 댄 바 있다. "나는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고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말을 타러 간다. 결정은 내려졌지만, 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 난 사강이 이혼 당시에 남긴 인터뷰를 꼼꼼히 읽으며 그 어떤 이혼 사유보다 두말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띄었던 건 그가 남편의 무심함이나 결격함을 꺼내기보단 엇갈리는 취향을 집어냈다는 점이다. 취향(趣向)은 말 그대로 방향의 문제다.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동행이 어렵다.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해도 같이 가려면 동향이어야 한다. 사강은 이혼 사유를 묻는 말에 마음의 행방이 갈렸으니 별수 없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사강이 원래 바랐던 결혼 생활은 어떤 것이었을까. 연애 초기의 열정적인 상태일까. 오직 서로를 향해서만 작동하는, 이른바 너밖에 안 보인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몰 취향의 상태일까.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다 팽개치고 집 앞을 전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과잉일까.


 ᅠ사랑이라는 건 균형과 안정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인지도 모른다. 들끓는 얼굴로 불안해하고 오해하다가 결국에는 다시 불안에 떠는 그런 불균형이 내겐 사랑이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건 차츰 그 열기가 식어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덤덤한 얼굴로 매무새를 고쳐 앉고 커피를 한 잔 따르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한다. 다 그만둘까 하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고 서로 취향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래서 넌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마치 처음 만나는 연인처럼 그간 벌어진 사건을 대충 뭉개고 다시 처음부터 묻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고 침실로 향하려는 그를 억지로 끌어 앉히고 내 말 좀 들어보라면서 어렵사리 대화를 이어 나간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부둥켜안은 채로 해가 진 관계를 서늘한 새벽 밤까지 물고 늘어지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사랑과는 다소 무관한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결혼제도가 묻는 건 오직 지속 가능성에 있다.


 ᅠ최근 아끼는 후배의 이혼 소식을 들었다. 지난주에 이혼했다고 전화가 왔다. 놀란 척했지만 놀라진 않았다. '그럴 것 같더라니.' 녀석의 목소리가 이제 막 지옥에 떨어졌다 빠져나온 듯 안도하는 게 느껴졌다. 에반더 홀리필드랑 타이틀매치를 치르다가 3라운드에 가서 귀를 물어뜯고 나자빠진 목소리였다. 녀석은 내가 일하는 조직에서 잘 나가는 유망한 인재였다. 직장에서는 서글서글하고 일할 때는 강직한 바가 있어서 윗분들 총애를 받았다. 어른들 술자리엔 꼬박꼬박 끼면서 주말 아침에는 조기축구회까지 가는 그런 놈들 있지 않나. 그렇게 윗분들 눈치를 보면서도 주변에 미움을 사지 않는 재주도 있었다. 단점이라면 가끔 일할 때 너무 딱딱해져서 나조차도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농담 삼아 녀석에게 아침에 커피 마실 때랑 저녁에 스크린 골프 갈 때를 제외하곤 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적도 있었다.


 ᅠ녀석은 대뜸 괜찮다고 했다. "혼인 신고도 안 했고, 식은 코로나로 조촐하게 치러서 수습하기 어렵지 않았어요." 대출을 잔뜩 끼고 산 집은 내놨고, 가구는 다 처분해서 아내에게 줬단다. 신속하고 깔끔한 이별이라나. 남 결혼에 참견은커녕 관심조차 안 보이는 내가 본의 아니게 깊숙이 개입한 관계였다. 내게 들어온 소개팅을 후배한테 넘겼는데, 두 사람은 만난 지 이틀 만에 사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만에 식을 올렸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두 사람이 처음 데이트를 시작하고 식장으로 들어가기까지 모든 과정을 세세히 들었다. 그리고 결국 관계가 막을 내리는 것까지 그들의 부모보다 먼저 알았다. 난 괜히 죄책감이 들어서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ᅠ두 사람은 사는 방식이 비슷했다. 주말이면 무조건 교외로 떠나서 놀고 싶어 했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끌어안고 자는 걸 낙으로 삼았다. 늘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젊어서 그런지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술을 마셔도 주일 아침이면 오후 한 시에 여는 청년부 예배에 갔다. 후배는 소개팅한 지 두 달이 지나지 않아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난 그때만큼은 선배답게 만류했다. 평소 나라면 뭐가 됐든 관심도 없이 무조건 축하한다고 했을 텐데, 나로 이어진 관계라 이상하게 불안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ᅠ내가 평소 연락도 안 하던 군대 동기가 소개팅 제안을 했을 때 카톡 프로필도 같이 찍혀왔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예 관심 없다고 했는데 동기는 소개팅 상대 외모에 자신이 있었던지 대뜸 프로필이나 보라고 난리였다. 시폰 치마가 잘 어울리는 달걀형 미인이었다. 하지만 밝은 분위기의 카톡 프로필만으로는 그녀에 관해 알 순 없었다. 카톡 사진을 넘겨보다가 그녀의 작업물로 보이는 작품 사진이 많았다. 캐리커처에 가까운 얼굴을 집중적으로 그린 아크릴화였다. 어떤 얼굴은 울고 있었고, 어떤 얼굴은 화를 내는 듯 보였다. 그로테스크한 기분을 주는 그림들은 어느 공모전에 출품했는지 입선이라는 말도 덧붙여졌다. 귀퉁이에 적힌 프로필에서 인스타그램 주소도 알아냈다.


 ᅠ그녀는 미술 전공자 인스타답게 공개 계정에 팔로워 수도 상당했다. 온갖 예쁜 카페들을 주말마다 돌아다니는지 테이블이 낮고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케이크 사진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유럽에서 유학 생활도 한 흔적도 보였다. 게시글 중에 내 눈길을 끈 건 간혹 가다 보이는 장문이었다. 최근 사회문제로 불거진 학교 폭력에 대한 제 입장을 쓴 글도 있었다. 다소 민감한 젠더 문제에 대한 시각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글이 가진 요지는 정치적 올바름이 세상을 질식할 것처럼 옥죄고 있으며, 과거까지 들춰서 심판하려는 작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적응 못 하는 루저에 불과하다는 일갈이었다. 피해자 지상주의가 논점을 흐리고 감상으로 치우친 해석만 낳는다고 분개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신뢰할 수 없는 논거였다. 아니 의견 내용보다는 말투가 거슬렸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쓰기가 서슬 퍼렜고, 단어 사용이나 어투에 망설임의 여지가 없어서 위태했다. 마지막에 자신은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남들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다짐도 보였다. 그녀 팔로워들은 댓글에 시원한 의견이 사이다라고 지지하는 말을 남겼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게시글이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흥미가 바로 식었다. '내 스타일 아닌데...' 톡을 보냈다.


 ᅠ녀석은 당연히 성사될 줄 알았는지 난감해했다. '벌써 해준다고 말했는데.' 대타라도 구해달라고 부탁했고, 난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식 단타 매매에 여념이 없던 후배를 천거했다.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만나볼래?' '네 좋죠.' 별생각 없는 즉각적인 승낙이었다. 그 승낙에는 나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는 담겨있었을까. 소개팅 상대에 대해 나도 잘 모른다고 정확히 말해줬던가.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고 한 마디 정도는 건넸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때마침 걸려 온 실장님 전화에 녀석에게 번호를 찍어주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난 녀석의 이혼 소식에 처음 들었을 때 이 순간을 복기했다. 내 귀책사유를 찾아서 뭘 하겠다는 건지도 모르면서 버릇처럼 장면을 재구성했다. 나 역시 그녀의 번호를 주고 소개팅을 제안할 때 별생각이 없었기에, 그 섣부름이 마음속에서 덜컹거렸기에 잠시나마 흔들리는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ᅠ후배가 소개팅한 다음 날이 생각난다. 난 아침에 후배와 늘 아침에 옥상을 소요했다. 녀석이 커피를 내리고 내가 누네띠네를 한두 개 챙기면 우리 아침이 완성됐다. 녀석은 소개팅녀의 여파로 완전히 눈이 뒤집혀 있었다. 한 마디로 뿅 간 상태였다. 내게 꼬치꼬치 그녀의 인상을 설명해 줬다. 속눈썹이 길게 늘어진 갸름한 얼굴에 따듯하고 포근한 미소가 예뻤다고 했다. 짙은 화장에 감춰져 있던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에 반했다고 했다. 곁눈질로 살펴본 늘씬한 다리도 딱 자기 스타일이라고 했다. "저는 산과 바다를 좋아해요. 도시는 너무 외롭고 사람들도..." 그녀는 첫 만남에도 주눅 들지 않고 말을 잘했지만, 간혹 눈치를 보며 멈출 때가 있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잘 먹혀들고 있는지 유심히 살피는 모양이었다. 후배가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던 건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의 말투였다. 처음에는 유학파 출신이라 그런 건가 생각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본 직설적인 글과는 너무 달라서 다소 의아했다. 말은 잘했는데 내용이 다소 관념적이라서 대화가 자꾸만 끊겼다. 그때마다 후배는 생각했다. "대화를 계속 끌고 가야 해! 그녀와 교감을 나눠야 해!" 녀석은 반박하는 법 따윈 잊고 리액션 기계가 되었다. 녀석은 신이 나서 내게 말했다. "우린 취향이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요. 관심사가 하나같이 다 똑같아요." 너스레가 천성인 후배 성격을 아는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냥 네가 다 맞춰주는 건 아니고?" 녀석 말대로라면 두 사람은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를 향한 호기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사실 그 정도 호감을 느낀 상대는 꽤 많았을 텐데, 우연도 운명으로 해석해 버리는 녀석의 호의가 귀여웠다. '소개팅녀가 저처럼 애연가였어도 천생연분이라고 난리를 떨었겠지.'


 ᅠ녀석이 연애를 시작하고 그녀와 속도를 낼수록 난 녀석과 멀어졌다. 결혼한 후로는 우리 커피타임도 사라졌다. 신혼이니까 어쩔 수 없다 쳐도 내가 커피를 끓여놓고 연락을 취했는데 녀석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을 때는 매우 섭섭했다. 매일 옥상에서 드립 커피를 마시며 농담을 따먹던 시절이 그리웠다. 조금 가볍지만 예쁘게 말할 줄 아는 후배의 낙관이 그리웠다. 실없는 농담을 하며 날 따라다니고 내가 선배라고 깍듯하게 챙겨줄 줄도 알아서 늘 고마워했다. 내가 선배 노릇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섭섭하기도 했을 텐데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주고, 때가 되면 밥을 먹자고 조르는 게 귀찮지만, 큰 힘이 됐다. 결혼제가 내게서 후배를 앗아간 느낌이 들었다. '우정도 제도에 묶어 의무를 줬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 내 나이쯤 되면 이런 일이 자주 생긴다. 이놈도 저놈도 마찬가지다. '좀 지나면 이제 세상 이치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통닭과 500 생맥주를 시켜 놓고 입버릇처럼 혼자 살라고 충고하겠지. 뻔하다 뻔해.'


ᅠ 내가 부서를 이동한 후에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다시 사무실에서 혼자가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 부서 동기를 통해 녀석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다는 걸 전해 들었다. 난 그런 일을 남 입을 통해 들었다는 데 속이 상했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내가 그들의 불화를 어느 정도 직감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녀석은 알게 모르게 제 불행을 내 탓으로 돌렸을까. 괜히 소개팅을 넘긴 게 화근이 됐을까. 내가 받아야 했을 불행을 자신이 대신 떠안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놈은 아니지만, 불행에 이유를 찾자면 무슨 생각을 못 할까. 마음이 쓰였던 나는 먼저 연락을 취해 금요일 저녁에 밥을 먹자고 우겼다. 막무가내로 불러냈다.


 ᅠ후배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럴 땐 제아무리 입이 무거운 자라 할지라도 마치 신 앞에서 벌거벗겨진 것처럼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아직도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린 녀석이 사는 오피스텔 1층에 있는 투다리에서 모둠꼬치와 생맥주를 시켰다. 녀석은 내 앞에 바싹 붙어 앉아 조용하면서도 격앙된 목소리로 쉬지 않고 얘기했다. 내가 안 불렀으면 어쨌을까 싶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이 쏟아졌다. 보기 드물게 단정한 친구가 저러니 위험신호라는 생각도 했다. 후배는 쉴 새 없이 말을 함으로써 자기 삶이 일정 부분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었던 것 같았다. "선배 우리 그때 너무 좋았죠. 매일 옥상에서 노가리 까고, 회사 끝나고 운동하고 치킨 먹고. 그쵸." "맞다. 그때 참 좋았지. 계속 그렇게 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세상 끝났냐. 다시 시작하면 되지. 내가 도와줄게." "아니에요. 선배, 진짜 이제 다 좆된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할 리 없어요."


 ᅠ두 사람의 결혼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결혼한 지 한 달 남짓한 때였다. 심하게 다툰 날이면 등을 보이고 담배를 피우는 녀석을 뒤로하고 아내는 집을 나갔다. 그게 버릇처럼 반복되다가 다투고 외박하는 일이 습관처럼 잦아졌다. 어떨 때는 외박을 위해 싸움을 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제 딴에는 잘해보겠다고 와인도 까고 치즈나 빵 같은 걸 준비해서 분위기를 잡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모든 대화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럴 거면 왜 나랑 결혼했는지 따져 물었고, 대체 뭘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다그쳤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대화가 안 된다면서 어깃장을 놓고 집을 나갔다. 심각한 일로 다툰 것도 아니었는데 다음날 녀석이 출근하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집을 나간 새벽에는 전화도 안 받고 톡도 씹는데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그녀는 같은 과 동기들과 자주 어울렸던 모양인데, 평소에 녀석은 그게 마음에 걸려서 자주 다퉜단다. 인스타 사진을 보니 헐렁한 옷과 색색 머리를 지닌 청년들이 무슨 충성 모의라도 했는지 엇비슷한 타투를 하고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카메라를 향해 전위적인 포즈를 짓고 있었다. 녀석이 자기 변호하기 급급해서 한 말이라는 걸 감안해도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그 사진만으로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ᅠ후배 말대로라면 아내는 녀석에게 언제 어디서든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줬다. 늘 억눌리는 데 익숙한 조직 생활을 하던 녀석에게 그녀는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효율성, 유용성, 객관성을 중시하는 세계에 살다가 퇴근하면 그녀가 인도하는 느슨한 세상으로 떠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다다르지 못한 이면의 세계에 매혹되기 마련이다. 후배는 그녀를 통해 느낌대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생전 처음 분방함과 희열의 감정, 욕망에 호소해서 나아가는 방식을 터득했다. 그녀를 따라 합정동에서 홍대를 돌아다녔고, 그곳에서 보헤미안처럼 사는 애들과 놀았다. 그간 나눠보지 못한 간지러운 얘기들을 100분 토론에 참여한 진중권처럼 신나게 떠들어댔다. 순간의 삶, 향락적인 자기표현, 육체미, 무종교, 사회 속박의 불온함, 머나먼 곳을 향한 동경, 스타일과 미학을 찬양하는  삶에 심취해서 그녀를 따라 자기도 인스타그램을 도배했다. 그에겐 다시없는 매일의 연속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때부터 후배는 자기 삶을 15도쯤 틀어버렸고, 사내에서는 후배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들려왔다. 하지만 후배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상향을 발견했으니 구시대적 유물 따위는 신경 쓸 게 아니라는 식이었다.


ᅠ 하지만 결혼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차이가 간극으로 변했다. 다른 섬에 사는 사람이 교류의 물꼬를 터서 번영에 이르는 대항해시대를 살다가, 막상 합병을 하니 내가 왜 너의 속국이냐고 따지는 꼴이었다. 너는 왜 네 방식만 고집하고,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그토록 매혹적으로 보였던 신대륙이 어느 순간부터 미개한 원시 문화로 느껴진 것이다. 어느 하나 양보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압제뿐이다. 늘 설레던 늦은 밤은 그렇게 속절없이 사그라들었다. 후배는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바꿀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따져 물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오빠를 자유롭게 해 준다며. 그게 좋아서 결혼한 거 아냐? 대체 뭐가 문젠데. 왜 나를 가두려고 드는데! 왜 말이 바뀌는데!" 그렇게 밥통엔 밥이 없고 냉장고에는 쉬어가는 배달 음식만 가득한 세상이 계속됐다. 세탁기 옆에는 뒤집어진 양말이 뒹굴고, 휴지통이 가득 들어차도 더는 비워지지 않았다. 엄연한 살림살이가 그들 목을 죄어왔다. 취향으론 수습할 수 없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애들이 아니었다. 뭐가 뭔지 사리를 따져볼 여지는 충분했다. 다만, 그렇게 살피기에는 생각보다 두 사람은 너무 다른 존재였다. 당위는 너무 무거웠고 하루는 너무 짧았다. 녀석이 결혼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닥을 치지 않았으니, 자지가 뒤엎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막을 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파국이 없었다.


 ᅠ한 번은 크게 싸우고 그녀가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고 나가버렸다. 이혼해 주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겠다고 으름장으로 놓고 열흘간 연락도 없이 집을 비웠단다. 이쯤 되면 끝난 게 확실하다고 판단이 서는 순간에도 녀석은 다시 잘해볼 수 있다고 믿고 계속 붙잡았다. 장문의 메시지를 디엠으로 보냈지만, 답장은 종전선언이었다. 이제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남은 건 선을 긋는 일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결혼 이후로 불행했으며, 이제 더는 후배를 사랑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짐을 챙겨 나가 달라고 했다. 후배는 다 끝난 마당에 이혼은 해주지 않고 끝까지 매달렸다. 그녀에게 정나미가 떨어졌으면서도 틈만 나면 만나서 싸우려고 들었다. 저녁마다 만취해서 돌아와 달라고 울며 요구했다. 후배는 증거도 없이 그녀의 외도를 단정하고 몰아붙였다. 내가 아는 전형적인 파국이었다. 서로서로 취향이라고 찬양하던 연인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이 그들에게 무엇을 심어놨을까.


 후배는 요즘 퇴근하면 운동을 한다고 했다. 공원을 뛰고 헬스장도 다닌다고 했다. 내가 그토록 권유했음에도 하지 않던 트레이너 피티도 받는다고 하더라.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같이 하면 좋은데.' '그냥 쑥스러워서요. 선배 언제 같이 한 번 운동해요.' 의사들이 괜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움직이고 땀을 흘리라고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정량의 운동량을 채워내면 실패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성공담이 생긴다. 어찌 됐던 시간이 흐르고 밤에는 잠이 찾아온다. 녀석은 요즘 운동한다는 걸 티 내고 싶었는지 웃으면서 얘기했다. '헬스장에 가보면 다들 죽상을 하고 바벨을 들고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게 다 만트라 같아요. 하나 둘 셋, 숫자를 채우면서 기도하는 거죠. 몸에 통증이 올라오고 땀이 막 흐르면 모든 게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아주 철학자 나셨네. 운동하다가 책도 쓰겠다 너.' 녀석은 베슬베슬 웃으면서 말했다. '고립 운동이잖아요. 근육 고립 말고 저 자신의 고립. 이 말이 저랑 딱 어울려요. 이별에는 고립 운동.' 난 흔한 위로보다는 평소처럼 잔소리를 해댔다. '설렁설렁 깨작대서는 될 게 없으니까 되도록 무게를 많이 쳐라.' 나는 이제 막 운동을 재개하려는 녀석에게 또 잔소리 비슷한 걸 하고 말았다. 아무튼 난 녀석이 운동한다니 곧 괜찮아질 거라고 어느 정도는 안심할 수 있었다. 운동한다고 나아질 건 없다. 그렇다고 뒷걸음칠 일도 없다. 운동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진통제 역할은 해주니까.


 ᅠ녀석과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헤어졌다. 택시에서 어쭙잖은 위로의 말을 쓰다가 지웠다. 대신 내가 먹는 헬스 보조제를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냈다. 위로도 참 편한 세상이다. 다짐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잔말 말고 내일 운동 나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잘 들어가고.' 그렇게 창밖을 보며 무심코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구겨진 종이를 발견했다. 며칠 전 카페에서 다짐하듯 영수증에 쓴 메모였다. 무슨 일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거기엔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체로 휘갈기듯 ‘더 많은 산책과 운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찌나 거세게 썼는지 글자가 분노를 품은 것처럼 삐죽거렸다. 지금 후배에게 필요한 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산책과 운동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산책과 운동. 그냥 산책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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